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인간 중심의 생태문화’, ‘인간을 위한 자연친화’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8호 특집기사 ⓛ

 

‘인간 중심의 생태문화’, ‘인간을 위한 자연친화’
-모순투성이의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

 

나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한동안 고민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며 내세우는 ‘생태’, ‘녹색’, ‘자연친화’라는 개념을 도대체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생태’를 무어라 해야 할 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저 ‘그것은 가짜 녹색이다’라고만 고발하기에는 것은 뭔가 수세적이고 부족한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들을 다시 들춰보다 문득 깨달았다. 실체를 알 수 없던 그 모순은 바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생태’가 결국 ‘인간 중심의 생태’, ‘인간을 위한 자연친화’라는 점에 있었던 것이다. ‘문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문화는 기껏해야 ‘문화산업’이거나, 우리의 삶과 생태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가 아니라 ‘임의로 조성되는 문화’, ‘주는 대로 감사히 즐길 것을 강요하는 문화’이다. 그러므로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역시 강을 살리는 것도 아니요 문화가 자연스럽게 강을 따라 흐르도록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정부와 개발자본이 인간의 입장에서 편히 돈을 벌 수 있도록 강제로 조성해 놓고 즐길 것을 강요하는’, ‘문화와 생태가 쓸려갈 4대강’ 사업인 것이다.

 

수시로 변경되는 사업계획,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업규모

 

