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칼럼] 김강자 발언 계기로 성매매 처벌법을 재음미한다

김기원(방송통신대 교수, 경제학)

2000년에 김강자 서울 종암경찰서장은 '미아리 텍사스촌'이라고 불리던 집창촌에 대해, 미성년자 윤락행위에 철퇴를 가하면서 대대적으로 단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종암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집창촌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자, 공창제 도입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단체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녀가 '제한적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최근 다시 주장했습니다.

저도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해 '한겨레'에 두번 칼럼을 썼고, 그 때문에 여성단체와도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여기 블로그에서도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의 10장 '현실과 유리된 진보파'에서도 제 초고에서는 성매매처벌법 논란 문제를 3꼭지 중의 하나로 썼습니다. 성매매 문제를 개혁과 진보라는 우리 사회의 과제와 연결시켜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그 부분은 빼는 게 좋겠다고 강력히 권해서, 출간된 제 책에서는 결국 빠지고 말았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원래 제 책 초고에 들어 있던 부분을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좀더 상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의 이전 글들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성매매처벌법 논란

2004년에 성매매처벌법(정식으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및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2개의 법률로 구성)이 제정되었다. 제정된 직접적 계기는 2000년에 발생한 군산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의 화재사건이었다. 불이 났는데도 쇠창살 때문에 성매매여성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들끓는 분노를 배경으로 여성단체들은 과거에 비해 성매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밀고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보파 여성인사들도 이런 법제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였다.

그런데 법이 발효되자 성매매여성들이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법 때문에 손님이 줄고 자신들도 경찰에 붙들려가게 되자, 생계가 어려워진 성매매여성들이 업주의 지원을 받아가며 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국회 앞에서 50일간 천막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러자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위가 업주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진보파 여성단체가 선의에서 법제정을 추진하긴 했지만, 성매매여성의 삶과 의식에 대해 잘 몰랐음을 드러냈던 것이다.

성매매여성들이 강제로 동원당했고 성매매처벌법을 지지한다는 건 여성단체의 자기최면이었다. 성매매여성들은 업주와 이해관계가 많이 일치하기 때문에 업주의 지원을 받아가며 시위에 나선 것이었으며,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가 강제로 동원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심지어 일부 성매매여성들은 노조를 조직해 양대 노총에 가입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성매매여성 시위 이후 성매매처벌법을 지지했던 여성단체 관계자 중 일부 솔직한 인사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2005년 당시 여성부 장관이 법 시행 후 부산의 집창촌을 방문해 실상을 듣고서야 비로소 집창촌 단속 완화를 경찰에 부탁했던 사실에서도 여성단체의 무지를 확인할 수 있다(2005년 4월 13일 언론 보도). 결국 성매매처벌법 제정은 당시 집권하고 있던 노무현정부를 비롯해 진보파가 대중의 현실과 유리되어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던 셈이다.

물론 법에는 성매매여성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성매매여성이 업주에 대한 빚 때문에 강제로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 그 빚이 무효가 되었다. 아울러 해당 여성은 성매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꼭 법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해 성매매여성을 감금하고 있던 쇠창살은 사라졌다. 그리고 법 시행으로 성매매의 거래 건수가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성매매여성들 입장에서는 부작용이 만만찮았다. 성매매 거래 건수가 줄어든다는, 사회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 할 수 있는 현상 자체가 그 여성들에게는 생계의 위협을 의미했다. 그리고 성매매가 불법인 상황에서는 폭력이나 부패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은 이런 폐해들 때문이었다.

나는 시위와 천막농성에 충격을 받아 성매매와 관련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정을 조사해봤다. 그리해서 신문에 칼럼을 썼다가 여성단체와 논쟁을 벌이고 또 그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었다. 어쨌든 조사해보니, 미국, 중국, 한국, 대만에서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해 단죄하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이나 유럽은 일정한 규제를 가하긴 하지만 대체로 성매매를 단죄하지는 않는다.

스웨덴은 성구매자를 처벌하되 판매자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형편이니 어떤 게 딱 부러진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게 보수적 입장이고 어떤 게 진보적 입장인지는 따질 수 있다.

성매매를 처벌하는, 특히 판매자인 여성마저 처벌하는 법은 조국 교수가 논문 <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에서 밝혔듯이 보수적 도덕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인권단체 미국자유시민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나 COYOTE(Call Off Your Tired Ethics), 대만의 COSWAS(Collective of Sex Workers and Supporters) 등 진보적 시민단체는 성매매처벌에 반대한다.

