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터치] 진보개혁진영의 도덕근본주의 & 사악한 의도 - 김창훈

김창훈(프레임코칭센터 대표)

현재 진보개혁진영은 바리새인들이다

어릴 때 읽던 성경 속 예수는 늘 누군가와 언쟁하는 예수였다. 예수님이 계신다. 누군가 예수님에게 말로써 도발한다. 그 도발자의 논리에 대해 예수님은 차원 높은 비유로 그 상대자에게 답한다. 그러나 그 상대자가 모두 예수의 가르침에 감화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더러는 예수에게 감복해 믿는 무리의 한 사람이 되기도 했겠지만 대다수는 예수의 지적·영적 권위를 무너뜨릴 또 한번의 기회를 노렸다.

예전엔 예수에게 도전하는 이런 무리들을 아주 나쁜 사악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나이 들어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공부하면서 이 도발자들이 당시 그 사회에서는 얼마나 나름 훌륭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훌륭함은 때때로 다른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그 도발자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이었던 사두개파에 대항하는 진보적 집단이었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관련한 엄청난 이권경제를 구축했다(이 이권체제에 대한 항거가 예수의 성전정화 이야기다). 그러고 이들은 외세인 로마와 결탁해 나름의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예수를 군중들에게 보이고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기 전까지의 정치과정은 사두개파와 로마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두개파는 종교적 영적 측면에서도 부패해 있었다.

이런 사두개파와 대척점에 있었던 것이 바리새인들이었다. 이들은 도시의 중간계급이었다. 이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극한 마음으로 신봉했으며 일상의 삶속에서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부패한 사두개파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체제를 자신들로 대체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두개파에 비교해 힘이 없었다.


        
△ 예수의 창녀 구하기 - 예수가 한 창녀를 검색하려는 경찰을 말리고 있다.(그림= jesusisnotalone.blogspot.kr)


물적 기반과 힘이 약한 세력은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까? 간단하다.
도덕이라는 <상징적 자본>으로 자신들의 부족한 현실적 힘을 보충하고자 한다. 상징은 의외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가령 예를 든다면 금융감독위가 시작되고 이헌재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브리핑공간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금감위가 법에 의거한 국가정책서열 1위기관은 아니었다. 다만 시대상황과 그에 부합한 이헌재의 정치력과 상징조작에 힘입어 무소불위의 국가기관으로 진화해 갔던 것이다.

아마 사회경험이나 조직 경험이 많은 분들은 이해하실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제2인자의 강력한 무기는 도덕이다.

예수가 싸웠던 사람들은 도덕적 인간들이 아닌 도덕근본주의자들이었다. 두 그룹의 차이는 이러하다 도덕적 인간은 안식일에 자신은 비록 일을 하지 않고 쉬더라도 그날조차 일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이다. 도덕근본주의자들은 안식일 일하는 사람을 향해 회개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다.

이 차이는 자신의 도덕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포지셔닝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에서 갈라진다.

예수세미나학파의 리더 도미닉 크로산은 예수의 특이한 점을 <금욕주의의 세례 요한과 잔칫집의 예수>라는 탁월한 유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도덕근본주의자들이 예수에게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지점이 창녀와 어울리고 세리조차 받아들이고 잔치를 즐기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왜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것일까?

예수의 존재와 그의 행위가 도덕과 종교적 경건성을 이용한 바리새파의 확장이라는 그들의 거대한 그랜드디자인에 심대한 파열구를 냈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건성에 기반한 바리새인들의 모든 체계가 허물어갔다. 그랬기에 그들은 예수에 그토록 도전했던 것이다.

예수와 진보주의자 바리새인의 본질적 차이는 민중에 대한 사랑의 농도에 있다. 진보주의자에게 민중은 정치적 동원의 대상이었지만 예수에게 민중은 밥상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도덕에 가려진 그 불순한 의도, 그리고 그 경건함이 민중에게 새로운 질곡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한국에서 다수대중이 바라는 사회는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다수대중을 정치적 대중이란 관점으로 보는 세력은 누구일까? 다수대중의 경건하지 못하고 비루한 삶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기억하자!
도덕이 도덕근본주의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지점엔 누군가의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음을...


▒ 출처: 김창훈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joekim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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