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군산→금파리 굽이굽이 돌아

글 /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어젯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난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근데 그 길은 한적한 오솔길도,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이

간지러운 백사장도 아닌 철조망이 쳐지고 폐허가 된 그런 곳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른아른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소리는…. 귀

가 찢어질 것만 같은 그 소리는 전쟁영화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던 폭

격 소리 같았다. 마치 내가 전쟁터의 한 가운데 서있는 것만 같은 그

런…

# 2월 15일

분쟁지역 체험여행 이틀째,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이다.

미국대사관 앞 집회를 마친 우리는 곧장 매향리로 향했다.

매향리! 참 향기로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근사한 이름을 가진

동네가 미군의 폭격에 의한 무시무시한 땅으로 변했다는 것이 믿겨지

지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그곳은 마을 초입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폭격 소리로 소란했다. 이 마을은 옛부터 대대로 농업

과 어업에 종사하며 부유하진 않지만 주민 모두가 생활 걱정 없는 한

가로운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8

월경 미공군사격장이 갑자기 마을 한가운데 떡하니 들어섰다는 것이

다. 전쟁 중엔 그렇다 치자. 근데 이 괴물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남아 비행기 사격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 공군의

사격훈련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육상 사격장과 그로부터 1.2㎞ 가량

떨어진 인근 해안의 농섬에서 이루어지는데 전폭기, 헬기, 수송기 등에

서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경부터 오후 10시, 11시

경까지 비행기 포탄 투하와 기총소사 등이 이루어진단다. 처음 주민들

은 너나할 것없이 모두 순박한 시골 사람들로서 처음 사격훈련이 시작

되었을 때 ‘6·25 전쟁이 끝나면 멈춰지겠지’ 그리고 휴전 후에는 머지

않아 사격장이 적어도 다른 데로 옮겨지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지금까

지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사격훈련이 이루어지면 전폭기 등이

우선 마을 상공을 선회하는데 그 자체가 주민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위

협이 되고 그때부터 소음이 시작되어 사격 직전의 급강하 시나 사격

직후의 급상승 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발생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사격훈련이 주민들 거주지 바로 옆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 포탄이 떨어질 지 알 수 없어 계속 긴장하게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1980년대부터 당국의 축산 장려 정책으로

수천 만원씩 빚을 내어 젖소와 닭, 돼지 등 가축들을 많이 키웠었는데

착유량이 줄고 사산이 잦은 데다가 쉽게 병을 앓아 큰 손해를 보았으

며 지금은 아무도 목축업을 하고 있지 않으며 당시 수의사들 얘기로는

사격장 소음으로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경우도 계속된 사격장 소음으로 일상생활에서 항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외부와 전화통화를 할 때에는 상대방이 오해할 정도로 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정서적으로 신경질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주민들 상당수가 귀에서 윙 소리가 나는 등 청각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의 경우도 1999년 7월 1일 선착장에 있는 어선 10여 척에 로켓포탄 2발이 잘못 투하된 일이 있었고 1999년 9월 1일에는 포탄 1발이 마을 한 가운데 공터에 떨어져 마을 전체가 공포에 떤 적이 있다고 했다.

기차길 주변 마을은 무슨 이유에선지 유난히 집집마다 아이들의 숫자

가 많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잘된 비유가 아닌 것

같지만 이놈의 폭격장이 들어선 이후 한 동네 2백40여 가구에서 무려

23명의 주민이 자살했다는 놀라운 통계에 우리는 모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전쟁은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닌 것이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또 철조망. 철조망 지역으로 다가서자마자

다시 한 번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뼛속까지 전율을 느끼게 하였

다.

# 2월 17일

우리가 다시 도착한 두 번째 분쟁의 현장은 매향리와 마찬가지의 소음

들로 시작되었다. 군산 지역 사람들의 말로는 이 곳 미군기지에서 전

투기가 출격할 때 의례 나는 소리라 했다. 익숙하다는 듯이 들렸지만

미군기지 주변 사람들은 매향리 주민들과 마찬가지고 청각장애와 심리

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소리들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가

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군산은 지난 파주사태(기지 내 폭발물

이 설치되어 있다는 제보, 한국인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꽁지 빠지게

중행랑 친 미군)로 미군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고 했

다. 폭격장을 중심으로 한 매향리와는 달리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군산은 다층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아메리카타운의 환전소 여

주인 살해사건, 술 취한 미군에 의해 자행되는 무고한 시민의 구타, 위

조지폐 사건 등 미군에 의한 범죄행위와 미군부대에서 무단으로 방출

하는 오폐수로 인한 서해안과 갯벌의 오염 등 총체적인 문제들이 모두

기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범죄 행위들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음

에도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처벌도, 요구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란

것이다. 단적인 예로 아메리카타운 환전소 여주인 살해사건 때도 목격

자의 증언으로 피가 묻은 채 황급히 뛰어가는 미군이 목격되었음에도

당사자의 신병을 미군 측에서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거 직후 미

헌병대로 인도되었고 한국 측의 자세한 수사진행은 불가능했다는 것이

다. 위조지폐 사건만 해도 그렇다. 미군비행장 부근 쓰레기장에서 처음

발견되어서 난리가 났었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러한 사건은 반

복되었다고 한다. 한미행정협정에 의해 미국이 저지른 모든 범죄는 한

국에서 처벌할 수 없다?

꿈속에서 갈매기가 끼룩끼룩… 미군부대도, 미군범죄도, 미군이 하는

일은 모두 한국 사람은 아무도 어찌 할 수 없다.

# 2월 18일

우리가 도착한 마을은 파주군 금파리라는 곳이었다. 이름부터 촌스럽

군… 중얼거리는데 이 마을은 이상한 특징이 있었다. 군데군데 어설프

게 쳐있는 철조망. 또 유난히 다리에 장애를 가진 주민이 많다는 것.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바로 이곳은 대

인지뢰 매설지역이었던 것이다. 왠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 두려울 만

큼, 내딛는 걸음걸음 무지하게 신경이 쓰였다. 발 밑을 조심하라고 우

스갯소리로 서로 얘기했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이곳 피해 주민들 대다수는 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지뢰를 밟아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뢰 매설이 필수적이었다면 지금 전쟁이 끝난지 50년이다.

게다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매설 지뢰 수거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 할 수 없었다면 적어도 어디에 지뢰가 매설되었는지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더욱 억울한 것은 정부

에서 이렇게 잘못을 해놓고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나몰라라 한다

는 것이다. 수 차례 건의도 해보고 데모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고

했다.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대인지뢰 금지운동이라지만 한국정부는 대인

지뢰 금지협약에 서명하는 것을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하고, 씻어주지 못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꿈에서 깨다. 그래 이건 꿈이야. 말도 안되는 소설 같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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