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페르 라 쉐즈 공원묘지에서

영화보기: 파리코뮌La Commune. Paris, 1871

최형록(인문학자)



반항을 뜻하는 듯한 담벼락의
붉고 푸른 색 그림들이 마음속에서  
프랑스 공화국 삼색기의
붉고 푸른색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내 심장의 박동은 더 빨라진다
파리 북부 역으로 들어가는 쇳덩어리는
박동을 가다듬건만
북부 역 서점이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당기듯
남한에서 온 나를 흡인 한다
게걸스럽다는 말뜻을 이제야 실감 한다
내 눈 빛은 심장박동과 주파수를
맞추어 [혁명]지를 찾아낸다
아 11년 전 광주의 5월이
내 핏줄을 부르르 떨리게 하듯
120년 전 파리의 5월,
“파리 코뮌” 특집기사가
내 핏줄을 부르르 떨리게 만든다
하지만 “계몽의 길로틴”은
서슬 퍼런 빛을 잃었다

로베스피에르, 블랑키, 바를렝 그리고
들라크르와의 그림에 나오는 여인들, 노동자들
베르니오, 나폴레옹, 티에르 그리고
카베냑의 병사들, 경관들이
걸었을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다
무슨 남녀 연인들이 이렇게 길게
줄을 섰을까?
늑대와 춤을, 적과의 동침...
신촌과 종로, 헤이그에서 보았던
영화제목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 영화자본
싸늘한 밤공기에 둘러싸여
홀로 빛나고 있는 별, Etoile 개선문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개선문 주인들의 비극적 희극적 끝을
보듯이
중세 고딕 교회의 첨탑이
기독교의 거짓 보편성을 뽐냈듯이
프랑스 자본주의 아니 세계 자본주의의
인간 해방자연(然) 하는 에펠 탑 아래
광장에서 “빛”의 도시 파리의
거대한 “그림자”를 본다
그 넓은 광장 왼편에서는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 “캘리포니아의 꿈”
가락이 흐느적거리고
오른편에서는 색 등을 가운데 두고

남녀가 낭낭히 웃으며 애기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넓은 광장에
넓으면 얼마나 넓으냐고 대들 듯이
얄궃은 물건들을 보자기에 펴놓은
많은 흑인들 메스티조 아무튼
색깔 있는 사람들이
어두움에 어두움을 더하고 있지 않은가
파도가 밀려온다 연민을 싣고
아, 19 세기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엔크루마, 시몬 볼리바르의
자손들에게까지 이렇게 짓누르고 있구나
삶이란 목구멍이다
삶이란 독점 자본이 지배하는
시간의 격류 속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종이배다
쉐베닝겐 해변과 암스테르담 역 앞
라틴 아메리카 떠돌이 악사들
동 베를린 제 3세계 출신 아파트촌에서
만났던 보우트 피플과 동포인 청년
이 모든 이들이 방향타가 고장 난
배를 타고 정처 없이 항해 하는
사람들과 그 무엇이 다른가
후회막급이다
내릴 역에 내리느라고 소년에게
동전 몇 개 못 준 것이
구슬픈 노랫가락을 읊조리던 그 소년
정치 해방자 볼리바르가 될까
수괴급 억압자 혹은 망나니 새끼가 될까
그래 이제 파리의 “빛”은 더 이상
“계몽”이 아니라
“에트왈”의 “칼” 빛일 뿐인가
“부패시킬 수 없는” 사나이
로베스피에르,
“민중의 벗” 마라 그리고

상퀼로트의 숨결이 희미한
생탕트완느 거리를
자정 넘어 가기에 앞서
파리에서 제일 먼저 달려 가고팠던
“페르 라 쉐즈 ” 공원묘지에 간다
푸르른 5월의 하늘 아래
“빛 고을”에서 “민중 만세”를 외치며
필사적으로 무장 항쟁하는 도청 전사들의
긴장과 뜨거운 숨결이, 붉은 피가
109년 전에도 푸르른 5월 하늘 아래
“빛의 도시”에서 “코뮌 만세”를 외치며
묘석을 방패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코뮈나르들의 긴장과 뜨거운 숨결과
붉은 피와 만난다

이른 아침 햇살이 쫓겨 가는 안개를
물 베듯 하고 키 큰 나무들의 신선한
숨결 속에서
블랑키, 바를렝, 발레, 프랑켈, 외드
로블레스키, 그리고 루이즈 미셸에게
나는 둘러싸여 있다
티에르, 파브르, 페리는
“발광 있어서는 체계적 이고
정신이 멀쩡하지만 미친놈들“이라고
단죄 한다 그들을 폭도 광주 시민들처럼
그래 주물공 주제에 베르텡은
대혁명의 승리자들 법률가들로부터
스스로를 파문 한다 “제 4신분”이라고
똑 같은 놈, 제본공 주제에 바를렝은
자유주의적 의회정치를
“낡은 정치적 형식”이라고
의회모독 죄를 범하는 것도 분에 안 차
자본가들의 생산 도구들을 노동자들
스스로 처분하고 “소유”해야 한다는

