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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31호] 노숙 방지를 위해서 벤치 팔걸이 대신 필요한 것들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에 눕지 말라?
지난 4월, 한 언론에 '노숙 방지 벤치 팔걸이 설치'와 관련한 기사(2015년 4월 12일자, 뉴시스)가 실렸다.
“노숙자와 주취자의 공원 벤치 점령을 막기 위한 팔걸이 설치를 놓고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중략)… 청주상당경찰서는 청주 중앙공원 벤치를 노숙방지용 팔걸이 벤치로 교체해 달라고 시에 요청했는데, 청주시는 벤치에 팔걸이를 설치하는 것은 이용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와 관련한 정보공개청구 내용에 대한 청주상당경찰서의 답변자료를 보면, 팔걸이 설치를 제안한 이유로 “청주의 대표공원인 중앙공원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팔걸이 설치가 공공 시설물 이용에 있어서 차별을 받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정보공개청구 내용에 대한 청주상당경찰서의 답변자료>
[질문]…(중략)…넷째, 경찰이 청주시에 요청한 노숙방지용 팔걸이 설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이들을 공공 시설물 이용에 차별을 받게 한다는 점에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배반되는 조치라 판단됩니다. 이에 대한 귀 경찰의 판단은 어떠합니까?
답변: 중앙공원의 벤치를 노숙방지를 위한 팔걸이 用 벤치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청주의 대표공원인 중앙공원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질문] 청주 중앙공원 내 노숙방지용 팔걸이 설치에 대한 귀 경찰의 현재 입장은 무엇입니까?
답변: 중앙공원 내 팔걸이 用 벤치 설치는 중앙공원의 시설 및 환경개선을 위해 우리서가 청주시로 요청한 사항 중 하나이며, 공원 내에서 노숙인을 발견할 경우 노숙인의 안전을 위해 상당구청 주민복지과로 인계하고 있습니다.


  공원의 벤치나 시설물에 노숙인이 눕거나 앉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 2004년부터 서울시에서는 노숙인이 공원에서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원 의자에 턱과 팔걸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시청 앞 광장에 벤치나 음료수대,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노숙인이 몰려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서울역 대합실 안 벤치에도 팔걸이가 있다. 노숙인들이 눕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들 조치들은 공적 공간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폐가 된다”고 간주되는 행위들을 형벌화하는 것이다. 국가는 공공장소에서의 취침, 앉아있기, 누워있기, 소유물 보관하기 등 거리 생활과 결합된 행위들을 형벌화하고 있다. 집이 없기 때문에 거리에서 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들이 형벌로 제재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들 조치들은 가장 가난하며 취약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적인 사회적 태도의 확산에 기여할 뿐이다.

금지와 통제의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
무료로 누구나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물며 눕도록 허용된 공간, 누워도 괜찮은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홈리스 뉴스 23호(“홈리스들에게 철심을 박다”)에서도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다. 영국 런던에서 고급 아파트와 상가, 각종 명품 매장 입구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이 증가하자, 이들을 내쫓기 위해 바닥에 철심을 박아놓은 사례가 있었다. 벤치에 눕지 못하도록 부착된 팔걸이, 사람들이 눕지 못하도록 끝을 뾰족하게 만들거나 바닥을 울퉁불퉁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 공공장소에 CCTV와 함께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클래식음악을 틀어 놓거나 귀에 거슬리는 고주파 음향을 통해 시위와 같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억제하는 방식 등을 “적대적 건축/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디자인은 공공공간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른바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원하지 않는가에 있다. 이러한 적대적 건축/디자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시도하며 빈곤을 향한 무관심과 적대감을 바탕으로 한다. 적대적 건축/디자인은 앞서 이야기한 형벌화 조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금지와 통제의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국가는 벤치 팔걸이 대신 홈리스 당사자들이 거리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주거, 고용, 보건서비스 등)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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