문화부는 4대강 연계사업들을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통칭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이나 사업계획이 전체 정부계획과 부처 간 사업계획 등에 흩어져 있고, 구체적인 사업내용도 발표할 때마다 계속 달라져왔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는 정부에서조차 4대강 사업의 구체 내용과 전체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1월 25일 국토해양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세 번째로 추가 제출한 자료에서마저도 취소된 사업의 예산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거나 규모가 작은 사업에 과도한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 등 곳곳에서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사를 서두르면서까지 사업을 밀어붙이다보니 부처별로 제시한 개별 사업의 타당성과 전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겨를도 없이 막무가내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부의 2010년 예산안에서도 같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문화부 예산에서 4대강과 관련된 사업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된 사업은 ‘자전거 유스호스텔 조성사업’이지만 이 사업은 국회예산정책처에서조차 사업 추진의 타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자전거 유스호스텔 조성사업’은 ‘자전거 도로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추진되어야 하는데 아직 ‘자전거 도로 조성사업’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고 유스호스텔 이용자를 자전거 운전자로만 한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전거 유스호스텔’ 조성사업의 필요성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부는 이 사업에 24억 1천 2백만 원을 배정해 두고 있다. 이는 ‘4대강 사업’이 전체적인 맥락이나 사업간 연계성에 따른 세부 추진계획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자연, 인위적인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부의 4대강 연계사업은 발표될 때마다 계획이 계속 변경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업계획과 그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지만 2009년 5월 18일 발표한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안)’에 따르면 2013년 이후까지의 사업으로 총 26개의 사업이 계획되어 있다. 이들 계획을 성격에 따라 나누어 보면 크게 ‘4대강 관련 콘텐츠 개발’, ‘레저․스포츠 관련 시설 조성’, ‘역사문화 관련 시설 조성 및 프로그램 개발’, ‘문화예술 공간 조성’, ‘관광 상품 및 프로그램 개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투여되는 예산은 국비만 합해 보아도 대략 7천 180억 규모가 된다. 여기에 지방비까지 더하면 전체 예산은 1조 3천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구체 내용을 보면 정작 실효성이 의심되는 사업들이 많다.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만 지적해 보고자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전거 도로’와 연계되는 ‘자전거 테마공원’, ‘자전거 유스호스텔’ 등의 사업이다.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자전거로 도(道)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캠핑을 하거나 유스호스텔을 이용할 만한 장거리 여행자의 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4대강 길을 따라 조성한다는 자전거 도로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비용을 철도 등 연계 교통 시설에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든다거나 지역 내 자전거 이용 환경을 개선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남한강 예술특구(Art Village) 조성사업’ 역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부는 중국의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구역’과 ‘베를린 예술특구’를 사례로 언급하며 ‘남한강 예술특구’를 ‘동북아 지역교류 및 문화예술의 허브’로 구축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설을 조성한다고 해서 예술특구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다산쯔 798 예술구역’의 경우 인근으로 중앙미술학원이 옮겨온 후 쇠락해가는 공장 부지를 예술가들에게 저가에 임대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민간이 주최한 ‘다산쯔 페스티벌’이 결정적인 성공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성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문화적 기반과 예술가들의 자생적 동력이 작동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부는 마치 막대한 예산을 들어 각종 시설을 건설하기만 하면 예술특구가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문화부의 4대강 연계 사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레저․스포츠 관련 시설 조성’에 해당하는 사업들이다. 문화부는 2012년까지 3천 278억 원의 예산을 투여하여 4대강 지역에 ‘복합 레저 스포츠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며 ‘워터프런트 타운’ 조성에 2천 210억 원, ‘리버크루즈 관광 상품 개발’에 15억여 원을 들일 계획이다. 이들 사업계획을 보면 4대강 주변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 지 예상할 수 있다. 목포 영산강에는 ‘수륙해안 복합 그린 X-스포츠 파라다이스’가 조성되고 익산에는 워터프런트가, 공주에는 항공테마파크, 부산 낙동강변에는 수상레저스포츠 시설, 안동 강수욕장 및 백사장에는 ‘모래골프장’이 설치된다. 또 상주-구미에는 ‘자전거와 승마가 함께 달리는 100리 길’을 조성한다고 한다. ‘워터프런트 타운’에는 유람선 선착장, 마리나 시설 등 수상레저 인프라가 구축되고 리버크루즈와도 연계될 예정이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을 개선하겠다면서 십 수개의 보를 설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크루즈를 위한 배를 띄우고 각종 위락시설들로 강의 생태환경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4대강 주변의 자연이 지니고 있는 자체 경관은 아예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위락시설 조성을 위해 강 주변 자연환경을 전부 인위적으로 재조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래골프장’이나 ‘자전거와 승마가 함께 달리는 100리 길’과 같은 사업을 ‘친환경’이라고 내세우는 정부의 인식 자체가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4대강 생태 파괴’ 사업을 위해 파괴되는 ‘팔당 유기농업 단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만 팔당 유기농업 단지는 1973년부터 30여 년 동안 오로지 농부의 땀과 자연의 힘만으로 일구어오며 우리나라 유기농업을 선도해 온 곳이다. 이곳은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의 개최 예정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의 자전거 도로 건설과 보트장 설치로 인해 팔당 유기농업 단지는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편, 문화부의 사업계획에는 ‘에코문화관광 빌리지’ 조성 사업이 있다. 강변에 위치한 마을 주변의 ‘신재생 에너지 산업단지’ 및 ‘유기농 작물 재배 농장’ 등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면서 30년 간 가꾸어 온 유기농업 단지를 파괴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유기농 작물 재배 농장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사실 ‘생태’란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저 ‘생태’라는 트랜드를 기반삼아 ‘돈벌이가 되는 개발’에 성공하는 것, 그것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생태’를 보존하라

 

이 글을 쓰는 도중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호남의 시․도지사 등 자치단체장들의 요구로 섬진강을 추가했다면서 ‘사실은 4대강 사업이 아니라 5대강 사업’이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접한 순간, 충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0월 말 구례와 하동을 지나 남도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섬진강의 모습이 반사적으로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평사리 공원에서 섬진강을 마주하고 있던 텐트의 입구를 열고 나왔을 때, 막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던 섬진강의 물결과 고운 모래사장 위에서 평화롭게 노닐던 새들의 모습. 주렁주렁 감이 열린 길을 따라 자연스레 굽이치던 섬진강의 물길마저도 포크레인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고 인공적인 유원지가 되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생태는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생태적’이란 말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도록 둘 때만’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생태가 있다. 커다란 유람선을 타고 수상 스포츠를 즐기며 자전거여행을 해야만 강길 따라 문화가 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보의 설치가 취소된 안동의 ‘하회마을’과 같이, 강을 따라 형성된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이어져 온 지역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문화이다. 굳이 사방을 파헤치지 않아도 대한민국에는 이미 4대강을 따라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생생한 삶의 문화가 유유히 흐르고 있음을 부디 깨달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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