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디플로 읽기] 오큐파이 운동이 빠진 함정

지제크 VS 버틀러

토머스 프랭크(하퍼스 매거진 기자)

사람들은 티파티 운동과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서로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조세 감면에 치중하는 반면, 후자는 불평등 심화에 항거하고자 일어난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파티 운동이 계속 사회와 제도에 영향을 주고 있는 반면,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둬들이지 못한 채 (일시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캠프 진영을 철수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2012)의 저자 토머스 프랭크는 이런 결과에서 정치 전략에 관한 잔인한 교훈 몇 가지를 끌어낸다. 이 교훈들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반향을 미칠 것이다.

      
      <무제>, 1955-아스제르 조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화려한 미래를 약속해줄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이 운동에 얼마나 도취됐었는지 되새겨보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나는 워싱턴의 전철 안에서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 운집한 시위대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때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구제금융이 이뤄진 지 3년이 지난 때였고, 주변의 모든 지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에 대한 희망을 버린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공화당의 은행가 친구들이 백악관과 예산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며 이 나라를 디폴트(채무불이행)의 언저리로 몰아간 지 두 달이 지난 상황이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내 옆에는 말끔히 차려입은 한 남자 승객이 서 있었다. 그가 든 쇼핑백에 프린트된 발랄한 문구들로 미뤄봤을 때, 남자는 무역박람회 같은 곳에 다녀오는 고위급 간부임이 분명했다. 쇼핑백에는 ‘어떻게 해야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할 것인가’ 혹은 ‘사치의 효용’, ‘승자가 되는 것의 좋은 점’ 등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남자는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나는 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이 북적대는 만원 전철 안에서 내가 보는 신문의 헤드라인이 노출되는 게 껄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바로 그 남자 승객 같은 사람들이 벽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인터넷에서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 속의 시위대는 한 서점 앞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지금 시위대가 어떤 한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그 자신들을 위해서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아니냐"며 투쟁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이렇게 반박한다.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무정부주의로 나아가는 후기 구조주의 사상이 그러하듯,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오직'이라는 단어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수많은 공간이 열린다."

지식인 행세를 하는 이 사람의 어이없는 주장을 들으면서 나는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2011년 10월 주코티 공원에서 천막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에게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미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바 있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길로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유쾌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축제를 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중요한 건 축제가 열린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 변화돼 있을까요?"

지제크의 경고는 2011년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관해 처음으로 쓴 책이자 가장 포괄적으로 시위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점거하라: 점거된 미국의 시위 현장>(Occupy!: Scenes from Occupied America·Verso·2011)에 나타나 있다.

이후 수많은 관련 출판물들이 서가를 잠식했고, 농성 중인 캠프촌에서 작성된 연설문부터 시작해 신문·잡지의 분석 글, 시위대의 증언집이 쏟아졌다.

이런 책 대부분이 지제크의 경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책의 저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사랑했다. 이들은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세계의 힘있는 자들을 떨게 하고 소외된 자들을 찬양하게 만들었다며 근거 없는 주장을 떠벌였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이런 관점은 대개 그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모든 게 바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와 99%의 운동>(1)이라는 책이 한 예다.

<99%로부터의 목소리>(Voices From the 99 Percent)(2)를 쓴 저자 레니 플랭크는 "99%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깨어났다. 미국의 정치 양상은 이제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 시위 지도자 크리스 헤지스의 단호한 열의에 비하면 이는 그나마 미온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파괴의 날, 항거의 날>(Jours de destruction, jours de revolte)(3)에서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두 저자는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지에서 일어난 1989년 동구권 혁명에 비교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뉴욕 시위대는 일단 탈조직적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으며,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믿음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들은 미국 전역에 반향을 일으킨 포괄적인 저항운동을 일으켰고, 유럽 국가들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수십 년간 엘리트 계층이 강요해온 불안정한 상태는 이제 다 무너졌다. 또 다른 이야기의 타래가 구체화된 것이다. 혁명이 시작됐다."


