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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31호] ‘정상’이 아니라는 차별에, “이단 옆차기”

[어깨걸기]는 홈리스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연대 단위의 소식과 홈리스행동의 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2015년 4월 25일 토요일. 봄의 기운이 완연한 날. 홈리스야학 성평등특위 위원들과 학생들이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고(故) 육우당 12주기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이상한恨연대문화제>(추모 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행사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 장애여성공감, 노들장애인야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최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스케치
이번에 추모 문화제는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이 다름과 차별, 혐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함께 위로받는 자리로 꾸며졌습니다. 모든 차별과 억압 속에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며 연대를 통해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우리 홈리스야학에서는 성평등특위 위원 행복이님께서 여성 홈리스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차별과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생생한 경험을 담아 추모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몸의 조건과 성적 지향들 속에서, 다양하게 준비된 공연들은 열린 마음으로 추모와 연대를 보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각 단체에서 준비한 춤과 노래에 우리 홈리스 야학 구성원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거리며 신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나름(?!) 유명한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약간은 난해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문화충격으로 접하면서, 그러나 왠지 속 시원한(!)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사를 마쳤습니다.
정상성에 기반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해하며 외쳐봅니다. “이단 옆차기!”

故 육우당을 아시나요?
육우당은 2003년 성소수자혐오로 인해 세상을 등진 청소년 성소수자의 필명입니다(육우당은 중학교 재학당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자각을 하고, 고교재학 중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져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동성애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활동가입니다). 육우당은 생존당시 청소년 보호법에 동성애 조항을 삭제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3년 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조항에 대한 삭제 권고를 내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하며,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활동가인 한편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육우당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에게 행사했던 엄청난 적개심과 폭력 앞에 큰 참담함을 느끼며 죽음으로서 동성애자 혐오와 차별에 저항했습니다.
동성애인권활동가이면서 기독교인, 동시에 2001년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던 시인 육우당은 그의 죽음으로, 그리고 남겨진 작품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육우당” 부분 참고.

현실

-육우당


소돔과 고모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
가식적인 십자가를 쥐고 목사들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우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발악하고
만일 우리가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 주시겠지
창녀와 앉은뱅이에게도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故 육우당 추모제 발언문]

- 행복이 / 홈리스행동 성평등특별위원회, 위원


여성 홈리스의 삶에 대하여
남녀 평등을 외치고 있는 사회에서 사회는 여전히 남자쪽 입니다. 저는 홈리스 상태에 처하게 되면서 노숙인 쉼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OO교회에서 운영하는 그 쉼터는 아동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교회이다보니 새벽 4시에 일어나야 되고, 말로는 종교 강요를 안 한다고 하는데 찬송가 부르고 기도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차별할까봐 참석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요일은 쉼터 사람들 별도로 구석에 앉아서 예배를 보는데 그 교회 신도들이 쳐다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일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쉼터 생활을 하며 입소해 있는 여성들은 청소, 설거지, 반찬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여자들이니까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입니다. 입소한 사람들에게 취직자리를 알아보게 하고 자립을 시켜야 하는데 그곳은 공공근로 하나 지원도 못 받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지원 요청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못 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쉼터에 오래 있을수록 교회는 손해 볼 일 없지만 자립은커녕 기도원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생활을 하게 되었던 고시원 역시 여성이 살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남녀가 층이 구별되어 있지 않아 여름에 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입임대주택도 그 건물에 남성들이 많아 사납지 않으면 살기가 힘듭니다.

여성 거리홈리스의 삶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리 노숙인 급식소가 있는데, 그 건물 3층에 샤워실을 만들어 놓고 1,3주는 남성, 2,4주는 여성 홈리스가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급식소 측은 하루에 평균 여성 홈리스 2~3명 가량이, 남성은 2~30명 가량이 온다고 합니다. 이용하는 인원의 차이가 크다보니 급식소 측은 여자 2~3명 샤워시키자고 그날 남자들을 출입금지 할 수 없다며 남자 전용으로 아예 바꿔 버렸습니다.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할지는 아마 여러분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아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