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9호 후일담 1

주인이 도둑에게 물건을 빌려서 써야 하는 경우도 있나요?
- 로스트 헤리티지 콘서트 후일담 

김지현
(미디액트 활동가)

   
얼마 만에 나선 홍대 나들이인지 모른다. 때마침 그날은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이 동시에 개막하는 날이라 어디로 가야할지 갈등도 많았다. 그러다가 사무실과 가깝다는 정말 단순한 이유로 홍대로 가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5월말의 어느 저녁,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상상마당을 찾았다. 내가 찾은 곳은 이름하야 로스트 헤리티지 라이브 콘서트(Lost Heritage Live Aid Concert)! 해석하면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기 위한 후원 콘서트”란 뜻이다. 허클베리 핀, 윈디시티, 이승환, 소희, 이한철, 3호선 버터플라이 등 우리나라의 (나름) 내노라하는 뮤지션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재는 바로 외규장각의 도서들이었다.
 
외규장각의 도서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정수였다.  

적.반.하.장 [賊反荷杖]  

종종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라는 속담과 함께 어우러져,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한자 그대로는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당시 패전하여 도망가던 프랑스가 방화, 약탈하여 도난한 외규장각의 도서들과 문화재들을 한국에게 영구 임대해 줄 테니 한국에선 같은 분량의 문화재를 프랑스로 영구 임대해달라고 협상해오는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매를 드는 대신 말도 안 되는 생떼와 협상을 제기하는 게 좀 다르다면 다를까? 

더욱 가관인 것은 한국 정부도 이 안에 찬성한다는 것. 한국 정부는 지난 2007년 10월 이 방식의 수정안으로 볼 수 있는 장기교환임대 방식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프랑스에선 절대 돌려주려 하지 않을 테니, 프랑스가 주장하는 대로 외규장각 도서를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받고, 대신 우리 문화재를 프랑스에서 전시하되 4년마다 전시품을 교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주인이 도둑에게 도둑이 빼앗아간 물건을 빌려(!) 쓰면서 자신의 다른 물건들도 추가로 빌려주자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하는 일이 이러니 시민들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이런 상황 때문에 문화연대에서는 시민의 힘으로 외규장각 도서와 약탈문화재를 되찾아 오기 위해 법적 소송을 벌여오고 있다. 작년 말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기각됨에 따라 올해 초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이 소송에 필요한 10만 유로(한화 약 1억 6천만 원)의 항소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시민모금운동과 거리 캠페인, 그리고 내가 참여한 콘서트 등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작년 소송에서 프랑스 법원이 내린 판결, 즉 “불행한 약탈은 인정하지만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공공재산이니 만큼 돌려줄 수 없다”라는 주장은 예술의 나라, 문화의 나라, 심지어 자유, 평등, 박애 등 혁명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가 국가의 이익 앞에서 어떻게 기꺼이 도둑놈을 자처하고 나서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심지어 프랑스는 외규장각의 도서들을 보관해온 지난 100여 년 동안 이 도서들이 한국 관련 서적이라는 사실도 몰라서 중국 사서에 분류해오고 있었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콘서트장에서 출연진들이 남긴 촌철살인 같은 멘트들을 음미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윈디시티: 외규장각 도서가 무슨 만화책입니까? 빌려와서 보게?  한국 시민의 힘과 프랑스 시민의 힘이 모여서 바꿔냅시다!

3호선 버터플라이 : 문화재들을 서로 영구임대 해줘야 한다면 이명박과 외규장각 도서를 맞교환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