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짱돌
사형제도, 계획적으로 행해지는 살인행위
이수진 / 대안문화·미디어운동 모임 R.EXE
나는 생명을 보호하고 살인자를 벌하기 위해, 국가가 살인행위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사형은 그것을 유발시키는 범죄만큼이나 비인간적이다.
-칠레의 에두아르도 프레이 대통령
2천년 2월 현재 국내 사형수는 50여명이며 가장 최근의 사형집행일은 97년 12월
30일이었다. 2년간 국내에서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논쟁이나 주장이 그다지 세인들의 시선을 끌만큼 자극적이지 못한 것
이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굳이 지면을 할애하게 된 까닭은 한국정부가 사형제도를 철폐할만한 국
내외적인 조건을 갖췄음에도 왜 꽁무니를 뒤로 빼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
다.
사형제도 철폐가 대세?!
97년 12월 30일은 23명의 국내 사형수들이 모조리 사형을 당한 날이었고 이로 인해
유럽의회의 규탄을 한 몸에 받은 날이었다. 또한 유럽의회는 이후 당선된 과거 사
형 반대론자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의회, 정부등에 결의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
도 했다.
또한, 그 동안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비롯해 종교계·학계 등에서 사형제도 폐
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으면 지난해 말엔 여·야 국회의원 91명이 ‘무기징역을
법정최고형’으로 하는 ‘사형제도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15대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법안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이 가입되어 있는 ‘시민권리조약’은 사형을 금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
로도 현재 총 105개국이 사형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사형제도 철폐의 당위
사형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두가지를 지향한다고 본다.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반대와 그러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국가권력에 관한 반대가
그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는 결국 권력의 화두로 구성된 거대한 구조와 그 사회적
관계로부터 가해질 수 있는 폭력으로부터 주변에 소외된 인권을 보호하고 가치를
확장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을 듯싶다.
사형제도는 가장 무방비한 상태의 사람에게 계획적으로 행해지는 매우 극단적 형태
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야만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에 따른 좀더 구체적인 사형제도 철폐에 관한 주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형은 범죄예방의 효과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 사형제도와 범죄율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행해져 왔으나 사형
이 여타의 형벌과 비교해 특별한 억지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입증된 적은 없었
다. 49-53년간의 ‘사형제도에 관한 영국왕립위원회’는 유럽과 영연방국가들의 광
범위한 조사자료를 토대로 한 보고에서 “우리가 검토한 어떤 자료에도 사형폐지
후 살인율이 증가했다거나, 사형부활로 살인율이 감소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타
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사형은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 아니다.
국가는 죄인을 사형시킬 권리를 결코 가질 수 없다.
셋째, 사형과 종신형을 비교할 수 없다.
사형제도는 극단적으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형벌이다. 여러 고문피해
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가장 공포스러운 고문기법은 사형의 위협이라고 한다. 종신
형은 재심의 가능성이 보장되며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석방을 고려하는 나라들도
많다.
넷째, 사형은 종종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소수인종과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섯째, 사형은 오판의 위험을 방지하지 못하는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다.
93년 19월 시민권과 헌법에 관한 국회 소위원회가 미국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
하면, 72년부터 48명의 사람들이 유죄선고를 받고 사형을 대기 중 무죄석방 되었
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형은 불공정한 법의 집행을 밝혀낼 수 있는 노력을 막
아버리기 때문에, 실제로 사형을 당한 무고한 사람들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여섯째, 사형은 자의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가장 발달한 엄격한 형사사법체제하에서도 선고과정은 피고의 경제력, 인종, 종교,
대중의 사형지지도 등과 같은 요소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일곱째, 사형과 국민여론은 무관하다.
여론조사는 자칫 오도될 가능성을 항상 가진다. 또한 대중들이 언제나 전적으로 사
실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가 합리적으로 되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
여덟째, 사람의 생명은 경제적 손실로 논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홉째, 사형제도 폐지는 세계적으로 급히 확산되고 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2선택 의정
서’는 국가에게 사형제도의 폐지를 요청하고 있는데 현재 29개국이 비준하였으며
4개국에서 비준할 예정으로 있다. “유럽인권조약 제6의정서”에 유럽의 23개국이
비준하였으며, 3개국이 비준할 예정이다.
사형제도 존치론자의 주장
숱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주장의 뒤켠에는 여전히 사형제도를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되어 있다.
이들은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위해 이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폭력과 범죄로 위협받는 사회에서 사형은 필수라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똑바로 각을 잡고 앉아있는 신병의 모습, 일정한 크기의 상자에 고
기 따위를 우겨 넣다가 남는 것은 가차없이 칼로 잘라내는 모습 등과 닮아 있다.
즉 파시즘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범죄의 조건이 이러한 사회적 파시즘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들의 질서를 지켜주는
사형제도는 사회의 범죄를 묻는 무덤일 따름인가.
여기서 파시즘의 의미를 개개인의 삶과 개성을 국가전체의 존립과 이익을 위해 희
생시키는 것을 감수한다는 가장 초보적인 수준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형제도 폐지!
인간은 욕망이 없는 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사형이 법적으로 존치하는 한 사형수들은 어찌 보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하루하
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죄와 처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
을까.
‘왜 나만 이런 처벌을 받아야 되냐?’며 울분을 터뜨리거나 매우 익히 들어온 팔자
론으로 위로 삼는 이들도 있겠지.
아니, 이들 대부분은 어쩌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인권의 가치가 존중
되기보다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말살되는 사회에 길들여졌으므로…
우리 중 누군들 생체 내에 깊숙히 내재된 폭력에서 자유로우며 때로 더한 폭력주
의자이자 가해자였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형제도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야만성과 살인에 단련시킬 것이다. 그러한 억압적
인 길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형제도는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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