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노동자, 자본가 그리고 문화적 돌연변이 3/3

최형록(인문학자)


노동자, 자본가 그리고 문화적 돌연변이


- '리센코주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21세기 마르크스주의



3. ‘리센코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리센코주의’는 부르주아 생물학의 오류와 이데올로기 성을 변증법적, 유물론적으로 비판해서 ‘마르크스주의적’ 생물학을 수립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리센코주의’의 오류와 교훈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인간의 행동 그리고 사고에 대한 환경결정론과 생물학적(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어느 관점이든 일방적인 관점에 사로잡히지 않고 ‘개방적이면서 윤리적’인 관점의 수립에 유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리센코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레닌의 “전투적 유물론”에 충실하지 못했다. 나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강조했던 변증법적 사고에도 충실하지 못했다.1) 변증법적 유물론은 특정한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Programmatic) 방법이 아니다. 리센코 이후 소련의 생물학자들은 레닌이 그러했듯이 과학과 과학에 대한 해석을 구별했다. 변증법적 관점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여 교조주의의 특정 형태들과 사고의 편협함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리센코주의는 멘델주의가 관념론적이며 형식 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멘델의 통찰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멘델은 유전 문제를 교배에 의한 후손들에 나타나는 변이의 실제 유형에 집중함으로써 겉보기에 모순적인 유전과 변이라는 양면을 하나의 설명기제 내에 통합시켰다.2)


          
△그레고어 멘델: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식물실험자이며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사. 이른바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하여 유전학의 수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유전학의 첫 장을 연 생물학자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멘델이 완두콩을 이용한 7년의 실험을 정리하여 1865년에서 1866년 사이에 발표한 유전학의 법칙이다.[인권뉴스]


둘째, 리센코주의자들은 유전학자들이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확립했다고 비판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 유전학의 정수 가운데 한 가지가 유전자의 변이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셋째, 리센코주의자들은 유전학이 유전자, 체세포 그리고 환경 사이에 장벽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사실 발생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DNA-단백질-환경(단백질 합성이라는 방향) 그리고 환경-단백질-DNA(유전자 억압과 유도라는 방향)라는 쌍 방향적 상호작용을 규명했다. 그리고 획득형질 유전론에 대한 K.O 펀치로서 환경의 우연한 사건이 DNA 내의 변화를 지도하는 것이 아님을 규명했다. 즉 상호작용이라는 변증법적 원리가 논리상 가능한 모든 형태의 상호작용이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전히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다.3) 이런 오류와 관련된 것이 넷째 문제이다.

넷째, 리센코주의자들은 유전학에는 변화에 필요한 내외부적 조건들에 대한 정확한 관점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발생유전학은 유전자가 적절한 환경 속에서 작용할 때에만 어떤 표현형이 발생하는 한편, 환경이 적절하건 그렇지 않건 오직 일부 유전형만이 그런 표현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리센코주의자들이 눈에 보이는 구조에만 주의하는 설명방식을 거부한 것까지는 정당하였으나 구조에 과정을 대립시킴으로써 무정부주의적 관점과 유사해졌다. 즉 구조와 과정의 통일성을 놓쳤던 것이다.

여섯째, 리센코주의자들은 어떤 체계의 하부체계의 ‘상대적 자율성’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즉 오직 중간수준만을, 생물과 그것의 생리학이라는 수준만 보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조직의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사이의 통합성을 강조한다. 1969년에 소련의 『철학의 제 문제』의 편집장이 된 I. T. 프롤로프는 생물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가 환원론의 문제, 부분과 전체의 관계문제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철학적 쟁점이 되었다. 생명을 물리화학적 용어(조건)로 설명하는 것이 충분한 것인가? 그는 생물학을 두 수준, 물리화학적 법칙의 수준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생물학적 혹은 “체계이론”적 수준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했다.4)

르원틴에 따르면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인간을 비롯해서 생물은 진화과정에 의해서 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즉 유전자의 전환, 돌연변이, 자연선택의 과정에 의해서 환경 속에서 최대한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적합한 것이 되는 것으로 본다. 요컨대 그것은 생물을 본질적으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본다. 이에 비해서 변증법적 입장은 생물과 환경이 부단히 상호작용하고 상입(相入;Interpenetration)한다고 본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것 그 자체가 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는 모든 생물의 활동에 따라서 부단히 변화한다고 본다. 즉 어떤 생물에 대해서 다른 모든 것들은-포식자, 피식자, 기타 등등- 바로 그 “환경”의 일부를 이룬다.5)

생명체와 환경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과 관련해서 경청할 만한 입장이 F. 바렐라의 관점이다. 바렐라는 신 다윈주의에 대해서 상호 밀접한 세 가지 문제,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 (도킨스에 따르면 그것은 “생존기계”로서 유전자라고 본다)6) 라고 볼 때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설명에 있어서 발생하는 난점, 적응주의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압력이 적응의 주된 요인인 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여기에서는 세번째 문제만 소개한다.7)