'오큐파이'와 '티파티'의 차이

이 책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모두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똑같은 성명을 인용하며, 똑같은 해석을 늘어놓는데다 똑같은 사소한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 젬베 연주자가 어떻게 사람들의 잠을 깨웠으며, 브룩클린 다리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거기 그렇게 모여들었는지, '제너럴 어셈블리'의 아이디어는 누가 맨 처음 낸 것인지, 다음날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광란의 밤 동안 저마다 어떻게 공원을 청소했는지 등 모든 게 상세히 다뤄진다. 점거한 잔디밭 1m²당 쏟아져나온 단어들을 집계하면, 주코티 공원은 아마 언론 역사상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장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서사시는 짧게 막을 내렸다. 공원에 진을 치고 있던 시위대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두 달 뒤 모두 빠져나갔으며, 고참 시위대가 움직이는 잔류 집단 몇몇을 제외하면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모두 해산했다. 주코티 공원의 캠프촌으로 몰려들었던 언론의 열기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참이다. 이쯤에서 잠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이들의 불쾌한 쌍둥이인 티파티 운동을 위시한 보수 활동 세력의 성과와 비교해보자.(4) 몸값이 높은 이 자선운동가들의 역할에 힘입어 공화당은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주 의회에서는 민주당으로부터 600석가량을 낚아챘다. 티파티 운동은 심지어 활동가 중 하나인 폴 라이언을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찬양하는 이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파헤치는 문제는 '이 운동이 어떤 마법의 주문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정반대로 되물을 수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실패를 거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시위대의 그 가상한 노력이, 학계의 혹평을 듣고 반계급적 자세를 취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시작은 상당히 거창했다. 주코티 공원을 맨 처음 점거하던 그날부터 시위대의 명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대중의 지지를 얻어냈다. 사실 토드 기틀린이 강조한 바대로,(5) 1930년대 이후 진보적 성향의 시위 주제가 미국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월스트리트에 대한 미움을 결집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위대의 뜻에 공감하는 증언이 수없이 쏟아졌고, 지지후원금이 쇄도했으며, 주코티 공원에 진을 치고 있는 시위대에게 책과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유명인사들이 얼굴을 비쳤으며, 미국 언론은 여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표지 기사로 다루었다. 그동안 언론에서 좌파라고 낙인찍은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관심이었다.

하지만 논객들은 시위대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시위 '방식'에 대한 지지로 잘못 해석했다. 공원에 텐트를 치는 것이나 시위대의 취사 준비, 끝없이 합의를 추구하려는 태도, 경찰과의 대치 등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 게 시위대의 힘이자 특징이라고 여겼고, 대중이 애타게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정작 월스트리트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부분은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점거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작성한 자료집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ing Wall Street)를 보면,(6) 고리의 은행 대출 문제가 어느 선량한 경찰관의 입을 통한 인용 수준으로만 다뤄지고 있다. 이 자료집에서 주코티의 시위대가 어떻게 은행 권력에 맞설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금물이다. 이것은 그런 일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앞선 책들에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이 책들에 소개된 대로라면, 이 운동은 대중적 공간에 '공동체'를 구축한다든지, 대변인 선출을 고고하게 거부함으로써 전체 인류에 자신들의 선례를 보여준다든지 정도의 제안밖에 내놓지 못하는 듯하다.


참여 그 자체에 대한 예찬의 허무

안타깝게도 그 정도 계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민주적 투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시위 집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발점에 불과하고 월스트리트 시위운동은 여기에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이들은 파업을 유발하지도 않았고, 고용청을 봉쇄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대학 총장실도 점거하지 않았다. 시위대에게는 수평적 투쟁 문화의 정착이 투쟁의 최상위 단계에 해당한다. '과정이 곧 내용을 담고 있다.' 저들은 그렇게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시위대가 실질적인 점령에 들어갔을 때,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문제를 두고 시위대 간에 신랄한 토론이 있었다며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1년 뒤 이 책들의 장을 넘겨보는 사람들은 그런 토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다. 시위대가 제안 사항을 작성하지 않기로 했던 게 전술상 심각한 오류였음을 감히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점거운동의 공식적인 보고서라고 볼 수 있는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자료집은 모든 계획적인 의사 표명에 대해 "국민을 계속 종속적이고 비굴한 상태로 예속시켜두려는 일종의 페티시즘"으로 취급했다. 시위 지도자 헤지스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직 기득권 엘리트 계층과 이들의 입을 대변하는 언론만이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대 쪽에 이들의 요구 조건을 알려달라고 종용했다."

