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희망을 낳는 여성 노동자들

박수정 지음『여자, 노동을 말하다』 (서울: 이학사, 2013, 280면) 서평

최형록(인문학자)

박수정 지음『여자, 노동을 말하다』 (서울: 이학사, 2013, 280면) 서평   

"정신적으로 잃은 게 너무 많아서... 얻은 건 ,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견딜 수 있다는 거죠. 아픔을 많이 겪었으니까요. ...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죠. 기존에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이었다면 정말 각도가, 시야가 트였다고 할까. 투쟁하면서 이제 아무래도 세상에 많이 눈을 떴어요. 제일 크게 느낀 건 언론이 왜곡된 보도를 한다는 거죠. ... 오죽하면 우리 킴스[킴스클럽] 농성 들어갈 때 조-중-동 기자들 못 들어오게 막았겠어요. ... 이제 엄마들이 다 느끼는 거예요. 세상이 정말 공평치가 않구나, 지금 너무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구나, 이걸 몸소 느끼는 거죠. (중략)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욕심이 없어지더라고요. 결국 내가 노동조합 할 때는 내 거를 지키려고 했는데, 이제는 버리는 것들이, 뭐라 그럴까, 정말 아깝지 않고, 희생 같은걸 깨닫게 돼요. 내가 수행이 덜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진 잃은 게 많아 아깝긴 하지만 내가 더 수행을 해 생각이 깊어지면 그 아까움도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세월이 훌쩍 지나가면 플러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그 동안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많았는데 없어 보니까 절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우리 조카가... 운동권 출신이라 옥살이도 하고 그랬어요. 삶에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지 물질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제 내가 그걸 공감해요. ...”(265~266면)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홈에버 지부에서 투쟁한 황옥미 씨는 파업 투쟁에서 얻은 것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이 발언에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민족-민중 반역자가 한국인들을 오로지 “배부른 돼지 꿈”의 실현을 향해서 돌진하도록 만드는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초래한 황금만능주의, 배덕과 불신 그리고 자연의 다양한 생명 파괴로부터 전사회적으로 방향 재조정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짝퉁 대처의(Thatcher: 신자유주의적 탄압정책을 악랄하게 추진해서 영국 민중의 “삶의 안보”를 파괴한 전 수상)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독재자의 딸이 집권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상기해야 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주-민족 변혁운동의 존엄한, 깨어있는 정신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세상을 창조하고자 했던 민중의 변혁운동의 맥을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체제가 인간의 삶과 다른 생명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어가고 있는, 여성 노동자 8인의 노조활동 그리고 그 활동과정에서 짐승 같은 노예적 삶을 극복하면서 인간적 자존심을 세워나가고 있는 투쟁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다.


내가 이 기록에서 맨 먼저 만난 사람은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추송례 씨다. 유신체제의 철권통치가  횡횡하던 1970년대 후반 대학생 시절 분노감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인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의 당사자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일방직 사건은 1977년 이총각이라는 여성이 노조위원장이 되면서 어용 노조인 전국 섬유노조의 노선을 벗어나 임금 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하자 회사가 경찰과 상급 노동단체 그리고 중앙정보부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하면서 민주 노조를 분쇄하려는, 민중 생존권을 파괴하려들면서 일어난,   청계피복 노조 사건과 함께 1970년대 대표적인 노동운동 탄압 사건이다.1)

추 동지의 삶의 역정의 기억에 공감하며 따라 가면서 드는 이미지는 “함경도 또순이”다. 이 이미지는 다음 7인의 눈물겨운 삶의 발자국을 필자 박수정과 함께 따라 가면서 줄곧 함께 했다. 추 동지는 열일곱 살에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는데 첫 직장의 숙소는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는 곳 이었다. 이런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도망쳐 두 번째로 취업한 대성목재에서는 ‘변소 세’까지 물어야 하는 곳 이었다. 회사는 “노조는 나쁜 거다”라고 가르쳤지만 1975년 노조투쟁을 하면서 인천 도시 산업 선교회의 야학을 통해서 <전태일 노트>를 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꿈꾸기를 배’우게 된다. 당시 민주주의 파괴 세력은 도산(都産:도시 산업 선교회)을 기업을 “到産“시키는 단체라고 중상모략을 했다.