신 다윈주의적 자연선택의 관점은 행동주의적이다. 환경의 변화가 자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연선택에 의한 종내(種內) 변화는 반응을 구상한다는 식이다. 바렐라는 이런 관점에 대해서 뇌의 경우를 들어 비판한다. 뇌에 대한 자극은 사전에 결정된, 어떠한 결과도 낳지 않는다. 왜냐하면 뇌 내에는 자극과 접촉하는 대단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 데 뇌가 그 자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유전자는 일종의 네트워크(Reseau)의 점들(Points)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체(成體)의 내부에서 엄청난 양의 것들이 변하지 않고서는 유전자가 변하지 않는다. 환경 그리고 자연선택과 동등한 자격으로 진화의 “내재적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진화의 단서가 되는 요인들의 큰 부분은 결과적으로 생명의 다양성에 가장 유용한 요인들, 외적인 자연 선택의 압력이라기보다는 내적 요인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생명체는 환경을 낳고 이 환경은 구속요인이 되어 결과를 낳는다. 요컨대 생명체와 환경은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일곱째,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비결정적(random) 사건과 결정된 사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이미 지적했다. 그러나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인과율에 대한 공격과 연계지으면서 진화에 있어서 비결정적 과정들의 창조적 역할에 적대적이었으며 진화론적 변이의 원천으로서 돌연변이에 대해서 그리고 집단유전학의 확률론적 모델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다.

리센코 운동은 레닌의 ‘문화혁명’의 실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깊고 넓게 성찰해보아야 할 점은 레닌의 ‘문화혁명’의 이론적 토대의 모순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경제주의적’ 결정론의 혐의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고 레닌의 전위와 대중의 관계에 대한 조직론은 스탈린 시대에 ‘무오류의 당’이라는 거대한 괴물(Leviathan)을 낳았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생각과 결단을 해서 행동에 나서도록 다수 민중을 조직하는데 이제까지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어떻게 하면 혁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가상경제(Economie virtuelle)와 카지노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국가에 대한 분석,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 여성 해방운동과 계급투쟁과의 결합모색,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간의 관계 설정 등으로만 과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에서 민중의 해방운동에 대한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성적 정체성 부정에 집중하며 노자간의 기본적인 계급모순을 외면하는 주디스 버틀러(왼쪽 사진: 여성운동가, 젠더이론가)에 대해, 좌파지식인 슬라보예 지젝(오른쪽 사진)은 강연회(영국 리즈대학, 2008)에서 적(enemy)이라고까지 말한다.[인권뉴스]


레닌은 “칼 마르크스 사상의 역사적 운명”에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위대한 세 시대에 있어서 각 시대는 마르크스주의에 새로운 확신과 새로운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낙관했다.8) 황금만능주의가 남한 청소년의 정신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수학의 행렬이론을 응용해서 기존의 전자우편보다 30배나 빠른 암호를 개발함으로써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는, 아일랜드의 16세 된 여고생 플래너리는 자신의 개발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이용하도록 하겠다고 한다.9)

미래에 대해서 비관하기에는 비중 있는 낙관의 증거들이 여전히 결코 적지 않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요소”로서 독일철학, 영국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를 거론했다.10) 21세기에 마르크스주의는 이 세 가지로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나아가 확신이 ‘윤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마르크스주의 ‘과학’으로 ‘윤리’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11)

필자는 21세기에도 마르크스주의가 확신을, ‘과학적이면서 윤리적으로’,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주려면 인지-신경과학 등의 성과에 기초해서 ‘정신연구’를 수용해야한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신세대가 진정으로 새로우려면 정보통신 혁명으로 쇄신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와 개인주의에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화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의식과 감정의 관계, 그리고 무의식과 감정의 관계, 이 모든 것들과 윤리관계를 규명해야하지 않을까?


주(註)

1) 엥겔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한권으로 된 선집』, (뉴욕, 인터내셔날 출판사, 1968년) 410~416면.
2) 르원틴의 『변증법적 생물학자』, 192면.
3) 앞의 책 193면.
4) 그라햄의 책, 152면.
5) C.바알 로우 편, 『가이아로부터 이기적 유전자까지』, (런던, 엠아이티 출판사, 1994년 판), 186면.
6) R.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1995년, 홍영랑 옮김).
7) F. 바렐라와 L. 뤼지, 『구름다리』, (파리, 알벵 미셀 출판사, 1995년), 299~302면.
8) 레닌, 『칼 맑스와 그의 사상』(파리, 에디숑소시알 출판사, 1953년), 68면.
9) 『한겨레』, 1999년 1월15일자.
10) 『3권으로 된 레닌 선집』,제1권, 39면.
11) 필자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T.샤닌, “사회주의 문제:발전의 실패인가? 아니면 윤리의 실패인가?”, 『역사워크샵 저널』, 일자 미상, 69~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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