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은 살을 에는 칼 바람 이라는 말을 할 만큼 무섭도록 추웠다.
무협 영화에 나올법한 날아다니는 시퍼런 칼이 온 몸 가려지지 않은 곳에 내려 꽃히는 느낌이다. 솔직히 더 두려웠던 것은 지금의 추위가 앞으로 맞이할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전제된 명제이기에 너끈히 견뎌야 한다는 강박이 더해서일 것이다.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라며 건네준 캔 커피의 온기는 채 10분도 못가지만 바쁜 출근길 매점에 들려 가장 뜨거운 커피를 고른 아가씨의 마음은 칼바람의 방패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시민들의 연대 중 에 너무도 과분한 사랑을 어제 받았다.
가끔 연대 동지들이 오면 찾아가는 식당이 있다.
그곳에 주인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시고, 손님이 없을 때나, 혹은 있을 때라도 양해를 구해 답배를 태우게 해주신다. 그래서 좋다기보다 주인의 너그러운 인품에 풍성한 밑반찬이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주인 아주머니가 어제 아침에는 출근길에 솜바지 두 개를 건네 주신다. 그동안 팔아드린 음식값에 더 보태야만 할 돈을 지불했을 것 같은 솜바지의 질감이다. 믿기지않아 올려본 놀란 눈동자에 난처함과 고마움, 받아도 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어색함을 느끼셨는지 “ 응 아들 주려고 샀는데 아들이 안 입는데, 그래서 자기들 생각나 가져 왔으니 부담 느끼지 말고 입어. 솜바지라 따뜻할거야. 그나저나 빨리 해결돼서 내려가야 될텐데. 걱정이네.” 하시며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아마도 그 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면 한 동안 멍하니 솜바지를 내려보는 빛바랜 사진처럼 멈춰진 내 모습을 봤을 것이다.
캔 커피와 솜바지의 차이로 과분한 사랑이라 줄긋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담요를 동여매고 앉아있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싸늘함을 봤을 것이고, 장성한 두 아들의 힘겨운 삶을 보면서 노동자의 고단함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무치게 느꼈으리라!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기에 솜바지를 찾아 시장을 헤매는 수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랑을 받은 나는 과분하다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로 2년 넘게 넘치는 사랑으로 연대와 투쟁에 함께 해준 동지들을 돌아보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계속해 홀로 있지 않다는 포만감을 안겨주고 따뜻함을 함께 나누는 동지들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