미국보다 평균적으로 더 진보적인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매매 알선이나 조장이 아닌 단순 성매매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는 것도 성매매 처벌이 보수적인 조치임을 증명해준다. 미국에서도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에서는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처벌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성매매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가 네바다 주에선 거의 없는데 워싱턴과 뉴저지주에선 절반 가량이라고 한다.

네바다주에선 성매매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적다. 마찬가지로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는 성구매를 불법화한 스웨덴에 비해 성매매여성 비율이 높다. 반면에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게 진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성매매처벌법을 주도한 진보파는 진보파로서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성매매여성을 위해서 이 법을 제정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 거래를 줄이는 게 사회를 깨끗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런 보수적 입장은 ‘잘못된’ 입장은 아니다. 가치관이 진보와 다를 뿐이다. 보수파는 법질서와 개인책임을 강조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건전한 직업을 갖지 않는 ‘타락한’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어떤 여성운동가가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고 했던 것도 성매매처벌법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의 소비에 대해선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 상태다.

그러면 진보적 입장에서 볼 때 성매매의 합법화가 불법화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게 합법화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가. 그건 꼭 그렇지 않다. 성매매는 성병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라는 폐해를 갖고 있는 비가치재다. 따라서 합법화하더라도 거래량이 줄어드는 게 바람직하다. 어찌해야 그게 가능할까.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이론을 활용해보자.

먼저 성적 써비스에 대한 수요 면을 보자. 남성의 성적 욕구를 근거로 성매매가 불가피하다는 남성 본위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선 성매매인구 비율이 우리나 미국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장애인 같은 성적 소외자나 과도하게 성적 욕구가 분출하는 이들을 위한 약간의 성매매는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 성매매 특히 고급 성매매의 수요처는 접대다. 관료들을 접대할 때, 중소기업 납품업자가 대기업 구매담당자를 접대할 때, 홍보책임자가 기자를 접대할 때 룸살롱에서 성매매까지 책임진다. 이런 종류의 접대가 사라지면 성매매 수요가 크게 줄어든다. 다시 말해 공정한 시장경쟁이 이뤄지고 우리 사회 지도층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성매매를 매개로 한 청탁이 옛말이 된다. ‘개혁’이 성매매 문제의 해결책인 셈이다.

성매매엔 물론 접대 이외의 경우도 있다. 친구끼리 한잔 하고 떼거리로 성매매를 한다든가 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만약 생활이 빠듯해서 이런 식으로 돈 쓰기가 힘들어지면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북유럽처럼 월급에서 세금 많이 내고 나면 낭비할 돈이 그다지 남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낸 덕택에 교육, 의료, 주택, 노후 문제 등에서 우리처럼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복지국가로 가는 ‘진보’가 개혁과 더불어 성매매를 줄이는 길이다.

다음으로 성적 써비스의 공급 면을 보자. 로마시대의 황후 메사리나처럼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사창가에 들어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성적 써비스 공급의 주된 동기는 돈이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또는 보다 쉽게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공급 측면의 대책은 두가지다. 전자의 생계형에 대해선 복지를 강화하는 게 정답임은 쉽게 알 수 있다. 후자에 대해선 우선 성매매까지 해서 굳이 한밑천 잡으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아무 직장이든 건전한 직장을 잡아 열심히 일하면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공정하고 복지가 갖춰진 사회가 되면 꼭 목돈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성매매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켜 성매매 써비스에 대한 가격이 떨어지면 성매매 수입과 일반직장 수입의 차이가 줄어든다. 그러면 여성들이 성매매시장에 나올 동기가 약화된다.

결국 성매매의 수요와 공급을 감소시키는 길은 바로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인 셈이다. 이리하지 않고 성매매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지금의 방식은 성매매와 관련된 부패와 폭력을 온존하고 성매매여성의 인권을 오히려 악화시킨다.

다만 그런 방식은 개혁과 진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적어도 성매매 거래량을 약간 줄이는 효과는 갖는다. 풍선효과 어쩌구 해도 처벌의 위험성 때문에 전체 거래량은 줄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부패, 폭력, 여성인권 악화 문제도 해결하고 동시에 성매매 거래량도 줄이려면 개혁과 진보를 통해 북유럽 선진국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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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원: 서울대 경제학과(박사), 일본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 객원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인권뉴스는 김기원 교수의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론을 환영합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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