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재능투쟁의 승리와 명암을 운동으로 승화시키자

투쟁승리와 개별자본 넘어선 운동의 의미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재능교육지부) 투쟁이 거리농성2076일 종탑농성202일이라는 초장기 고강도 싸움을 통해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원직복직’이라는 노조의 애초 요구 그대로 사측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남한 노동운동사에 큰 족적으로 남을 만한 일이다.

또한 재능투쟁의 성과는 운동진영에 희망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처럼 단비 같은 귀한 승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간의 투쟁 과정과 결과에 대해 운동진영 앞에서 공개토론회를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나누고자 하는 재능교육지부의 제안은 투쟁의 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지닌 운동에서의 함의를 주시하며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동지들과 연대단위들이 2008년 10월 재능교육 사측의 단체협약 일방 파기 후 2013년 8월까지 6년 째 초지일관으로 자본에 맞서 투쟁으로 합의를 도출했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재능교육이라는 개별자본을 넘어선 보다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즉 25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는 물론이고 크게는 500만 비공식부문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위해서 폭압적인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모든 동지들이 일상을 포기한 채 헌신적으로 전선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그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쟁현장을 굳게 사수한 조합원 동지들과 연대단위들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파행 원인 제공 <비없세>는 사과해야  

  재능교육지부는 종탑농성 시점을 계기로 심각한 내홍을 겪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운동의 성격과 주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재능투쟁은 네티즌들까지 연대하는 대중적 노동운동으로써 좌파적 전위운동과 층위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집행부인 시청환구단 농성장(시청환구단측)의 일부 조합원과 그들이 소속된 연대단위인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노혁추)은 ‘비타협적 투쟁’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적으로 패권주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노동자민주주의 원칙에 의거,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패배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선거(대의원 대회) 결과도 부인한 채 현 집행부에게 재정과 투쟁차량에 대한 인계인수를 일체 거부하고 별도의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반조직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연대’란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엄호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 점에서 시청환구단측이 투쟁의 주체를 연대세력 모두로 상정한 것은 혹여 사회적 상징성의 표현이라면 모르되, 진행 중에 있는 교섭행위의 실질적인 주체인 노조를 배제하려는 바람에 연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노조 없는 교섭’이란 이상한 논리가 되고 말았다.

  재능교육지부의 내부적 파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비정규직없는세상’(비없세)의 있을 수 없는 운동적 오류이다. 비없세 집행부는 재능사태에 중재를 자임하면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선거에 개입하여 노혁추 소속의 특정 조합원에 대한 직무대행 ‘내정’을 강권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비없세의 자의적인 ‘내정’은 조합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중재 자리에서 협의 절차를 거친 합리적인 선거는 비없세의 의도와 다른 결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이른바 ‘내정’자 쪽인 시청환구단측은 비없세의 ‘내정’ 강권을 마치 노조가 합의했던 사항인양 기정사실화하고 그 뒤 선거에서 갑자기 번복된 것처럼 허위 선전하며 민주적 선거결과를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비없세는 이렇듯 재능투쟁의 파행을 자초한 근본원인을 제공한 데 대해 운동진영 앞에 솔직하게 시인하고 공식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비없세가 일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동이 특정 개인이나 연고를 중심으로 행해진다면 이는 운동이 아닌 종파주의적 이해관계로 노조를 이용하려 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원칙에서 일탈한 행위는 운동적으로 심히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치판단 유보와 인식공격형 마타도어들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둘로 나뉘어져 난항을 겪으면서 연대하는 운동진영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적지 않은 연대동지들은 그간 언론을 통해 이미지가 각인된 전 집행부인 특정 조합원에 대한 신뢰와 연민이 크게 작용했다. “설마..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라든지 혹은 “오랜 기간 투쟁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지” 라는 식으로 막연하게 관념하면서 “각자 열심히 투쟁하면 되지”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심지어 “투쟁하는 곳은 많을수록 좋은 거지”라는 무책임한 논리까지 나오곤 했다. 이렇듯 기존의 연대단위들 중 다수는 속속 드러나는 사실과 진실 앞에서조차 자신들의 가치판단(입장)을 유보하고 내부적 모순에 애써 눈 감으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연대투쟁이 그만큼 사회과학적인 운동에 철저하게 복무하지 못한 채 개별적 인연의 사슬에 얽매이거나 맹동주의에 머무른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질문을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사태의 전말이 확연하게 드러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시청환구단측 인사들이 사적으로 만나 화해하면 모든 문제가 봄눈 녹듯이 풀릴 거라는 식의 비운동적 인식이 팽배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에서 이른바 종탑쪽 조합원들이 고통을 가장 많이 받은 내부적 요인은  누가 봐도 인터넷을 통한 비난 공세였음이 분명했다. 익명에 의한 공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시청환구단측 3인의 명의로 운동진영 앞에 제출된 문건에는 동지들에게 차마 해선 안 될 터무니없는 표현들이 난무했다. 더욱이 안전장치도 없이 엄청난 추위와 더위 그리고 거센 바람과 천둥번개 앞에서 하루하루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종탑 위 두 여성동지를 향해 투쟁과 전혀 무관한 인신공격형 마타도어로 욕보인 점은 뜻있는 동지들로 하여금 “이런 것도 운동인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했다.

