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두환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8호 밥보다 문화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두환

 

오창은
(문학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나는 국립중앙도서관보다는 국회도서관을 선호한다. 출입 절차가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국회도서관은 유용한 논문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학위논문과 정기간행물은 국회도서관이 더 이용하기 편리하다. 숲이 우거져 있어 도서관다운 한적함이 있어 여유롭다. 공간 배치도 국립중앙도서관에 비해 국회도서관이 덜 권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주로 국회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국립 중앙도서관을 찾곤 했다. 이러한 나의 도서관 이용 패턴이 최근에 갑자기 변했다. 광화문 우체국 6층에 있던 통일부 북한자료센터가 지난 7월에 국립중앙도서관 5층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있을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주 들르던 곳이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옮기고 난 후부터는 접근도가 떨어져 투덜거리게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북한문학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니 어찌할 것인가. 확실히 공간이 삶의 패턴을 바꾼다. 삶의 패턴에 따라 공간이 바뀌는 것도 맞겠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공간인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처음 나를 아연실색하게 한 것은 북레스토랑에 있는 문구였다. 그것은 김유신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밥을 먹다가 그 문구를 발견하고는 울컥하는 울분이 솟구쳤다. 사람에 따라 이 문구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는 사람도 있으리라. 이 어구는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한 대사로 유명해졌다. 전장의 언어가 도서관의 명언으로 걸려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숙고 없이, 삶 자체를 절대화하는 이러한 태도가 국립중앙도서관의 상징적 어구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우리가 책을 통해 갈구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강하다고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세적 욕망은 삶 자체를 절대화한다. 그리고 진리를 수단화함으로써 ‘옳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힘을 약화시킨다. 인간이 책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실용적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내적 충만함’에 대한 갈구 때문에 책을 향하게 되고, 현세적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자존심이 책을 읽게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아남아서 강해지는 것만을 갈구하는 것은 비루하다. 그 비루함의 풍경이 국립중앙도서관의 한 자락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데, 북레스토랑의 어구보다 더 놀라운 풍경을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의 정원에서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독서교육의 전당”이라는 거대한 표석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표석을 기억한다. 1988년 5월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초동에 들어설 때, 앞마당에 기념비적으로 자리 잡았던 기념물이었다. 표석의 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2004년에 ‘군사독재 청산 캠페인’이 벌어질 때, 슬그머니 정원으로 옮겨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글도 뒤로 돌려져 마치 정원석처럼 놓여있었다. 그런데 올해 공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다시 잘 보이는 곳에 마치 전시하듯 글이 보이게 정면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나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한국 현대사에서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쉽게 변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한 없이 불편해졌다. 그 표석은 ‘권력은 쟁취하는 순간 그 정당성이 따라오는 것이야’라고 음흉한 미소를 흘리는 듯했다. ‘살아남아 권력을 유지하라’, 그러면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천박한 풍경들이 국립중앙도서관을 뒤덮고 있어 마음이 스산해졌다. 스스로 몸을 뒤틀었을 리 없는 표석의 뒤바뀐 모습은 상징적이다. 누군가가 그 행위를 주도했을 것이고, 그 이면에는 권력을 시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그는 책 속의 진리보다는 현세적 권력을 더 숭상하는 자이다. 그 표석은 지금도 권위주의적 어투로 이곳은 내(전두환)가 만든 “국민독서교육의 전당”이라고 강렬하게 시위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현재 모습은 한국 지식의 보고가 얼마나 빈곤한 내면속에 유지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듯해 씁쓸할 뿐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문화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