”동일방직 해직 이후 나는 10여 차례 넘게 붙잡혀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 매번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의심했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바지 벨트를 풀어 채찍질을 해대고... ‘너 같은 것 몇 명쯤 인천 앞바다에 처넣어버려도 아무도 모른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죽여줄까?’하고 협박합니다. ‘홀딱 벗겨서 전기고문 시킨다’ 위협합니다. ... 내 얼굴을 개떡을 만들어 놨었거든요. ...”

적잖은 노동자들 노동운동을 비롯한 변혁운동가들이 추송례 씨와 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 보다 더 끔찍한 악몽 같은 일들을  겪지 않았던가?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은 특히 50대 이상은 자신의 지난 시절 투쟁의 흑백 사진첩을 펼쳐보고 자신의 “업경대”(業鏡臺:불교에서 인간 세상에서 자신이 행한 업을 비추어 보는 거울)에 자신의 현재 삶을 비추어 보아야할 것이다.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백배의 열매를 거두리라”는 말은 자신의 존엄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인간다운 삶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심심산천”(心心山川)에 메아리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이제(2012년 현재) 시각 장애인들의 눈이 된 지 25년이 되었단다. 박수정은 추 동지를 ‘발 딛고 선 그곳에서 삶을 변화시킨’ 사람이라고 한다. 추 동지는 물론 다음 7인의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어떤 곳(상황)에서든 삶의 주인이 된다 내가 서 있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도록 한다”(隨處作主 立處皆眞)는 삶을 창조해온 분들이다.


두 번째로 만난 노동자는 삼성 에스디아이의 하청 기업인 하이비트의 노조원 최세진 씨다. 삼성 에스디아이에는 사내 하청기업이 20개나 있었는데 그 실태는 오늘날 현대 자동차의 불법적인 사내 하청의 경우와 동일하다. 작업이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탓에 최 동지는 새벽 3시 반에 기상해야 하며 고작 20분 쉬는 시간조차 사실 상 쉴 수가 없으며 신입들은 화장실에도 못 간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딱 서서 손만 움직여야 하며 어떤 노동자들은 종일 어둠 속에서 일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자본가들이 시간을 지배하는 일정에 따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삶의 구조와 내용은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절규했던 시절과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한 것일까?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말기를 알아듣는 짐승’ 정도로 생각하기에 그 놈들은 작업시간을 초 단위로 재어 단 1초라도 노동력을 ‘합리적으로 착취’하려 하며 최첨단 전자 공학적 기술을 동원해서 “내가 누굴 만나거나 어디를 가거나 뭘 하면 바로 문자를 보내어 협박하는 것이다!

파업 노동자들의 집으로 간부들을 보내어 협박하는 작태는 일제의 앞잡이 놈들 고등계 형사놈들의 후예 같다. 노조활동 자체를 사실 상 무력화시키는, 헌법의 정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국가 보안법의 새끼 같은 “기업 보안법”인 “업무방해" 가처분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을 저지르는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 바로 한국의 자본가 계급이 아닌가!


세 번째로 만난 노동자는 맨 먼저 말한 홈에버 투쟁을 열심히 한 황옥미 씨다. 황 동지는 면목점에 온 수납팀장이라는 놈이 “노조를 와해시키러 왔다”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인간으로서 부당하게 대우 받은” 것에 “자존심을 지키”고자 결의한다. 이 수납팀장이라는 놈은 성희롱도 자행하는 수컷의 짐승성도 발휘한다. 황 동지는 “‘와신상담’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딘다. 그러면서 구사대(救邪隊)와 대결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해고를 당하면서 “아주 진짜 거대한 힘을 기르”지 않으면 노예적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의 최세진 씨는 TV에서 프랑스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모른다는 현실에 놀라워한다. 프랑스는 ‘전내천’(錢乃天: 돈-자본이 곧 하느님)인 이 나라에 비하면 사회보장 제도를 비롯해서 ‘국민을 위한’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이 그나마 이뤄진 나라인 한편 한국에도 소개 된 스테판 에쎌이 <<분노하라!>>(INDIGNEZ VOUS!)라는 책을 써서 “정치적-경제적-지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오늘날)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금융시장의 전 세계적 독재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을 그만두거나 (그 위력에) 놀라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됨”을2) 일깨워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특수조직”(Organisation Speciale)을 창설해서 반 나치 투쟁을 조율했는데 2차 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탄압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합법적인 프랑스 공산당(PCF) 기관지 <인류애(L'Humanite>를 폐간시키고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했다. 그리고  나치의 괴뢰 정권인 페탱의 비시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1940-03-04 공산당 국회의원 44명을 반역죄로 재판하는가 하면 같은 해 04-10일에는 공산당의 선전만으로도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반 의회주의적 폭거를 자행한다.3)