운동은 동지들 사이의 상호 발전을 위해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그러나 비열한 ‘비난’과 운동적인 ‘비판’은 엄연히 궤가 다른 것이다. 운동진영에서 오래전부터 ‘인문학적 품성론’이 회자된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동지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을 강조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인터넷 공격은 이 ‘선’을 훌쩍 넘어버렸고 종탑쪽 조합원들은 노조의 공식입장 외에는 마냥 침묵으로 삭여야만 했다. 다행히도 8.26합의로 두 동지가 종탑농성 202일 만에 안전하게 내려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로선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던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8.26합의’ 부인, 명분 없는 반조직적 교란행위

   재능교육지부가 사측으로부터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원직복직’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환구단측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그간 노조 명의와 지난 직함을 자의적으로 사용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합의’까지 도출된 대세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더 이상 노조 명의와 직함을 고집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재능교육지부의 합의를 "철저하게 배신적인 타협“이라고 규정짓고 단체가 아닌 개별적 투쟁으로 9월 30일부터 전국 재능지국(지소) 앞에서 매주 월요일 <전국동시다발 1인시위>를 벌인다고 한다. 이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에서 자신들이 미진하다고 판단한 ‘수수료 독소조항 즉각 폐지’와 ‘하절기 지원금(휴가비) 즉각 지급’을 요구사항으로 내건 상태이다.

그러나 이들의 개별투쟁 주장은 이번 재능투쟁이 쟁취한 정치사회적 의미인 노동자민주주의, 노조단결, 노사대등지향, 노동권 획득 등을 고려하면 상당부분 명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조는 조합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재능교육지부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8.26합의’에 대한 입장에서 “2007년 농성투쟁을 시작하게 만든 개악된 수수료제도는 이미 없어졌”으며 “2008년 회사가 일방적으로 수수료제도를 변경하면서 만든 악제도인 (-)월순증수수료, 월회비정산제도를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요구를 담아 개선”할 것과 “2013년 단체협약을 갱신체결하기 위해 현장투쟁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현장과 분리되었던 재능교육지부가 농성투쟁을 끝내기 위한 판단이 아니라 “현장을 재건하고 조직하는 투쟁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데 대해 동지들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이를 적극 지지한다. 그리고 4천5백 재능선생님들과 함께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본다. 따라서 시청환구단측 조합원들은 현 합의에 다소 미흡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의 조직적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노조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관철시킬 수 있도록 현장에 들어가 지속적인 투쟁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시청환구단측 조합원들이 재능교육지부와 별개로 외부에서 계속 투쟁(?)을 운운한다면 이는 ‘8.26합의’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한 반조직적인 교란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사측에서는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종탑 두 동지가 내려오게 되었으므로 사회적으로 나름 명분을 얻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시청환구단측 조합원들이 전원원직복직에 응하지 않고 개별 행동으로 나아갈 경우, 노조는 합의에 정한 ‘복귀 후 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모든 후과와 그 책임은 시청환구단측이 져야할 엄중한 상황에 봉착하게 됨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노조단결로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 희망 되어야    

  그간 정치조직인 노혁추와 유관한 조합원 일부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노노갈등으로 비추어지는 이러한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게끔 이번 투쟁의 승리와 명암을 운동으로 승화시켰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 만시지탄이지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제 기능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일 듯하다.

해서 극한의 장기간 투쟁 속에서 함께 수고했던 동지들이기에 어느 누구도 한 사람 빠짐없이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인 단결투쟁으로 현장에 임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2013년 단체협약을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성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를 위한 법·제도 개선 투쟁은 물론 자본과 권력의 전횡 앞에 의연하게 저항하는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동지들이,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도 그 길에 동지들과 항상 함께 할 것이다.  


2013년 10월 4일

전 국 좌 파 연 대 회 의

(* 재능교육지부는 10월 5일 오후 2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그간 투쟁에 연대한 단위들과 함께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본문은 이날 배포된 '재능교육지부 투쟁 평가를 위한 공개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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