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의 달력엔 오늘이 있고, 어리석은 자의 달력엔 과거와 내일만 있다는 말이 있다. 하루 24시간 오늘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늘에 충실 하는가 생각해본다. 오늘에 충실한 자 만이 과거의 실패나 불행으로 혹은 괜찮았던 시절을 거울 삼아 주어진 오늘 지혜로운 선택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오늘이 쌓였을 때 우리의 내일은 우리가 지향하는 오늘을 맞이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오늘을 살아가는 게 너무도 버거워진다.
한줌도 안 되는 것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실한 민중들의 삶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부쩍 보수니 진보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보수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유지 하려는 것이고, 진보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이나 단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보수를 사칭 하며 자본과 정권을 잡고 민주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그것이 전통으로 내려온 관습이나 인습일 지라도 지키려고 하는 명분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소수 자본 집단 이익에만 매몰되어가는 형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이를 두고 보수라 하면 “도둑” “사기꾼” “파렴치한” 이들 모두도 보수라 칭해야 하지 않는가!
FTA를 보면서 그들은 그들의 법칙인 정글의 법칙마저도 깨버리는 판으로 치닫고 있다. 배부른 사자는 앞에 토끼가 있다 하여도 잡아먹지 않는다. 적어도 정글의 법칙은 잡아놓고, 쌓아놓고, 저장하여 썩게는 만들지는 않는다. 자연 최소한의 순리는 정글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연일 날아드는 물 대포와 최루액으로 최소한의 삶을 지키려는 민중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전국에 노동자를 대표해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해고를 당하고, 감옥에 붙잡혀있고, 평생을 벌어도 못 갚을 벌금으로 나머지 생마저 옥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투쟁을 멈출 수가 없다. 더 이상 고통당하고, 죽음을 맞이 해야 하는 동지들이 없어야 하기에 투쟁에 깃발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故허광만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