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군사력? 그 허구성
◆ 편집자 주
현재 한국 사회는 ‘군가산제폐지’에 관한 논쟁(?)으로 뜨겁다. 재향군
인회를 비롯한 곳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데모행렬이 이어지고 분노한
남성들이 여성 단체 홈페이지를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렇게 논쟁 아닌 논쟁-이는 논쟁이라기보다는 남성을 위시로 한 다수
의 일방적인 폭력에 가깝다-이 사회전역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와중, 국민회의는 여론수렴(?) 차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군가산제폐지를 백지화했으며 거기에 더하여 군가산점제도를 공공부문
으로까지 확장시키는 당정안을 발표했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이번『평화연대』특집
은 크게 3가지 주제로 구성을 해보았다.
첫 번째 글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감정적인 남녀 성대결처럼 논
의되어지고 있는 이번 사건에서 ‘군가산제폐지’와 더불어 한번쯤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을 짚고 있다. 식민지하에서 그리고 폭압적인
정권하에서 국방의 의무와 군사안보라는 논리가 어떻게 기능해왔는가
를 살피는 글이다. 두 번째 실린 글은 군가산점 제도 자체가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정당한 노동권을 박탈하는 불평등한 법률이
며,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말초적인 언쟁과 욕설로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
서의 논쟁에 대하여 문제점을 짚고 있다.
한 여성활동가는 이번 국민회의 당정안 발표를 보고 울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군대 문제에 있어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남
녀 모두가 사회적 약자인 것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더 발본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이 함께 하길 기대해본다.
군대? 군사력? 그 허구성!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총선을 겨냥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정치 모리배들의 습성엔 이젠 정
말 신물이 난다.
‘남성 Vs 여성·장애인’의 감정적 한 판 싸움으로 비춰졌던 ‘군가산제
폐지’ 투쟁이 국민회의 측의 남성승리(?) 판정으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 자체가 사실상 무효화되었다. 물론 투쟁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
다. 사회 단체들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사
수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으며, 이를 넘어서 징병제 폐지 등
의 군대문제 전반에 걸친 투쟁으로 나아가자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
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성학연구회’를 만들자는 등,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
는 등의 매우 우려스러운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이 주장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공감대가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민회의 당정안에서도 평등권이 위배되지 않도록
(?) 여성들과 군미필자들이 사회봉사 경력을 통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우습지도 않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쯤에서 몇 가지 정리를 하고 넘어가자.
첫째, 여자도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초적 주장에 대해. 현재 이 주
장의 당사자인 여성들조차도 “군대에 가는 것이 필요악이라면, 남녀가
모두 같이 짐을 짊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
다(한겨레신문에서 군가산제 문제에 관한 대담 비슷한 기사가 난 적
있었는데 실제로 위와 같은 얘기가 나왔다). 왜? 대한민국의 젊은이
들은 때가 되면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가? 어째서 돈 없고 빽 없는 젊
은이들의 팔팔한 청춘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고스란히 국방의 의무
라는 미명하에 바쳐야 하는 것인지. 둘째, 남북의 분단이라는 한반도
의 상황 속에서 군사력의 신장(징병제를 포함 군대의 초현대화까지)이
국가안보를 과연 튼튼하게 해주는 것인지. 이런 “군사력이 곧 국력이
다”라는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구호 속에 우리의 당연한 권리들
이 희생되고 있지는 않았는지. 셋째, 사실 군대 26개월 뺑이 친 것에
대한 보상을 진정으로 받고자 한다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생색내기식
제도에 대해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더욱 타당한 보상제도를 마련하라
고 요구하는 것이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외쳐야할 구호가 아닐런지.
사실 군대 다녀온 모든 남성이 군가산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
지 않는가. 괜히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들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
“띵똥- 띵똥-“
“×××씨 계십니까? 영장 나왔습니다.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대한민
국의 사지육신 멀쩡한(?) 남자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소리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오는 입영 통지서!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
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되고, 따라서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져
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군대 가는 것을 국방의 의무라 신
성시하며 열심히, 나라를 위해서 이 한 몸 바친다 생각하고 입대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군대랑 상관없는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조
금 웃긴 일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론 누구도 군대가 인권이 보장
되고 두둑한 월급을 받으며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서 한 번
쯤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군대는 한국 사회의 가장
구린 곳, 비리의 온상, 까딱하면 죽어서 나오는 그런 곳이라 생각한다.
하기에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모두들 너무 고생했으니 인정해줘야 한다 하지 않는가. 모두들
군대는 누구나 한 번쯤 다녀오는 곳이라 한다. 하지만 가기 싫은 사람
은 안 가도 좋지 않을까? 모든 대한민국 남성은 군대를 다녀와야 한
다는 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또는 기간이 너무 길지는 않나? 아니면
군대가 인권의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민주적으로,
두둑한 월급으로, 여러 기술도 습득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조그만
사회로 바뀔 수는 없나?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
2.
