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칼럼]기득권 지배층에 의해 선전된 금욕주의가 엘리트 독재 부른다

마광수(연세대 교수, 국문학)

[마광수 칼럼] 솔직한 성애의 추구는 운명극복의 지름길

인간의 운명과 행복을 창조해나가는 데 있어 성과 사랑은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인간의 행복을 세속적으로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가 돈과 명예 그리고 성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성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어찌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도 배부르게 먹고 살고 사랑을 즐기면서 살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인데, 이제는 어쨌든 잘먹는 일보다 잘 사랑하는 일이 더 중심과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적 명예를 얻는 일 역시 사랑의 쾌감을 남보다 많이 선취(先取)하고자하는 욕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적 욕구를 도덕적 명예욕이나 신앙욕(信仰慾) 등으로 대체시켜야만 하는 사회는 오히려 병든 사회고 왜곡된 사회다. 또한 개인으로 봐도 성적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은폐시켜 억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국 중세기의 종교재판관과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결국 성격파탄자가 되어버린다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 <무희(舞姬) 타이스>는, 당대의 명기(名妓) 타이스를 회개시키러 갔던 수도승이 오히려 타이스의 관능미에 반해 스스로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또한 성과 정치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기득권 지배층에 의해서 선전된 도덕과 윤리는 다분히 금욕주의적 측면에 치중된 것이었다.

국민 개개인의 금욕주의적 인식이 강해질 때 거기서 반드시 ‘복종의 미덕’이 생겨나고, 아울러 ‘인내심의 함양’이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소수의 지배계층은 이성우월주의에 입각한 ‘엘리트 독재'를 합법적으로 자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마광수 그림 '거꾸로 본 세상'


그러므로 운명을 긍정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사랑 욕구, 즉 성욕을 그 자체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일이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성적 공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껴서는 안된다. 직접적인 실현과는 별도로 ‘느낌으로서의 성’‘상상으로서의 성’을 최대한 수용하여, 우선 당당하게 자위행위로라도 대리배설시켜보도록 애쓰자.

성과 죄의식을 연결시킬 때 거기에 대한 자책감은 응당 불행을 죄의 대가로 불러들이게 된다. 예수의 말대로 사랑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사랑만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고, 사랑은 반드시 성애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성애의 형태는 자기애까지 포함하는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에 대한 솔직한 관심의 표현과 직, 간접적 추구는 인간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감각하는 동물이므로, 감각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성적 쾌감의 활용이야말로 인체의 창조적 기능을 가장 완벽한 상태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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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운동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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