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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어깨걸기]대만의 홈리스, 유민(遊民)

[어깨걸기]는 홈리스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연대 단위의 소식과 홈리스행동의 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포용도시의 실천과 미래」라는 주제로 ‘제5차 동아시아 포용도시네트워크 워크숍’이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열렸습니다. 대만, 홍콩, 일본, 한국에서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민달팽이유니온, 한국주택관리연구원,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의 단체에서 총 1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각 도시 내의 거주환경이 열악한 마을과 빈곤 거주민의 생활 및 취업문제 등을 토론하고, 각 도시의 거주정책과 학술연구 등 동아시아 도시의 거주빈곤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민간 네트워크로, 오사카시립대학교 도시연구프라자, 국립대만대학교 건축성향연구소 협조를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아쉽게도 3일 중 타이베이시 홈리스 이용시설 및 현장을 탐방하는 날은 하루에 불과해 많은 곳을 돌아보진 못했지만, 현장을 돌아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유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한국에서는 거리 생활자를 노숙인이라고 하지만 대만에서는 ‘유민’이라 부릅니다. 유민의 사전적 의미는 직업이 없이 놀며 지내는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유래는 국공내전 후 1949년 중국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장개석 장군이 이끄는 국민당과 그 지지자들이 타이완으로 피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탈영병을 당시에 유민이라 불렀다는 데 있습니다. 대만에서 유민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살아간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사회적 낙인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국회의원은 유민은 전과가 있는 위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안문제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유민을 타이페이시 북쪽에 위치한 양명산(陽明山)으로 보내버리거나 강한 빛에 노출시키자는 정책제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의 홈리스 민간 지원단체인 망초심 자선협회는 일반인의 유민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대중매체의 편파적인 보도로 만들어진 일종의 사회적인 오명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대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02년 월드컵과 2010년 G20 정상회담 등 국제 행사 때마다 노숙인을 도시공간에서 내쫓거나 배제시켰고, 수시로 범죄자 취급하며 불심검문을 일삼고, 2008년 총선 당시 영등포갑에 출마한 한 후보는 “영등포역 노숙인을 정리하겠다.”는 말을 내뱉고도 당선이 된 걸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2월 타이베이시 타이페이역(중정구)과 용산사(완화구)에 450명의 유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타이페이시의 유민 90%가 두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서울로 따지면 용산구와 영등포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1년도 주거취약계층 전국 실태보고서를 보면 두 구의 노숙인이 639명으로 서울시 전체 노숙인의 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용시설 또한 타 구보다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럼 타이페이시에는 어떤 유민 이용시설이 있는지 현장 방문한 두 곳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유민 수용 센터(台北市遊民收容中心)
용산사와 타이페이역에서 도보로 각각 1시간,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자 형태의 2층 구조로 만들어진 수용센터입니다. 유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이페이시가 중허구에 설치한 타이페이시에서 가장 큰 유민 입소 시설입니다. 총 84명이 잠을 잘 수 있고 입소 대상자로는 고령, 질환이 있는 사람이고 그렇다보니 대만에서 유일하게 간호사가 배치된 수용시설입니다. 서울의 노숙인 재활시설 중 동대문에 위치한 비전트레이닝센터와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사회복지기관, 의료기관, 경찰의 소개로 혹은 스스로 입소할 수 있습니다. 입소기간은 수일부터 몇 개월까지 다양하며, 시설은 질환으로 인해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나,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생활공간을 제공합니다.

  완화구의 엔유센터 건물 입구의 간판
완화 엔유센터(萬華恩友中心)
용산사와 타이페이역에서 도보로 각각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완화구의 엔유센터는 건물 입구에 큰 간판이 걸려있고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로 들어가면 예배를 보기 위한 장소가 나오는데 4개의 공간이 수평으로 연결된 형태입니다. 두 번째 공간인 주방과 세탁실을 지나면 35명이 잘 수 있게 개인침대가 놓인 세 번째 공간이 나오고 마지막 공간엔 세탁물을 건조하고 짐을 보관하는 공간이 나옵니다. 엔유센터는 대만의 각지에서 보내온 자원을 활용해 운영했지만 민간자원만 활용하기엔 재정이 부족해서 2015년 2월부터 타이페이시 사회국에서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약 100인분의 평일 점심, 저녁을 제공하고 의류나 생필품을 제공하는 활동과 샤워와 세탁설비, 빨래를 말리는 장소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입소 대상자는 특정 종교를 믿거나 믿기 원하는 자 그리고 신앙으로 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유민들이 입소해 있습니다.

위 두 곳 외에 공공 또는 타이페이시에서 지원을 받는 유민 이용시설은 총 3곳이 더 있으며, 각 기관에서 제공되는 잠자리는 총 170자리입니다. 망초심자선협회의 전안집행장인 쉬저웨이는 “지금의 시설들은 유민의 수에 비해 숙소나 전문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타이베이시에서는 사회복지와 의료, 취업의 보조는 지원하지만 법률자문, 심리상담, 심리사회보조, 에이즈환자보조, 약물중독자 보조 등은 기관이 자발적으로 사회자원을 구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타이베이시는 약 200명 이상의 유민이 있으며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이들이 자립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습니다.

대만의 용산사와 유민
마지막으로 대만 용산사와 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입니다. 1738년 청나라 시절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다 보니 그 역사적 가치와 도교, 불교, 토속신 각 종교의 색채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어 내·외국인들에게 모두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런 유명한 절 맞은편에는 대만에서 유민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맹갑공원(艋舺公園)이 있습니다. 이해를 돕자면 한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경복궁 앞마당에 노숙인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관광객 발길 끊긴다는 이유로 내쫓고도 남았을 텐데 여기선 노숙이 가능했습니다. 망초심 자선협회의 비서장 리잉즈씨의 말을 빌리자면 2014년 선출된 커원저 타이페이 시장은 유민에 대해 호의적인 것과 아침마다 경찰과 사회국 직원이 공원을 돌면서 청소도 하고 유민의 짐을 빨간색 자루에 담은 후 다시 흰 비닐로 싸고(대만은 비가 자주 내린다.), 그 위에 이름을 적어 공원 한 곳에 보관합니다. 그 자루는 잠잘 때 다시 가지고 가서 펴고 아침에 다시 싸는 방식으로 짐이 보관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유민은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일을 다녀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서울역 노숙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용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고 청소 목적으로 노숙인들의 짐을 쓰레기 치우듯 치우며 물을 쏘아대는 서울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와 닫았습니다.
  용산사 건너편의 맹갑공원(艋舺公園)
  유민의 짐을 모아 놓은 곳. 이런 짐 무더기가 맹갑공원 곳곳에 있다.

공존할 수 있는 방법
하루 동안 유민 이용시설과 현장에 대해 듣고, 돌아봤지만 경제 성장에 비해 홈리스 복지 제도나 정책이 열악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민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거리 생활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용산사 맞은편 맹갑공원의 광경을 본 후 쫓아내고 시설로 보내는 것이 다가 아닌 공존할 수 있는, 그들이 거주하는 것에 대해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