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1월 1호 후일담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오픈세미나 담론 후기

 

최철웅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이자 애정어린 분석서인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낮은산, 2009)의 저자 엄기호 선생님을 초청해 5번째 오픈세미나를 가졌다. 파워블로거이자 열혈진보청년인 한윤형과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최철웅이 토론자로 참석하였다.


월간『우리교육』에 연재한 글을 묶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는 시장지상주의와 무한경쟁의 압력으로 우리의 일상 자체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예리한 관찰기이자 비판서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본질과 사회적 효과는 금융자유화,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확산, 양극화 심화 등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 시장에 종속된 인간들을 양산해내고, 급기야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괴물 같은 감수성을 주조하는 새로운 통치양식이라고 판단한다.


저자의 이러한 진단은 단순한 사색의 산물이라기보다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절실한 고뇌에서 비롯되었기에 더욱 큰 설득력을 갖는다. 오랜 국제연대 활동을 펼쳐오던 저자는 <하자 센터>의 청소년들과 함께 방콕의 AIDS 고아원을 방문한 경험으로부터 이 책의 문제의식을 벼려 나아갔다고 한다. AIDS에 걸린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과 대면한 한국 아이들에게서 연민과 슬픔보다 ‘나는 AIDS에 걸리지 말아야지’라는 자기방어적 태도가 앞서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에 대해 사회의 부정의나 연대에 대한 필요보다 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앞세우는 태도의 양산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비극적인 효과라 하겠다.


이러한 가치의 전도 현상, 즉 한때 규범적이었던 것이 예외가 되고, 예외적이었던 것이 불가피한 규범으로 통용되는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관통하는 논지이다. 이러한 통찰을 이론이 아니라 주변에서 겪고 들은 구체적인 삶의 형상들을 통해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정적인 수입 없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면서 생계를 위해 생체 실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조카의 이야기, 위계적인 학벌체제 하에서 끊임없이 편입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 한다는 지방대생들의 이야기,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보증 수표를 끊어놓고서 내 미래의 장해물이 뭐가 될 것 같으냐는 선생의 질문에 ‘환자들’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한다는 제자들의 사례까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남다른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20대들을 담론의 대상이 아닌 담론의 주체로서 인식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했다. 그래서 최근엔 수강생들과 함께 책을 쓰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본인 자신이 매우 드문 20대 담론 형성자라 할 수 있는 한윤형 역시 이러한 진단에 공감하면서, 주체에게 메타적 위치를 보증해줌으로써 성찰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비판적 사고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윤형은 최근 들어 고담준론이 아닌 지근거리에서의 비평으로서 웹툰 비평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최철웅은 20대들이 담론을 수용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한 측면이 있다면서, 담론의 내용을 음미하는 대신 무한한 스크랩 행위로 대체하는 현상에서 엿보이듯 담론을 성찰과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다 같이 공감한 문제의식은 한국의 좌파들이 지금의 10대와 20대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들 요새 20대는 왜 이리 패기가 없고 문제의식이 없느냐는 질타뿐이지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조건이나 원인에 대해선 무감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엿본 것은 요즘 20대들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탈락에 대한 공포’였다고 한다. 패자부활전 없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터에 주변의 약자를 돌볼 겨를이 어디 있으랴. 책의 말미에서 강조한 것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아이들에게 대안적 삶의 가치와 양식을 전해줄 ‘사유와 연대의 페다고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유와 연대’의 장인 오픈세미나도 더욱 더 활성화되길 기원한다. 이번 강의는 빈자리가 너무 많아 마음이 울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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