그러니 요구 조건을 내거는 건 곧 적의 정당성을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이는 미국 정부와 그 친구인 은행가들에게 동조하는 일이었다. 요약하면, 아무런 요구 사항도 내걸지 않는 반대운동만이 민주적 가치를 추구하는 최고의 행위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근본적 모순이 여기에 있다. 2011년 월스트리트에 반대한다는 건 곧 엄청난 경기침체를 가속화한 금융권의 변칙적 행태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은행을 구제한 정부에 반대한다는 의미였고, 이 사회가 생산해낸 노동의 결과를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뱃속으로 집어넣는 잘못된 보너스·상여금 행태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회적 재앙의 원인은 바로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였다. 달리 말해 이는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을 근간으로 했고, 적어도 수사학적 측면에서는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절대자유주의적 방식에 위배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로 나아가는 후기 구조주의 사상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방법은 규제 권한을 제대로 갖춘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2011년 9월 초 시위대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당시 이들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키는 법인 '1933년 글래스-스티걸(Glass-Steagall) 법'을 재도입하자고 했다. 비대한 정부, 안전한 세상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동시대인들의 상상력을 불태울 수 없었다. 남몰래 회계사와 세무 관리를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축제의 불을 지필 수 있을까? 핵심을 뒤로 빼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곧 재미없고 답답한 어른들이 다시 주도권을 장악하는 상황을 용인한다는 것이고, 아울러 오락 시간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초반에는 이 전술적 선택이 기막히게 먹혀들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운동에 유통기한을 박아두는 방식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그 무엇도 요구하길 거부하면서 크리스토퍼 래시가 1973년 제기한 '참여 예찬론' 속에 갇혀버린다. 반대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는 반대운동을 벌인 것이다.

선언 구호 속에서 주코티 공원의 시위대는 '민중의 소리'를 목청 높여 환호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게중심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었다. 소수의 대학 사회에 치중된 것이다. 앞의 책들에서 언급된 시위대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회·직업적 정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공개된 몇몇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학생이거나 최근 학위를 마친 졸업생, 혹은 강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학 사회의 참여라면 사실 반길 수밖에 없다. 이 사회는 저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노동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졸업생들의 대출금은 금세 몇십만 달러에 육박하며, 박사 학위 준비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항거할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7) 이들은 제도에 반발해야 하고, 등록금의 엄격한 통제를 요구해야 한다. 2012년 봄 캐나다 퀘벡을 뒤흔들었던 집회를 떠올려보라.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캐나다 국민 상당수가 거리로 나와 이들을 지지해주었다. 캐나다에서 이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고, 학생들은 자신이 요구한 것을 대부분 얻어냈다. 사회의 저항은 대학의 문을 움직였다.

하지만 반대 상황이 벌어질 때, 즉 고상한 학술적 토론이 사회 투쟁의 모델이 될 때 문제가 생겨난다. 시위대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난해한 은어의 사용을 종용했는가? 어째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박식한 사람들의 품격 있는 대화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인가?(8) 또 혹자들은 <아메리칸 에스놀로지스트>(American Ethnologist)나 <저널 오브 크리티컬 글로벌리젠이션 스터디스>(Journal of Critical Globalisation Studies)같이 내부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에만 자신들의 발언을 싣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위 팸플릿 내용에 따르면 이렇다.

"우리가 공격해야 할 지점은 오늘날 정치·사회적 위기의 맥락에서 생겨난 지배적인 주체성의 형태들이다. 우리는 빚진 자, 미디어를 타는 자, 안정된 자, 대표된 자 등 네 가지 주체적 유형에 호소한다. 네 유형은 모두 빈곤해지고 있으며, 그 사회적 활동력은 은폐되고 왜곡됐다. 우리는 항거운동, 저항운동을 벌임으로써 이들 주체적 유형이 고통받고 있는 억압적 제도를 거부하고, 권력에 맞서 이 주체성들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9)

시위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만든 팸플릿을 그렇듯 애매한 선언 문구로 가득 채운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고 나서 불과 몇 달도 안 돼 이론을 내세운 자체 학술지 <점거 이론>(Occupy Theory)의 창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위대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잡지는 모든 이론화 작업의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난해한 시론들만 가득한 학술지가 아니던가? 우리는 대중운동을 이런 식으로 구축하던가?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말하려 애쓰면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하나의 저항운동이 대규모 사회운동으로 확산되기 전에,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먼저 이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분석한 뒤 이론화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반세기 동안 키워나갈 투쟁의 재료를 충분히 마련해준 셈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고 끝이 났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자체는 많은 것을 실현시킨 운동이었다. 훌륭한 슬로건을 만들어냈고, 싸워야 할 상대를 정확히 규명해냈으며, 대중의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민주적 저항 문화 역시 구체화했고, 노조와의 연결고리도 만듦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긍정적 방향에 크게 한발 내디뎠다. 좌파에서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가치인 연대의 개념을 다시금 되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대학 세력이 결정적 자리를 차지하면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그 대표주자들이 기존 유명한 이론들을 증명해주는 하나의 연구실로 둔갑했다. 월스트리트 시위대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만 모여든 게 아니었다. 개인의 입신양명에만 눈이 어두운 일부 출세주의자들 역시 시위판에 끼어들었다.