이런 유사한 사건이 사이비 독립 운동가 이승만 정권 아래서 일어난 국회 프락치 사건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굳이 말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통해서 확보한 소중한 권리들은 아무리 법-제도적으로 확보해 놓더라도 그 투쟁의 성과물을 파괴하려는,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안보의 적들”이 있으며 이 악의 세력을 “물렁물렁하게 용서해서는 안 되며 극형으로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물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명(南冥) 조식이 “칼을 찬 유학자”였다면 한국의 불교는 시대착오적인 호국불교가 아니라 “깨어나는 민중의 칼을 찬 불교”가 되어야한다.4)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이 무기 중개업체의 고문이라는 점은 국가 “안보 파괴범”이랄 수 있는 김상태 전 공군 참모총장이 2004년부터 2010년 초까지 20여건에 이르는 군사기밀을 도둑질해서 세계적인 “죽음의 상인” 록히드 마틴에 전자서신(E-Mail)으로 제공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누가 판단하더라도 부 적격자 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버티는 것이 “의연한 군인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5)  

황 동지의 이런 “아주 진짜 거대한 힘을 길러야” 하는데 극복해야할 것을 서울 남부 노동 상담 센터의 사무장 이정자 씨는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상담을 하러 오는 “노동자들은... 사용자한테... 자신이 그 사람을 통해서 밥을 벌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니까 사용자가 하는 말은 믿어야한다고 생각하죠”. 한국의 노동자들은 무지한 것이다. 자신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서 전적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훌륭한 선조인 매월당 김시습은 “백성을 사랑하는 뜻”(愛民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라에 쌓인 재물은 모두 백성들이 마련한 것이며 윗사람들의 옷과 신발은 바로 백성들의 살가죽이며 음식요리는 백성들의 기름이며 궁전과 수레도 백성들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며 세금과 공물 그리고 모든 용품도 죄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백성들도 자신과 같은 음식을 옷을 주거를 외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한다“6)

봉건 왕조시대에도 이렇게 판단을 했거늘 칼 마르크스가 “잉여 노동의 착취”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오늘날 그의 사상을 책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있음에도 이렇게 노예적 세계관에 사로잡혀있음을 부끄러워해야한다! 최소한 황 동지나 이 동지처럼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용기 있게 지키려는 자세가 있다면 그런 비굴하고 어리석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동지는 “사람이 착하다는 것과 현명하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순박하게, 저항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어떤 문제가 있어도 바라거나 표현하지 않고 삭히는 걸 착하다고, 인내심 강하다고 어려서부터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쟎아요.”

