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평론] 재능지부 투쟁에서 보는 운동의 어려움 & 극복하기(2)

1. 사회심리학적 접근

그간 운동공간에는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훌륭한 활동가로 일할 수 있었던 썩 괜찮은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했거나 제 앞가림에 바쁜 이유 등으로 그들을 안타깝게 떠나보낸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을 애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동지를 잃는다는 것은, 대부분 동지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거나, 영원히 잠수 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동적인 진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원인은, 전선이 분명한 외부보다는 좀처럼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내부의 모순에서 찾아진다.

내부모순은 종종 ‘내분(infighting)’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된 조직의 경우, 내분은 동지들의 ‘번아웃(Burn Out: 탈진)’이 모순의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곤 한다. 이와 관련, 현재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동지들의 능력이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라고 여겨질 때, 우리는 트라우마(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염려해야 한다.  

오랜 기간 진행된 현장투쟁(행동주의)이 동지들의 삶을 장악해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에 걸리면, 가장 극단적인 정서의 유발로 인해 먼저 조직 내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집중할 수 없으며, 숙면이 어렵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투쟁 주체인 동지들 간에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흔히 발생하는 ‘험담’이나 ‘피해망상적인 마녀사냥’은 치명적으로 투쟁을 해치는데, 문제는 트라우마에 직면한 동지의 마음이 굳게 닫혀있는 관계로 주위에서 돕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 경우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해치지 않게끔 ‘자기 자신에 대한 친절’을 다하는 것이고, ‘동지들 간의 예의와 존중’을 지켜 소통을 위한 사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신의(醫) 로널드 랭(R.D Laing)이 “번아웃 모두가 파경(breakdown)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또한 돌파구(breakthrough)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듯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장 기본적 필요들과 욕구들을 돌보는 ‘휴식기’가 급선무로 요청된다. 이는 최소한의 ‘휴식’을 통해 번아웃을 피함으로써, ‘열린 소통’을 통해 투쟁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내자는 제안이다.

1900일을 훌쩍 넘은 초장기 투쟁사업장인 재능지부와 같은 경우는 그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조합원들이 트라우마에 걸릴(걸렸을) 환경적 조건이 농후하다. 더욱이 장기간 함께한 연대단위 동지들도 유사한 트라우마 증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조합원들의 정서에 (본의와 무관하게) 왜곡된 상승작용을 끼칠 개연성 또한 없지 않다.    

(* 이상은 장투사업장 동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트라우마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레프트119」에서 발표한 바 있는 Activist Trauma Support 자료를 우리네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2. 재능투쟁 문제 제대로 보기

지난 3월 1일자 ‘[운동평론] 재능지부 투쟁에서 보는 운동의 어려움 & 극복하기' 글이 나간 후, 한 동지가 지난 재능투쟁의 사실관계와 관련하여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운동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실명비판 문건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대해 필자는 동지적 차원에서 [재능투쟁 & 적전분열]이라는 제하의 재능투쟁 관련 단상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강력한 적을 상대로 힘겹게 전투 중인 전선에서 아군이  '네탓'이로소이다 책임 논쟁을 벌이면 그 싸움은 필패한다. 적대모순과 비적대모순을 가리지 않고 기관총을 난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국공합작에서 개조와 공동전선을 배우지 않았나.
무조건 덮어 책임 논쟁을 말라는 게 아니라, 안전한 진지에서 승리를 목적으로 따지라는 거다. 그것은 바로 '시점'에 관한 얘기 아닌가.
단사 투쟁만이 아닌 자본권력을 앞에 둔 특고부대 상황이 정세적으로 유리하지도 않은데,  비적대모순에 일일이 시비를 가리자고 한다면, 이러한 싸움은 지리멸렬을 피할 수 없다.
운동이 어차피 바닥이니 모조리 까발려보자? 명쾌하긴 한데.. 그건 아닌 듯하다.
다섯 번의 겨울을 이기고 이제 봄을 맞으려는데, 그것을 운동과 동지들에 대한 예의로 볼 수 있겠나. 묵언과 실천으로 마무리 투쟁에 최선을 다하자!!“


필자는 우리들의 제사회·노동운동 진영이 비정규직/특고투쟁에 헌신하고 있는 재능지부 동지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노동자성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개별자본과 자본가권력으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아온 재능동지들이 단사투쟁을 뛰어넘는 자본과의 거대한 싸움판을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다소 거칠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중차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재능동지들 한분 한분을 저울에 올려 함량을 재보려는 것과 같은 무모한 시도는 어떤 경우에도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개별적인 편차가 있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투쟁에 참여한 모든 재능동지들이 제각기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지난 5년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 활동가들은 자신의 소속을 넘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재능투쟁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실 요즘 재능투쟁을 두고 웹상에서 떠도는 이른바 개량주의 소문은 별로 근거 없는 얘기로 보인다. 왜냐하면, 재능투쟁은 이미 재능지부의 것만이 아닌 제사회·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동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했기에 운신의 폭이 생각보다 협소한 까닭이다.

재능동지들은 처절한 초장기 천막농성에 이어 이젠 종탑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의 고육지계를 선택했다. 해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도 지켜야 하고 종탑에 올라간 동지들도 챙겨야 하는 여간 바쁜 상황이 아니다.

새로 구성된 집행부 선출과정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비민주적이었다는 문제 제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특정 정당의 과도한 영향력 혐의는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재능조합원 가운데 정당 소속 동지는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각기 1명이다).

고독한 길거리 천막투쟁을 해본 동지들은 흔히 “지나가는 개도 반갑다”라는 얘기를 한다. 연대단위에 다소 변화조짐이 있다고 해서, 현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이라고 해서, 안 보이는 곳에서 함부로 편을 가르고 섣부르게 비난하는 행태가 있다면 그건 재능동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재능동지들은 판단력을 상실한 바보가 아니다.  

동지들이 씻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유인물을 만들거나, 선전전을 진행할 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소통 문제로 기존 동지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동지들이 힘을 보탰는데, 이를 두고 개량주의 운운한다면 이는 선후가 뒤바뀐 아주 우스꽝스러운 얘기가 된다.

연대단위 및 활동가들에게 다시금 부탁드린다.

투쟁의 주체인 재능동지들을 (결과적으로) 가르지 말자. 개별적인 신뢰와 사랑을 조직적인 단결투쟁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주기에 나서자. 재능동지들을 하나가 되도록 밀어주는 것을 마치 현 시기 운동의 퇴행처럼 간주하는 근거 없는 이데올로기에 갇히지 말자. 재능투쟁에서 만난 동지들이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싸움을 기반으로 더 큰 운동을 만들어 내는데 함께 힘을 모으자.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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