전투적 운동가들의 공허한 현학주의

그나마 이 정도면 상황을 꽤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좀더 비관적으로 보면, 마이클 카진의 저서 <아메리칸 드리머>(American Dreamer)에서처럼, 1960년대 시민권 투쟁과 베트남전 이후로 1980년대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제외하면 그 어떤 진보주의 성향의 운동도 미국 대중과 연결되지 못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전역에서 좌파가 넘쳐났고, 특히 대학에서는 상당히 강성이었다. 이후 세부 전공과목으로 상세하게 내용을 파고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저항운동 연구를 하는 게 통상적인 관례였고, 이는 진로의 폭을 넓혀주는 검증된 방식에 해당됐다. 이렇듯 지적 측면에서 박식했던 좌파였으나 이들은 실패를 거듭하며 나아갔고, 결국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는 대의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좌파 내부의 관행에 있다. 일부러 난해하게 기술하고, 지나치게 고압적이며, 말이 너무 장황하고 현학적인 좌파 특유의 방식은 사람들을 규합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

어쩌면 일반 사람들에 대한 경멸감이 좌파 내부에 존속하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잘못된 투표를 했다거나 무슨 정치적 죄악을 저질렀다고 나무라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대규모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사회운동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관한 저서들에서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답도 찾아보기 힘들다.

월스트리트에 반기를 내건 시위대가 이들의 쌍둥이 격인 티파티 운동 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확실히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세력은 티파티 운동 진영에 대해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치 저들이 다른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별종이라고 여긴다.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의료보험이 없는 많은 환자들이 앞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의 불행을 즐거워할 티파티 회원들에 대해 언급하며 "그렇듯 웃으면서 잔인함을 보여주는 행태는 대체 어떤 정치적·경제적 상황에서 나오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좋은 질문이다. 그런데 두 단락쯤 더 가서 주디스 버틀러는 주제를 바꿔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로 한 놀라운 결정에 환호한다. 하지만 이로써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그 정체성의 윤곽이 드러난다. 항거하던 군중이 본질적으로 해방주의자였음이 곧 밝혀진 셈이다.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분노를 표출하고 광장에서 다수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때, 이들은 더 광범위한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그 존재를 알리고 가치를 인정받으려 했다. 이들은 살 만한 삶을 요구한 것이다."(10)

이는 마치 같은 노래의 반복 같다. 거리로 나온 사회 불만 세력이 있다.

이 두 세력은 몇 가지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가령 2008년 구제책에 대해서 양쪽 모두 집요하게 반감을 표명했다. 두 세력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공모식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 공원과 광장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고, 공화당 내 자유주의 흐름의 본좌인 론 폴의 지지 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고독한 처단자 가이 포크스 가면 역시 두 진영을 돌아다닌다.

전술적 측면에서의 유사점 역시 존재한다. 월스트리트 시위대와 티파티 운동은 둘 다 요구 사항을 모호하게 표명해 더 광범위하게 세력을 규합한다. 두 집단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부분에 대해 똑같이 과장하며 매도했다.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경찰의 과도한 진압을 강조했고, 45쪽 분량의 짧은 책(11)을 통해 윌 번치는 브룩클린 다리에서의 무분별한 진압과 시위대의 집단 연행 상황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다. 티파티 쪽에서는 '좌파 언론'과 저들의 인종주의 비방에 따른 시달림이 집단 순교를 자극한단다.(12)

지도자가 없다는 것도 두 집단의 공통점이다. 2010년 리처드 아미 전 텍사스주 공화당 의원이 작성한 티파티 선언서를 보면 '우리는 지도자가 없는 사상 운동체'라는 장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논리는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이론가들이 말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들이(우리의 적들이) 누가 끈을 조종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그 자를 잡아 처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들은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는 티파티의 반대운동을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티파티가 학술적 근거로서 인용하는 책들을 살펴보면, 어떤 요구라도 제시하길 거부한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철학적 기반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탈규제에서 정신적 토대가 되었던 '객관주의' 이론을 주창한 철학자 아인 랜드가 했던 말을 살펴보자.(13) 1957년 출간된 그의 소설 <아틀라스>는 미국에서만 700만 부가 팔린 걸작이다.