이 동지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이런 인성교육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또 하나의 중대한 과제 ‘가부장제’ 역시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지닌 맹점... 자기 권리를 알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굉장히 약해요” 바로 그러하기에 “필요한 그 순간에 상담만 하고 필요한 도움만 받으려 하지요. ...” 이런 비열하고 눈앞의 이익만 보는 ‘사람 모습을 한 짐승’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최세진 동지가 간파한 “자본은 에스디아이만 아니라 전체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함을 느낄 수조차 없는 것이며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정자 동지는 다음으로 노동자들에게 대단히 부족한 “동지애의 부족”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거칠고 인색했죠.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배려가 없고...”. 나 자신이 운동권을 떠난 동지들로부터 종종 들은 적이 있는 깊은 실망감은 “사람 덜 되먹은 놈들의 꼬락서니 보기 싫어서”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생계 그리고 가족의 여러 가지 압력에 더해서.... 이 동지가 나우정밀에 있을 때 노조에는 노동운동 사회변혁 운동에서 좀 더 거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센 주장을 하는 이들이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거절했는데 회계감사로 당선된 후 이정자 씨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공격과 비난의 꼬투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회의시간에 어색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연장자라는 점에서 먼저 다가가려고 작업라인에 가서 말을 붙이고 조합 관련 일을 의논하려해도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저쪽 간부들의 말만 듣고 오해한 조합원들이 그 간부들을 방해한다고 “... 저년 잡아 죽여야 한다”고 달려든 일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 동지는 “내가 활동가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로 입장 차이가 나는 거는 분명한데 그걸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한테는 부족했”다고 정확히 “사회 변혁운동권의 지도력(Leadership)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동지는 회계감사를 맡은 뒤 도서 반을 조직해서 학습과 함께 “인화단결”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

혁명적 지도력이 재능과 덕을 겸비한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를(을) 신뢰하며 지도력을 이 “불 난 집”(불교에서는 인간 세상을 탐욕-미움-어리석음으로 불 난 집으로 비유하는데 열반이란 이런 불을 완전히 끈 상태를 뜻 한다)에서 불을 끄려는 민중 사이의 협력에 의해서 현실화 된다고 할 때 시인 김선우의 “무한한 혁명”이라는 시는 내가 강조하는 세상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Empathy)과 공감(Sympathy) 그리고 이런 인간다운 감통(感通)으로부터 “네가 나인 동시에 내가 너와 같다고  여기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인간관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전략)...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 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
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 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
져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중략)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가는 동안
수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올
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중략)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이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7)


이해하건대 시인이 말하는 신은 통속적인 ‘인격신’이 아님에 유의해야한다 .
전국 여성노조 서울 지부장 박남희 씨는 추송례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81년 노동야학에서 전태일 열사를 알게 되었는데 “... 참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좋아진 게 아니라 다만 옮겨간 거죠”. 박 동지는 중국에 가보니 우리의 1970년대를 보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박 동지는 2007~2011년 기간 전국 여성노조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 더 넓게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되어 가는 생명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역시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강조하는 “삶의 연기성”&시인 김선우가 말한  “수 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로 비유하는 “생명의 그물망”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14세부터 10년 간 남의 집 살이를 하다 부업으로 공장으로 항상 돈에 쫒겨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오경숙 씨의 삶 또한 눈물겹다. 5년 간 하혈을 하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나날들... 1999년 300만원 빚 때문에 “번 돈 십 원 한 장 못 쓴” 나날을 살아가고 자궁절제 수술 후 20 일도 안 되어 아파트 준공 청소 일을 해야 했기에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만 살려주고 깔려 먹히는 거죠”라고 공정하지 못하고 불의스럽기 그지없는 이 사회의 살풍경을 말한다. 그런 한편 “...나는 어느 정도 기반 잡으면 남도 돕고 살아야지요”라는 인정의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심심산천을 보여준다.

고향에서 상고를 졸업한 후 전자업체에서 일하다 지역 문화원에서 10년을 근무하다 파견직 텔레마케터 노동자로서 불안정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김희영 씨 그리고 한국 직업능력 개발원 커리어넷의 “아르바이트 가이드”에 저촉되는, “도덕의 최소한 인 법”을 공공연히 비웃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 하연이의 삶 역시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사연들을 말해주고 있다.

깊지는 않았으나 10대인 고 1 학년 무렵 마르스주의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기의 자유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성인이 되면 박정희 유신 체제와 같은 독재체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청운의 꿈을 되새김질 한다. 각자 절절한 사연을 겪어 온 여성 노동자 8인의 끈질긴 삶과 투쟁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접하면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자신의 헤게모니론을 카타르시스(Catharsis)로 애기 한 바가 생각난다.

