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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12호-홈리스인권지킴이] 응급대피소를 넘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

[아우성-홈리스인권지킴이]는 ‘홈리스인권지킴이’활동을 통해 만난 거리 홈리스의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입니다.

  서울역 부근의 지하도에 위치한 응급대피소의 외부 모습
매주 금요일 밤 9시 40분에서 10시 사이엔 인권지킴이 활동을 정리하며 응급대피소에 들른다. 얼마나 많은 거리홈리스가 서울역 주변에 계시는지 인원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오늘은 몇 분 계세요?”라는 질문에 들려오는 대답은 “137명이요, 141명이요, 127명이요.” 인권지킴이가 가는 시간대에 이용하시는 분은 대게 이 정도로 비슷한 인원이다. 그것도 한참 주무실 시간이 아니라 이 정도인 것이다. 10시 이후 보통 170-180명, 한참 추웠을 때는 200명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도 했다. 2011년 겨울에 만들어질 당시에는 80명 정원이었지만 많게는 두 배가 넘는 수의 분들이 오셨다. 그래서 2012년 겨울에는 자리를 더 넓혀 120명 정원으로 만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언제나 공간이 꽉 차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게 될 때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자리가 없어요. 꽉 찼으니 다른데 가보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왜 못자?!”라며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고, “어휴…” 짧은 한숨을 뒤로 차가운 바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분들도 계셨다.

차라리 노숙을 하고 말지
한 번이라도 주변을 지나다닌 사람은 알겠지만, 응급대피소가 있는 지하도 초입부터 퀴퀴한 냄새가 역하게 올라온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두 개의 박스 안에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그것도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매일 별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술 마셨으면, 곱게 잠이나 자”, “아! 냄새, 저리 가서 자”,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네”, “여긴 내 자리야, 좁으니 다른 곳으로 가” 이런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매일같이 가장 편해야 할 잠자리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언제나 힘겹게 잠을 청하신다고 한다. 물론 조금씩 양보하며 잠을 자는 것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과포화 상태에서 불편한 동침을 해야 하는 거리홈리스들은 이런 상황이 싫다. 다른 마땅한 대안이 당장에 없기 때문에 아쉬워서 있지만 이용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정말 추운 겨울 어느 날, 응급대피소를 이용하지 않는 분에게 왜 이용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봤다.
“에이, 거긴 안가요, 개, 돼지가 바글거리는 우리 같아서 싫어요. 차라리 노숙을 하고 말지.”

잠자리만 제공하면 땡?
겨울동안 응급대피소에서 잠을 잤더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다. 일거리가 없어서 겨울동안 노숙을 했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새벽부터 건설일용직 현장에 나간다. 일해서 돈을 벌고, 그래서 다시 집을 얻어 노숙생활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찾아간 현장에서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한눈에 보더라도 야윈 몸에 혈압은 왜 그렇게 높은지. 혹시나 모를 사고가 발생할까 염려하여 현장에서도 이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간신히 찬 맨바닥을 피해 응급대피소에서 잠을 잤었지만, 봄이 되면 일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청결하지 않은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과 섞여 잠을 자는 그 자체로도 피곤한 겨울을 지낸 이들이었다. 그리고 거리 생활이라는 것은 건강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곳이었다. 그 결과 부실한 영양 상태와 그로 인해 건강하지 않은 몸은 아직 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겨울만 얼어 죽지 않게 잠자리를 제공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을 365일 한데 모아놓고 재우고 먹이는 수용소를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위급상황에서 주취자도 잠 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노숙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더 다른 지원으로 연계하는 것들이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매일 이사 가는 홈리스
인권지킴이를 통해 만나는 분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짐을 맡길 곳이 없어서 들고 다니기 힘들어. 맡아줄 곳이 필요해. 안 그러면 버려야 돼. 여기(응급대피소)에서 보관하면 안 되나?” 최근 몇 년 사이, 지하철 역 물품보관함은 거리홈리스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안내문을 붙이거나 국제행사가 있을 땐 어떤 통보도 없이 짐을 빼버리기도 하였다. 근처 마트에서도 당당히 백 원을 넣고 이용할 수 있는 보관함이 있지만 이용할라치면 어느새 달려온 경비 때문에 눈치를 보거나 포기해야 하는 등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리홈리스에겐 들고 다니는 모든 짐이 생필품들이다. 보관할 곳이 딱히 없어서 식사를 하거나 일을 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매일같이 이사 가는 느낌으로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짐을 자주 분실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면 생필품을 처음부터 다시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10년 G20을 앞두고는 테러범의 가방이란 오해를 사기도 하여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에 의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거리홈리스가 자신의 짐을 전부 내보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홈리스의 사적 재산은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름동안 닫아놓는 응급대피소를 활용하여 홈리스의 짐을 보관해줄 수 있는 곳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엔 응급대피소, 여름엔 거리
응급대피소는 4월 중순이면 폐쇄된다. 그리고 그곳을 이용해오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거리에서 잠을 자야 할 것이다.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올 거리홈리스를 ‘여름이니 괜찮아!’라는 인식으로 방관하여선 안 될 것이다. 겨울엔 응급대피소, 여름엔 거리. 이렇듯 반복되는 거리홈리스의 문제에 대해 부실한 지원체계를 정비해야한다. 그야말로 응급한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피소보다 더 필요한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짐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돕는 임시주거지원과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복지자원으로 연계하여 홈리스 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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