상상나누기

See You Again!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10월2호 후일담 

 

See You Again!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지난 해와 올해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 해에는 그래도 어딘가에서 촛불이 타고 있다는 것이 내심 큰 위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뽑혔다는 현실의 절망감은 무척 컸지만 그 절망감은 집권 몇 개월 만에 엄청나게 타올랐던 촛불로 금세 상쇄되었다. 한동안 매일 같이 거대하고 개별적이며 즐거운 촛불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길 때 세상은 금방이라도 뒤집어 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원천봉쇄와 벌금으로 강력하게 진압하는 정권의 강공 앞에서 촛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을 죽였다.

 

단지 강경진압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집권 2년차로 접어든 올해 초 용산의 가혹한 죽음과 후안무치에 가까운 공안통치가 이어졌음에도 촛불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를 넘기며 뛰어올랐다. 이제는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을 마구 뒤지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에 색깔을 붙이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촛불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노무현의 죽음마저 슬픔과 추모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촛불이 아니더라도 어디서건 집회 한번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촛불을 들었냐는 듯 묵묵히 시대를 견디고 있는 것이 올해의 풍경이다.

 

이러한 때 저항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적들, 혹은 부당한 사건이 있을 때 무조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무조건 싸우기보다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를 더 궁리하고 쉽게 이기기 어려운 싸움은 감히 벌이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도 조금은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 결성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솔직히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누가 모임에 나올지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마실 수 밖에 없는 잔이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잔이었다. 정부가 바뀌기 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상황은 사실 암담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저들이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바로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질렀던 퇴행들을 지난 1년간 묵묵히 견뎌야 했던 예술가들의 분노와 염증은 결코 적지 않았다. 촛불을 껐다고 눈마저 감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무언가 말해야 하고 소리쳐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그렇지만 기존의 연대투쟁때처럼 단체간 연대가 아니라 개인들의 자발적 연대를 꾀한 모임은 느슨했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지난 여름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느리게 본격화한 모임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몇 번의 회의와 한 번의 토론회와 몇 번의 퍼포먼스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우리의 문제를 문화예술단체 사무국장들의 회의와 연명된 성명서로 풀려 하지 않았다. 과연 문화예술인 모임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보여줄 사무실도 전화도 상근자도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션에 동의하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를 모아 싸우고자 했으며 그 싸움을 민예총이나 문화연대에게 대행시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예전 평택 대추리 투쟁에서 그러했듯 개별 예술가들이 직접 싸움의 주인공이자 실체이고자 했던 우리의 시도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올해 들어 부쩍 행동을 조심했던 유인촌 덕분에 부당한 행정을 되돌리지도 못했고 그를 몰아내지도 못한 채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개별 행정부처의 정책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문화적이지도 않고 예술적이지도 않은 사람이 얼마든지 한 나라의 문화부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 부처가 얼마나 어이없는 정책들을 많이 펼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또한 기존의 문화운동단체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7월의 토론회에 쏠린 관심은 얼마나 유인촌 장관의 문화부에 대한 반감이 심한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였으며 릴레이로 이어진 퍼포먼스는 싸움이 그 자체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채 10명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돌아가며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일은 즐겁기도 했지만 어떤 생활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정부는 우리를 무시하는 생활을 하고 우리는 그래도 너희가 싫다고 할 말은 하는 생활을 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는 결국 유인촌 장관에게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고, 그가 집행한 부당한 정책도 전혀 뒤집지 못했다. 우리는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좀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싸웠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로 웃으며 퍼포먼스를 진행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유인촌과 만나지도 못했다. 설사 그를 만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지만 한번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봤으면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그가 우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쇠귀에 경읽기와 마찬가지가 되었다. 아마도 이렇게 쇠귀에 경읽기와 같은 싸움을 계속 하는 것이 현 정부 시대의 숙명일 것이다. 당장 승리하지 못한다고 해도 싸우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해도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싸웠고 그렇게라도 해봤지만 대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잠시 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마도 이런 싸움을 앞으로도 몇 번은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3년동안 내내 그렇게 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오직 하나,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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