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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세계의 홈리스] 태풍 때문에 수갑을 차게 된 홈리스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경찰이 태풍 어마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홈리스를 끌고 가고 있다. [출처: 뉴욕데일리뉴스 9월 8일자]
태풍 ‘어마’와 베이커 법

얼마 전 미국에서 큰 피해를 입혔던 태풍 ‘어마’를 들어보셨나요? 태풍의 눈이 지난 곳에는 침수피해가 잇따르고, 전기 공급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이애미 시내는 폭우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면서 침수됐고, 대피령이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베이커 법입니다. 이 법에는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을 경찰이 연행하여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만약 태풍이 오고 있으니 시설로 가라는 ‘권유’를 홈리스들이 무시한다면, 경찰은 마치 범죄자를 대하듯 이들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이죠. 위 사진에 찍힌 모습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에 찬성하는 한 홈리스 관련 단체의 대표는 태풍과 같은 상황에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홈리스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베이커 법이 시행되는 것이 낫다.” 홈리스들을 걱정하는 이 논리는 언뜻 그럴 듯 해보이지만, 뜯어보면 많은 허점이 있습니다.

먼저, 홈리스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없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태풍이 위험하다는 것을 홈리스라고 모를까요? 다만 피난할 곳이 없을 뿐입니다. 미국홈리스연합(NCH) 측은 “홈리스는 생존자들, 즉 열악한 조건에서도 살아남는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베이커 법은 홈리스들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판단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태풍이 와도 위험한지 모를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베이커 법의 발동은 우리 사회가 홈리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로 읽혀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둘째로, 베이커 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갑자기 홈리스의 문제에 관심을 보일까요? 태풍이 들이닥치니, 평소에는 홈리스를 외면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180도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거리에서 태풍 피해에 노출된 홈리스들이 죽거나 다치면, 당국에 비판이 가해질 것이 무서운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홈리스를 걱정하는 그 목소리는 사실 평소 홈리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려는 태도와 닿아 있습니다.

셋째로, 그 태도는 비상상황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홈리스들에게 시설 입소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홈리스를 ‘여기’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어딘가’로 보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겁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대책은 언제나 시설입니다. 그런데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면 그것을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시설입소 거부했다는 비겁한 변명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남양주의 한 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고 살던 50대 홈리스가 집중호우로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숨진 것입니다. A씨는 평소 일어나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할 당국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당국의 반응이 예상되지 않으시나요? 역시나 남양주시는 “현행법상 강제 입소시킬 권한이 없다. 권유를 했지만 고인이 거절한 상황”이었고 “앞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에 대해 더욱 신경 쓰겠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무조건적인 시설 입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시설 입소를 권유했는데 본인이 거부하면, 손을 놓고 있어도 안 됩니다.

태풍 어마는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한국에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태풍 앞에 놓인 홈리스를 걱정하는 그들의 진짜 의도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홈리스에게 수갑을 채우는 이들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골칫거리를 감추듯 시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홈리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