이 책에서 '요구 사항'이란, 무능하고 비생산적이면서도 행정권자라는 미명하에 요구 사항들을 제정하는 정권의 유해한 세계와 동일시된다. 반면 사업가들은 계약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는 존재다. 이들은 자유로운 계약으로 형성된 합의적 관계의 조화로움 속에서 움직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볼 만한 대목은 평등주의의 폐해에 맞서 파업을 시작한 존 골트라는 인물이 미국 정부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을 때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제시할 아무런 요구도 없고, 당신들과 흥정할 내용도 없으며, 무언가 도달해야 할 합의점 같은 것도 전혀 없소. 당신들은 우리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소. 우리는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 파업을 한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곧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아인 랜드는 '희생자의 정당화'라는 어려운 표현을 지어냈다. 개인적인 잠재력의 실현에 몰두한 사장, 즉 저자의 독특한 세계관에 따라 '희생자'로 묘사되는 이 사장은 온갖 세금과 규제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회의 '선행'을 거부한다. 똑똑한 백만장자는 하향 평준화한 사회를 가득 채운 기생충 및 날강도들과 엮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상위 1%의 이 조상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펼치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기존 사회에서 모델이 되는 공동체를 구축했다. 하지만 랜드가 만들어낸 이 상처 입은 백만장자들은 공원에서 총회를 열지 않는다. 이들은 콜로라도의 아무도 없는 계곡에 은거해 그곳에서 강제성 없는 천국 같은 자본주의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화폐는 금본위제로 돌아가며, 이들은 정부에 빚진 게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비슷한 점이 있다. 티파티는 월스트리트에 대해 성난 민심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우회시키며 교묘한 사상적 수를 썼다.(14) 월스트리트 시위대도 마찬가지 수법을 썼으나 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방식이었을 뿐이다. 가령 인류학자 제프리 주리스의 논거를 풀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점거 시위대는 공간에 개인을 배분하는 데 이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정부 권력에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공원이나 광장 같은 도심 내 특정 장소를 점유하기도 하고, 공공집회 및 민주적 표현의 장소에 대해 다시금 그 의미를 살리면서 정부 권력에 이의를 표한다."(15)

이런 수사법은 월스트리트 시위대와 대학 좌파 사이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정부와 그 권력을 문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사태의 경우, 문제는 정부가 아무런 규제도 통제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됐지만, 월스트리트 시위대 역시 본질적으로는 정부 규제에 반대한다. 몇 가지만 조금 수정한다면, 이 글은 녹지 조성에 반대하는 절대자유주의의 홍보 문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그 어떤 책들도 이같은 통일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 역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와 티파티 운동이 때로 너무나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두 진영 모두 조금은 게으르고 다소 자아도취적인 절대자유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디즈니 채널 세대에서부터 스타벅스를 파괴하는 위선적 무정부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절대자유주의 사상은 오늘날 저항운동이 보여주는 세계관을 물들이고 있다. 모두들 자신이 '정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 시대의 유전적 특징이다.

기세등등한 티파티 운동 진영은 수평적 조직에 대한 허세적 문구를 플래카드에 내걸었다. 그럴싸한 허풍이 수없이 쏟아지지만, 기본적으로 노리는 건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다. 이 운동에는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들이 없다. 이들은 다만 돈을 가졌고, 네트워크를 가졌으며, 막강한 TV 채널(<폭스 뉴스>)을 지원군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지체 없이 지도부와 요구 사항을 만들어냈으며, 공화당에 줄을 댔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이런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이들은 수평성에 대해 진심으로 믿고 있다.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둔 뒤, 이들은 공중분해됐다.

2012년 대선과 총선은 이제 모두 끝났다. 오바마는 재집권에 성공했고, 라이언은 하원 의석을 유지했으며, 노동자와의 전쟁은 미시간 등지를 중심으로 계속된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 물론 금권정치는 국민에게 자신들이 가장 좋은 친구라고 설득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기존 질서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굳건하게 좌파에 뿌리를 내린 대중사회 운동만이 신자유주의 세계의 막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극명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그런 과업을 이뤄내지 못했다.