오늘날 남북한 모두는 이러한 군사적 동원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의
기원은 일제 식민 통치하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 시기는 신체의
등급화, 사회의 군사화 등이 크게 진전되는 시기이다. 제국주의(일본)
에게 식민지(조선)는 원료 공급지이자 시장으로, 또 여러 용도(허드렛
일을 시킬 수 있는 값싼 노동력, 심지어 위안부로서의 식민지 여성)로
필요한 인간들의 집합소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토 점령
만으로 그 나라 민초들의 마음까지 점령할 수는 없는 것, 이 점에서
군사적 차원의 식민지 지배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무조건적이고
강압적인 권력만 가지고는 식민지 민초들의 자유에 대한 저항을 막아
낼 수는 없었겠지. 따라서 학교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군사교육을 실
시하여 군사 논리를 체화시켰으며 이러한 직접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즉 복장, 식사, 주택, 선물, 혼례, 공중도덕 등에서도 군사
논리를 적용하여 생활 자체가 군사화 되도록 하였다. 이것의 효과로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배의 억압을 내면화하고 체제에 순종하는 인
간을 재생산할 수 있었고, 사회 전체는 군사논리의 지배를 받게 되었
다. 환도를 차고 교단에 오르는 선생, 군대와 똑같은 나팔소리를 들으
며 점호하는 학생, 심지어 방공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주택이나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도 군사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상시적인 주민 연락·감
시체계의 구성으로 사회의 군사화는 착착 진행되었다. 이렇게 일본 정
치체제가 군국주의적 색채를 더욱 강화해가는 것과 함께 일제에 의한
조선사회의 군사화도 더욱 강화되어 결국 1942년 징병제 실시, 1943년
학도병 동원, 1944년 노동력과 종군위안부로서 여자들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3.
식민지하에서 군대와 사회적인 군사화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필
연적 귀결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마찬가지로 해방 후의 한
국사회에서도 정권의 폭압 수단으로 군대는 아주 우수한 도구가 되었
다. 박통은 남·북의 대치 분위기를 이용한 정권의 유지·강화의 도
구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사회 전체를 병영화하기 시
작하였다. 성인 남자는 군 복무기간을 마쳐도 예비군에 편입되어 일정
한 군사훈련을 계속 받아야 했고, 학생들은 교련수업을 통해서, 나머
지 면제 혹은 나이든 남성들도 민방위라는 제도를 통해 군사체계로
편제되었다. 이렇게 체계화된 군대를 통해 계승된 군사정권은 광주를
짓밟았으며, 이후 군대는 본연의 임무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민중투
쟁에 무력억압을 위해 동원되었다.
하지만 문무대·전방입소철폐 투쟁을 필두로 90년 예비역 복학생들의
예비역협의회 건설, 의문사 유가족협의회 결성, 이어지는 군 양심선언
등으로 군대 바로세우기의 노력이 전개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군대문제(군가산제폐지를 비롯한 여러 투쟁들과 좀 더 발본적인 문제
제기 등)는 언제나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다. 때론 적절히 터지는
서해교전 사태와 같은 싸늘한 남북간의 냉기는 슈퍼마켓의 라면 품귀
현상과 함께 좀 더 공고한 그들만의 성역을 구축하는 데 일조 하였
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사건으로 군사적으로 중무장한 일본의 경
우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하물며 50년 분단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경우야 말해 무엇하랴.
2000년 한국에서 아직도 북한은 ‘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선 군사
력 증강이 최우선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필연적 귀결일 수밖에 없다. 군
사력이 뒷받침되어야 감히 넘볼 수 없다는 군사주의의 논리는 이 한
몸 던져 서해바다의 평화를 지켜낸 용감한 남한 해군 병사들의 무용담
과 겹쳐지며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정치담론을 형성해내고 있다. 이렇
듯 군사력 증강은 적의 침략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충분
조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군비경쟁이 과연
반평화적인 고리들을 끊어내고 진정으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
인지를 되물어봐야 한다. 더불어 “안보, 안보”하는데 과연 “누구를 위
한 안보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필요하다. 오히려 지나
친 군비경쟁이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더불어 군사논리에 밟혀
국민들의 생존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들은 묵사발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군사력의 신장을 통한 국가 안보는 결국엔 엄청난 무기경쟁을 낳을 수
밖에 없고 동반자적인 공동체 의식보다는 국가간의 적대성을 강화시키
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복지와 안보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현재 지구상에는 지역적으로 많은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유럽의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등지의 제3세계 국가들이다. 전쟁으
로 대변되는 갈등과 분쟁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불평등한 무역, 실업, 성적 불평등, 아동착취,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반
한 수출주도형 경제 등 대부분이 민중에 대한 모든 억압적 요소와 구
조적 폭력, 환경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요인들을 통해
서 직접적인 무력분쟁들은 발생한다. 이러한 모든 억압적 요소들의 중
심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버티고 서 있다. 탈규제와 민영화라는 카
드를 양손에 들고 전세계 민중들을 위협하고 있는 이 괴물은 무기제조
업자들의 보다 강력한 자유화 조치 요구를 통해 더욱 확대되고 보장되
고 있다. 1997∼98년 사이 나토 회원국들은 무기구입을 위해 4,7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썼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90년대를 통틀어UN이 실
시한 개발프로그램에 배정된 예산은 고작 1,537억 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경우도 최근 금강산 관광의 물결을 타고 예전보다 한
층 가까워진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이것은 진정한 분단극복이 아니다.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초국적 기업들의 더 많은 이윤추구를 위한 미
국의 한반도 전략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전세계 민중과 특히 제3세
계 국가는 세계화한 자본의 질서 속에서 다국적 기업, 국제금융기구,
군산복합체들과 결탁한 강대국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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