“순전히 경제적인(혹은 이기주의적-정욕적인) 때-계기(Moment)로부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때-계기로의 이행 혹은 ‘객관적인 것으로부터 주체적인 것으로의 이행 그리고 ’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의 이행”8)이라는 변혁운동의 과제. 그람시는 “어떤 사회집단은 정부권력을 장악하기에 앞서 이미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실로 지도자가 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지도자의 자질이란 자본주의적 부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억압적 국가권력을 소멸시켜 나가면서 동체대비를 실천하려 정진하는 것,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구조에 대해서 강력한 주체적 변혁의지를 발휘할 수 있으며 이런 “이루어져 유지되다 무너지기 시작해서 소멸한다”(成-住-壞-滅)는 올바른 관점에서 부단히 변화하는 동적인 현실에서, 자신의 탐욕에 유리한 한 두 측면만을 보고서는 자신의 짐승 같은 혹은 짐승만도 못한 삶을 “합리화”(Rationalization)하는 자기기만의 “현실적 운명론”이라는 무명(無明)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비와 이성(Reason)의 눈으로 “잠재적 가능성이 창발하는 동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如實知見)를 발휘하는 주체성이다. 위 8인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런 자질을 육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여성들에게 명상을 권한다. 명상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호흡명상 이다. 반드시 부처님과 같은 자세를 취하지는 않더라도 척추를 곧추 세운다면 편안한 자세를 취해도 괜챦다. 이런 자세로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심심산천이 난장판 같음을 알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같은 난장판 심경(心景)을 잔물결 없는 거울 같은 호수(明鏡止水)에 비친 모습으로 변모시키려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런 호흡명상을 아침-저녁으로 5 분 정도만이라도 꾸준히 하면 정신집중력이 높아지며 이런 자질을 방편으로 자신의 3독, “탐욕-미움-어리석음”(貪-瞋-痴)에서 벗어나면서 “지혜로운 자비심과 용기 있는 나”로 변신해 가는 도정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대략 1995년 이후 학생운동이 쇠락하기 시작한 후 대학생 연령에 이른 젊은이들은 동일방직 사건뿐만 아니라 이 한(恨) 많은 나라의 민주-민족변혁 투쟁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각 인물들의 중요한 활동과 관련한 시대적 맥락을 간략히 소개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향후 제 2판을 출간한다면 이 점을 반영하기 바란다.

“인간 됨(Human Becoming)”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들 중 한 가지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성-주-괴-멸하는 사건들에 대한 기억”의 문제다. <<삼국유사>>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승정원일기>> 등등 위대한 “기억의 문화적 전통”을 우리는 오늘날 과연 제대로 계승하여  비판적 역사의식을 발휘하여 당면 현실에 실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된 한 가지 성과라고 본다. 황옥미 동지-추송례 동지-최세진 동지-이정자 동지-박남희 동지-오경숙 동지-김희영 동지-하연이 동지의 눈물겨운, 인간의 짐승성을 넘어서  “인간 됨”을 형성해온 견실함에 경의를 표하며 집념을-집착과 날카롭게 구별해야 한다-발휘해서 나무(木)가 나무라지 않게 투쟁의 기억을 아로새긴 작가 박수정 씨의 노고에도 감사드린다.        



1. “동일방직 노조에 대한 탄압”,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 인권변론 한 시대 대담 한인섭>>(서울: 경인문화사, 2011), 263~272.  
2. Stephane Hessel, <>(Paris: Indigene Editions, 13 edition, 2011). 11~12.
3. Geoff Eley, <>(New York: Oxford U. P., 2002). 279.
4. 마르크스주의자인 홍명희는 <<임꺽정>>(서울: 사계절, 1995년 3판) 제 3권 “양반편”에서 조식이 백성이 병들게 되는 근원을 규명해서 맹렬하게 고치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5. <경향신문> 2013-02-27일자. 8면. 그리고 “The Secret War", <>2012년 1월호. 52~57.  
6. 김시습 씀, 류수-김주철 옮김, <<금오신화에 쓰노라>>(서울: 보리. 겨레 고전 문학선집 8, 2005). 517.
7. 김선우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서울: 창비, 2012). 80~83.
8. Antonio Gramsci, <>.Textes chioisis et presentes par Razmig Keucheyan(Paris: La Fabrique, 2011). 65.
              

2013-03-04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저서: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 영역: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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