글 / 토머스 프랭크 Thomas Frank
<하퍼스 매거진> 기자이자 이 기사의 원문이 게재된 <더 배플러>(The Baffler) 창간인(기사의 영문 원문은 <더 배플러> 2012년 11∼12월호에 게재). 최근 저서로 (Metripolitan Books·2012)가 있다.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1) Sarah Van Gelder 및 팀, , Berrett-Koehler, San Francisco, 2012.
(2) Lenny Flank, , Red Black&Publishers, St. Petersburg(Florida), 2011.
(3) Chris Hedges & Joe Sacco, , Futuropolis, Paris, 2012.
(4) Robert Zaretsky, ‘히스패닉도 싫고, 연방정부도 싫고- 텍사스 티파티의 뜻 모를 방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1월호.
(5) Todd Gitlin, , It Books, New York, 2012.
(6) , Haymarket Books, Chicago, 2012.
(7) Christopher NewField, ‘시한폭탄, 미국 대학생 부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호 참조.
(8)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상황임. Pierre Limbert, ‘La pensee critique dans l’enclos universitair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월호.
(9) Antonio Negri& Michael Hardt, <선언>, 갈무리, 2012.
(10) Judith Butler, ‘From and against precarity’, www.occupytheory.org, 2011년 12월.
(11) Will Bunch, , Kindle Singles, Seattle, 2012.
(12) Michael Graham, , Regnery Publishing, Washington DC, 2010.
(13) Francois Flahault, ‘티파티의 철학’(La philosophie du Tea-Party), <마니에르 드부아>,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특집호 참조, 2012년 10∼11월호.
(14) ‘당신이 곧 미국: 우파, 분노를 우회시키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월호.
(15) Jeffrey S. Juris, ‘Reflections on #Occupy Everywhere: Social media, public space, and emerging logics of aggregation’, , vol.39, n˚2, Davis (California), 2012년 5월호.




유티카를 점령하라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비단 맨해튼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유티카 같은 소도시로까지 퍼져 나아갔고, 이곳에서는 훨씬 더 요구 사항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불이 붙었을 때, 나는 뉴욕에서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주코티 공원에서 시위대가 해산된 이후, 나는 다른 지역으로 점거운동을 확산하자는 사람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고, 이에 나 역시 고향인 유티카로 돌아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유티카는 뉴욕주에 있는 한 도시다. 유티카 역시 이른바 '러스트 벨트'라고 하는 대다수 소도시들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었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산업 중심지로, 과거에는 섬유산업과 특히 제너럴일렉트릭을 중심으로 경제 호황기를 누렸던 지역이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이 지역의 산업단지 대부분은 도시를 빠져나갔고, 인구는 반 토막이 났다. 이제 이곳에는 감옥 몇 개와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 하나만이 주된 고용주다. 도시는 암흑 그 자체일 뿐이다. 이 도시에서 자본주의는 그렇게 달콤하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이곳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유티카는 전통적으로 '저항'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으나, 안 그래도 살기 힘든 터에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불이 붙자 4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캠프는 결국 철수됐고, 그에 따라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매일 밤 10시면 '오큐파이드 라디오'(Occupied Radio)란 제목의 라디오 방송이 인터넷 사이트 occupiedradio.net에서 전파를 타며 역내 운동의 중계 역할을 해주었다. 그 덕에 우리는 존 맥데빗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용사인 그가 해외에 있던 기간 중에 기업들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 계좌에 있던 그의 돈 2만5천 달러를 몰수했다. 은행 지점 앞에서 했던 시위는 지역 언론의 표지 기사를 장식했고, '유티카 점거운동'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맞서 승리를 얻어냈다. 기업들이 맥데빗에게서 가져간 돈을 마지막 1센트 하나까지 그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정부기관과 변호사들도 실패한 일이었다. (이들은 시위대의 노력이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 보지 못했다.) 이후 존 맥데빗은 유티카 점거 시위대 내에서 아주 적극적인 시위대원이 되었다.

우리는 노동절 집회도 추진했는데, 유티카에서 노동절 집회가 열린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정신과 진료소의 폐쇄에 맞선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여러 가지 계획도 빠짐없이 마련됐다. 경찰의 과격한 진압을 감시하기 위한 단체도 하나 출범했고, 세입자들이 추방되지 않도록, 그리고 집주인들이 압류에 들어가지 않도록 세입자 편에서 도와주었으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지 운동을 벌였다. 유티카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유티카 점거운동은 미약하게나마 점차 성장하는 저항 문화를 싹틔웠다. 사회운동의 진정한 힘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티카 같은 작은 도시에서가 아닐까.

자료: Brendan Maslauskas Dunn, 'Occupy Utica: Occupying a small Rustbelt city' in Kate Khatib, Margaret Millijoy, Mike McGuire', , AK Press, Oakland, 2012.


▒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2호] 2013년 1월 [공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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