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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0호-지금, 아랫마을은]깡깡이는 어떻게 한글반에 들어왔을까?

[지금, 아랫마을은] 여섯 개의 반빈곤 단체가 모여 있는 아랫마을의 활동을 알리는 꼭지입니다.

  2014년 홈리스야학 봄학기 한글반 신입 교사 깡깡이
심심하게 말하자면 SNS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됐고,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김은희이자 깡깡이에게서 빈곤은 늘 숙적인데, 그 까닭은 고등학교 때 가난을 마주하고 꿈을 미루게 된 3년이란 긴 시간들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삼았고 커서는 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1 때까지는 내가 그림쟁이로 살아갈 것이라 믿었었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미술을 해야 한다 생각했고 2학년 때부터 부모님께 미술학원을 보내 달라 졸랐다. 하지만 월 50만원은 기본, 방학마다 특강으로 몇 백이 깨지는 게 일수인 학원비를 우리 집은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을 접고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결정했다. 나처럼 ‘돈이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신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학생ㆍ노동ㆍ성소수자인권 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과 함께 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닦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오가며 反빈곤 운동ㆍ교육 운동이 나의 마음을 깊게 울린다는 것을 작년쯤 깨달았을까. 앞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뜸했던 연대이자 운동을 어떤 실천으로 풀어갈 것인지 ‘진득하게 물고 늘어져보자’ 라는 마음을 먹고 휴학을 했다. 때마침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 신입교사를 구한다는 글을 SNS에서 보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실천과 뜻이 맞을 거란 단순한 생각으로 홈리스행동 페이지에 접속해 야학교사를 지원했고 지난 3월 10일 월요일 한글반 첫 수업을 마쳤다.

걸림돌 선생님이 진행하신 첫 수업에서 나는 꽤 복잡했다. 여럿이 모여 무언가를 배우고 그를 통해 자신을 얘기하는 그 시간들이 재미있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도 반백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글자를 자유롭게 읽고 쓰지 못하는 기분은 어떨까,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초법 수급자는 보통 40대 이상으로 노안이 온 수급자들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 신청서의 글자 크기가 깨알 같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씁쓸함을 뒤로 하고서 이번 학기 한글반에서 모르는 글자들도 함께 읽고 학생들과 함께 사는 기분을 나누고 싶다. 깡깡이 개인의 목표로는 손난로처럼 활동하고 싶다. 요즈음 손난로는 천천히 뜨거워진다. 그리고 지속시간은 꽤 길다. 천천히 오래 뜨거운 손난로처럼 겨울을 나고 봄을 맞고 여름을 나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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