사유 재산권 신성 모독죄까지 범한다
그래 폴란드 떠돌이 프랑켈은
급격한 “계급관계의 변화”라는
재앙을 꿈꾼다
리싸거레이는 무엄하게도
3월 18일의 “폭동”을
1789년 5월 5일 이래 프랑스 사상
모든 부르주아 의회들이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노동자들을 위해서”
했다고 왜곡 미화 한다

이 잡것들은 “천사의 검”으로
천벌을 내려야해
교활한 티에르 일당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밀어를
속삭인다
109년 앞서 “빛의 도시”에
“피의 일주간” 동안
폭도들은 베르사이유 군에게는
사냥감 일뿐
“화려한 외출”을 한 승냥이들처럼
바를렝의 머리는 물에 젖은
담배꽁초를 으깨듯 으깨진다
109년 후 “빛 고을 ”의 누구처럼
사로잡힌 사냥감들은
“코뮌 만세”를 외치며 안중근처럼
조금도 동요하는 빛 없이
“사자(死者)의 벽”돌을 쌓는다

이른 아침 스페인 친구 카를로스와
지금은 제 3세계 이주민들이 많은
몽마르트르-순교자들의 산-를
내려온다 이 언덕에서
여자 코뮈나르들이 3월 18일의

새벽을 열었지 성녀 쟌다르크처럼
“빛의 도시” “빛 고을”의
선혈을 어찌 헛되이 할 수 있으랴
“혁명을 절반만 수행하는 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묘혈을 파고 있을 뿐이다“
그래 프랑스 대혁명의 젊은 지도자
생 쥐스트가 옳아.

    

서시 (序詩) 관련 설명과 주

1. 이 시는 광주 민중항쟁 12주기를 맞이하여 121년 전 혁명의 도시 파리에서 일어난 “파리 코뮌”을 소재로 쓴 것이다. “파리 코뮌”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 생생한 영감을 불러일으킨,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있어서 “신 새벽”을 여는 사건이었다. “파리 코뮌”은 1870년 9월 프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의 전쟁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제국(1852~1870)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파리 코뮌”은 1871년 3월 18일 부르주아 보수 반동 세력과 혁명적 노동계급 세력이 국가권력을 놓고 충돌하면서 출범했다. 페르 라 쉐즈 공원묘지는 이른바 “피의 1주간”(1871-05-22~28) 노동계급 세력과 부르주아 보수반동 세력이 치열한 최후 격전을 치룬 곳으로 매년 프랑스 좌파세력은 이곳에서 추모행사를 치룬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노동계급의 경제적 해방을 위해서 마침내 발견된 정치적 형식”이라고 규정지었다. 파리는 계몽사상과 관련해서 “빛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고유명사의 주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대 혁명기(1789~1794)과격파 였던 자코뱅파의 최고 지도자.
블랑키: 소수 정예의 혁명가 집단이 지도하는 무장폭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마르크스와 같은시대의 혁명가.
바를렝: 제본공 출신으로 “파리 코뮌”의 뛰어난 지도자.
들라크르와: 1830년 7월 혁명을 소재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남겼다.
베르니오: 프랑스 대 혁명기 부르주아 보수 우파의 지도자.
티에르: “파리 코뮌”의 사형 집행인. 후에 프랑스 제 3공화국(1871~1919)의 대통령이 됨.
카베냑: 1848년 6월 노동자 봉기를 유혈 진압한 장군.
에트왈: ‘별’이라는 뜻. 파리 샹젤리제의 개선문의 본래 이름.
메스티조: 남아메리카의 혼혈인들.
엔크루마: 아프리카 케냐의 민중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 남아메리카 해방운동의 뛰어난 지도자. 볼리비아는 이 지도자의 이름을 딴 것.
마라: 프랑스 대 혁명기 민중운동의 뛰어난 지도자. 암살당함.
상퀼로트: 프랑스 대 혁명기 부르주아 혁명을 전진시켰던 소부르주아 세력.
생탕트완느: 파리 북동부 지역으로 상퀼로트의 거점.
발레: “파리 코뮌”기 민중언론의 기수.
프랑켈: 폴란드 출신으로 “파리 코뮌”기 마르크스와 서신 교환.
외드: “파리 코뮌”기 재정담당 지도자.
로블레스키: “파리 코뮌”기 군사 지도자.
루이즈 미쉘: “파리 코뮌”기 뛰어난 여성 지도자.
파브르: 티에르와 같은 “파리 코뮌”의 사형 집행인.
리싸거레이: “파리 코뮌”에 참가 후 영국으로 망명, 마르크스와 사귐. “파리 코뮌”에 관한 기록을 남김.
사자(死者)의 벽(Le Mur des Federes): 페르 라 쉐즈 묘지에 있는 벽. “파리 코뮌” 전사들(Les Federes)을 즉결 처형한 곳.  
생 쥐스트: 로베스피에르의 왼팔 격이었던 20대 지도자.


출처: <<민중회의 소식>> 제14호 1992년 5월 1일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이번은 금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파리코뮌(La Commune. Paris, 1871) 프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고편

영화(5시간 46분) 바로가기 http://youtu.be/OrpcQQ6UEoo

[한국인권뉴스]

태그

최형록 , 파리코뮌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뉴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