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만화읽기
묵공(墨攻)
Hideki Mori, Sakemi Kenichi Kubota Sentaro
신광균 /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때는 전국시대.『묵공』이란 만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국
에서 가장 전란이 많았던 시대중의 하나인 전국시대. 장소는 연나라의 인구 4,000의
조그마한 성 양성. 이 조그마한 성에는 두 부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 이 성의 지배
자인 성주의 가족들, 그리고 대부분이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백성들이 살고 있다.
어느날 이 성에 조나라의 15,000 군사가 침략해 온다. 그리고 이 성을 구하기 위해
한 묵가인이 온다. 이 묵가인 ‘혁리’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결국 혁리는 갖은 기
지를 다해 이 성을 침략으로부터 지켜낸다.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는 묵가의 ‘겸
애’ 라는 사상과 농성전문가 혁리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토리나 묵가의 사상이 아니다. 바로 이 만화
에서 보여지는 전쟁의 모습이다.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
이 아니다.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가장 하층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군인에게 학살당하는 민간인, 군인으로 전장에 끌려가서 죽는 사람들, 겁탈당하는
여인들… 이 만화는 이러한 전쟁의 모습들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양성의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의 대의명분이나 목적에 관심이 없다. 그들의 최대 관
심사는 바로 생존이다. 그 점은 침략군인 조군의 병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남
아 내일의 햇살을 보는 것, 그것이 이들의 가장 큰 희망이다.
“우리 같은 백성들은 전쟁이 나면 언제나 맨 앞에 서지. 수많은 적을 쓰러뜨려도 결
국 공은 장군한테만 돌아가. 죽어도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 들판에 버려져 까마귀
나 들개한테 뜯기다 썩어버리는 게 고작이야. 하지만 자네들 양성 사람들은 달라. 우
리까지 장사를 치러줬네. 땅 속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게 해 준거야. 그런데 우리가 왜
자네들과 싸워야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움을 싫어한다. 목숨을 건 싸움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전쟁을 기획하는 자에게는 싸워줄 병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싸워야 할 당
위성을 부여하는데 온갖 힘을 기울인다.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 싸워라, 적은 나쁜
놈들이다, 정의를 위해 싸워라, 애국심을 가져라, …를 위해 싸워라, …를 위해 싸워
라! 타당한 것도 많겠지만, 지휘자는 타당성의 여부를 떠나 “병사가 얼마나 더 사기
진작이 되느냐”라는 결과에 관심이 있다.
몇 년전 육군사관학교에서 환단고기를 가르쳐서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사기만을 치중해 진실을 가린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예는 들기 싫지만 시위현장
의 모습을 낭만적인 무용담으로 이야기해서 후배를 끌어들이는 운동권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어쨌든 이런식으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각자
의 삶이 있고, 각자의 행복과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 그래도 전장의 병사들은 민간
인에 비해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는 확보할
수 있으니. 민간인은 맨주먹으로 총칼과 맞서야 한다. 그리고 총칼앞에 거의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유가 있다 한다면 그것은 힘이 없는 탓, 그리고 재수없이 전란
을 맞은 탓이랄까.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에 비해 그나마 행복하다 할 수 있으나, 그들 역시 비참한
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평생을 일구어 놓은,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은 거의
없어지고 막말로 맨땅에서 새로 일구어야 한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잠잘 곳이나 옷을 가린다는 건 사치이며, 인간답게 살 권리는 어디에
도 찾아볼 수 없다. 잃어버린 가족을 걱정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의 평생 꿈
은 산산이 부서지고 아무런 희망 없이 그냥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본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비참한가?
이 만화의 시점에서 2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
다. 이 전선이 그어진 땅에서. 전쟁은 로맨틱 영화의 소재로 쓰이고, 지구상의 수없이 일어나는 분쟁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이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우리의 평화는 모래 위에 지어져 있는 것과 같다. 비약적인 예로 “버튼 하나로 우리의 평화는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다.”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온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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