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깊은 밤의 서정곡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8호 후일담 ②

 

깊은 밤의 서정곡

- 블랙홀 20주년, 문화연대 10주년 기념 콘서트 후기

 

김소이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땀에 젖은 긴 머리카락이 질척질척 얼굴에 달라붙어 있어도 활짝 웃는 표정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진을 보았다. 그것이 나와 블랙홀의 첫 대면이다. 인지도나 음악성과는 상관  없이 공연장에서는 많은 것들이 용서되는데, 사실은 공연장 밖에서 이뤄지는 객관적인 평가들은 이런 용서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용서냐 하면 큰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도 하게 되는 용서, 뮤지션이 어떤 식으로 망가져도 웃음이나 박수로 승화시키는 용서 등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용서를 하는 관객들은 대신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의 떨림과 흥분으로 마비되는데, 아마도 그들의 용서와 마비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온몸 가득 자극을 흡수하면서 냉정한 시각을 훌훌 털어 버리는 시간은 뇌보다는 심장이 흥분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20주년, 10주년 등의 제목으로 주저리 주저리 달리는 의의가 이번 콘서트에서 실효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간혹 예로 언급되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영향력을 미쳤던 영화 속에 삽입된 콜라 광고처럼 이번 공연도 음악이라는 주된 자극 사이사이에 문화연대가 있었고, 블랙홀이 있었다는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기념’이라는 추상적 의의와 ‘느낌’이라는 감성적 경험을 연결시키는 이러한 공연에서는, 사실 ‘기념’이 잘 전달되었는지가 불분명하게 남게 되어도 기획자는 그날 그 자리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콘서트를 진행해오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소박한 기쁨을 안고 집에 가게 된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기엔 너무 피곤해진 탓에 사람들의 반응으로 공연을 평가하고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나. 결국 공연의 취지와 결과가 서로 섞여 들어가지 못한 채 어긋난 채로 끝나는 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냥 ‘흥분하자!’는 직접적인 목적으로 모이는 열광의 파티가 어쩌면 취지와 결과가 맞아 떨어지는 정직한 행사일 것이다. 물론 나의 의견은 블랙홀을 꾸준히 사랑해서 그들의 행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기리고 생각한다는 마음을 분출되는 에너지로 마비되는 공연장 안에서 가진다는 것이 어불성설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공연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즐겼던 사람들 중에 속한다고 확언할 수 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오면 또 최선을 다해 즐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콘서트의 형태로 의의를 담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을 더욱 냉정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성기게 얽혀있는 이 두 요소의 결합은 사실 이번 공연이 아니더라도 여타의 공연들이 사용하고 있는 컨셉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러 간다는 말이 너무 유치하기 때문에 의의를 굳이 첨가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념을 한다는 의의가 너무 고리타분해서 음악이라는 재미있는 요소를 넣는 것일까? 물론 1989년부터 20년 동안 활동해온 블랙홀이라는 대선배의 공연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공연하는 후배 가수들과 그들의 축복을 받으며 나중에 등장하는 블랙홀의 모습에서 분명히 공연의 방향과 목적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뿜어낸 열광이 그러한 공연의 방향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도 역시 드러났다고 본다. 즉, 이번 공연은 그냥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밴드들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정기적으로 하는 홍대 앞 클럽들의 공연과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신 “축하드립니다.”로 끝을 맺는 진부한 멘트들, “이제까지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회상조의 말들 모두 전체 공연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 같았다. 아마도 정신없이 노래하던 보컬이 쉬는 중에 취지를 생각하며 한마디 정도는 해 줘야 자신의 공연이 흐름에 맞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원하고 강하게 내질러진 보컬의 목소리와 열정적인 악기 소리가 20주년 기념이라는 다소곳한 패키지에 쌓여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그들의 음악까지도 그저 그런 진부한 패키지가 되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의 ☐☐를 위한 콘서트”. 너무 뻔한 제목이다.

 

나는 문화연대가 추구하는 문화적 시각이 단지 진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좀 더 미세한 영역에까지 뻗치기를 바란다. 예컨대, 공연의 기획에 있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랙홀은 우리나라 밴드 음악의 역사에서 선배 중에서도 선배의 위치에 있는 밴드이다. 블랙홀이 20년을 거쳐 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은 그들의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폭넓은 저수지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다고 본다. 문화연대가 10주년을 맞이하여 준비해야 했던 다른 많은 행사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 어쩔 수 없는 이유였겠지만, ‘20년이 된 블랙홀’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방식의 행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선행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을 지을 수 있었던 무던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런 비판이 필요할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문화연대가 존립하는데 필요한 기반 안에 이러한 고민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이 항상 되새김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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