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대 Section3 : 한반도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면 이럴 순 없다?”

최정민 /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노동/사회/시민/학생단체 여성활동가 모임(이하 여성활동가모임)’ 회원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내가 여성임을 자각하고, 여성의 시선으로 운동을 다시 바라보고 활동하기 시작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구나”, “이렇게 느끼고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구나” 마치 대학 1학년 때 처음 운동을 시작할 무렵의 나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운동을 거쳐 사회단체로, 짧은 기간이지만 10여 년의 개인적 역사 속에서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오류들을 겪어왔는가. 내가 운동이라 벌이는 활동이 어떤 커다란 하나의 목표 속에서 다른 수많은 개인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애써 묵살해왔겠구나. 나는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범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지금부터 풀어놓고자 하는 얘기들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활동가모임이 주최한 집회에서 생긴 일이다.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만 알고 있기에는 내 상식으로 너무 기가 막힌 일이라서 이렇게 풀어놓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의 이런 식의 다툼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혹시 “예전의 나는 저런 식으로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였다.

우리는 지난 ‘컵 깨기 행사’에 이어 이번 여성의 날에 운동사회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을 다뤄보기로 하였다. 99년 연말 술자리 모임이 좋은(?) 기회가 되어 많은 곳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문제들이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며, 오히려 공론화해서 다시는 이런 사건들이 진보진영 내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행사를 기획·준비하였다. 모임을 여러 차례 가져나가면서도 준비가 미흡했던 이유는 이번 여성의 날 행사가 여러 단체에서, 여러 곳에서 개최된 덕분이었다. 그 바람에 계획해

놓은 것들이 허사가 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고 하는 와중에 준비도 미흡하고 알고 있는 몇몇 사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물론 여러 사업에 바쁜 주체들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암튼 여러 가지 논의들 속에서 우리는 집회를 민주노총에서 주관하는 여성대회 장소에서 열려고 하였다. 주로 성폭력, 성희롱 사건이 노동운동 조직 내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에서 주관하는 집회에서, 그것도 처음 개최되는 여성대회에서 우리 목소리를 낸다는 건 아주 타당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누구 허락 받고 집회하느냐, 허락 받지 않고는 유인물 배포할 수 없다!!”(보건의료노조 여성국장 김근례, 집회 날 아침 여성활동가모임 회원에게 핸드폰으로 한 말)

“민주노총에서 주최하는 여성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모성보호 문제를 다루는 뜻깊은 자리에서 여성활동가모임이 이런 식으로 제기하면 우리가 주장하려하는 중요한 이슈가 희석화된다.”(민주노총 여성국장 김진선,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여성활동가모임에 찾아와서 한 말)

“여기 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이 나오니까 일단 오늘 집회는 하지 말고 차후 다시 얘기하자.”(사무노련 아무개씨-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죄송합니다,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여성활동가모임에 찾아와서 한 말)

사실 이렇게 운동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적 사건들을 드러내고 투쟁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이런 집회에는 익숙치가 않았나 보다. 허락 받아야만 집회를 할 수 있고, 검토를 받아야만 유인물을 배포할 수 있다는 말은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싶다.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나온 말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항상 성희롱, 성폭력 등의 문제는 여성 개인의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노조와 같은 노동운동 조직에서 두드러지는데, 임투 기간이면 임투에 집중할 시기에 사사로운 문제로 걸고넘어진다고 하고 선거 기간이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무슨 수단쯤으로 취급되고 만다. 노조 차원의 투쟁(임투나 정치투, 비정규직 문제, 모성보호 문제 등등)은 중요하고 거대한 운동, 선차적 운동으로 취급되며 성폭력 사건은 사사로운 여성 개인의 문제, 차후에 처리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폄하된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고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계기들은 오직 “이것이다”라고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이 선차적이고 어떤 것은 후차적이라는 단선적인 사고는 다른 폭력을 동반하거나 불러올 수도 있다. 권력(운동판에서도 명백히 권력관계는 작동되고 있다. 지도부는 조합원들과의 관계에서,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현 시기 권력적이다)을 잡은 측에서 “이것은 폭력이다”, “저것은 폭력이 아니다. 혹은 후차적이다”라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미 그 속에 차별적 개념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집회의 이슈가 희석화되고 만다”는 민노총 여성국장님의 발언은 위와 같은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민노총의 기조에 집중하고 이후 이 문제를 다시 다루자고 하는 사무노련 어느 분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이 사건은 잘 해결되었고 가해자도 사퇴한 상황이다. 집회는 물론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것을 보건의료 문제로 공개해서 ‘각성하라’ 식의 구호를 외쳐서는 안된다.”(보건의료노조 여성국장 김근례,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여성활동가모임에 찾아와서 한 말)

“이런 행사를 하기 위해선 최소한 당사자 측과 합의를 했어야 한다. 그런 절차를 막 무시하고 이렇게 단체행동을 해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절차 없이 우리 조합원들이 다 보게 집회를 하는 의도를 우리는 성폭행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의 지도력을 와해시키려고 하는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 부 본부장, 집회 막 시작하기 전 피켓팅 하고 있는데 찾아와서 한 말)

여성에 대한 이런 억압적 상황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사건을 무조건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여성국장님은 노조 내부에서 잘 처리되고 있다고 얘길 하셨는데, 우리는 조합원 모두에게 공개되지 않고 상층부에서만 논의하여 일신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퇴하는 것처럼 처리되는 것을 도저히 잘(?) 처리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조합원들도 자신들이 직접 선거에서 뽑은 임원이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층부 논의→대의원 대회에서 논의→일정정도 처리가 된 이후에 조합원들에게 알리든가 아니면 관두든가’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만일 성폭행을 안 했다고 한다면 당사자 측과 사전에 이런저런 말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은 노조 스스로가 가해자를 사퇴시켰듯이 명백한 것인데 더 이상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의논하고 조절해서 투쟁을 한다는 말인가. “삽입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성폭행은 성폭행이냐”(딱히 누가 한 말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데 최근 벌어진 많은 성폭행 사건들을

성폭행 사건이라 규정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 대부분이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강간 사건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통계를 봐도 언어폭력이나 성희롱 등의 형태로 여성에 대한 억압은 구체화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피해자 여성들이 이러한 행위들 모두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는 식의 사고는 이러한 관행들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처럼 습관화된 절차를 밟지 않고 바로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노조지도부를 와해시키려고 하는 반운동적인 작태가 되는 것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상처가 덧나지 않고 치유될 수 있듯이 누가 봐도 명백히 잘못된 것은 고치고 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외치는데 그것이 노조지도부의 지도력을 와해시키려 하는 행동이라니 마치 한나라당의 ‘음모론’과도 같은 구태의연한 발상이 아닌가.

“당신들이 여성운동을 아느냐?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더 입히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대체 사건 경위를 제대로 알고나 이런 집회를 하는 거냐. 알고 있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얘기를 들었나?”(대학노련 여성위원장 김은주,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여성활동가모임에 찾아와서 한 말)

다시 되묻고 싶다.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인지를. 무조건 덮어두고 쉬쉬하고 조직 상층부에서 논의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마무리 되는 것이 피해자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길인지. 마치 피해자의 사주로 이런 집회를 벌인 것이라 얘기하길 바라는 것처럼 어떻게 이 사건을 알게 되었는지를 거듭 거듭 되묻는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어떤 루트로 이 사건을 들었는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엄연히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이런 식의 사건 처리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

하면서 말씀하셨던 ‘피해자 보호’에도 하등의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피해자가 상처받으면 책임지겠냐”고.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시키고 조합원들 귀에 들어갈까 쉬쉬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고, 이미 다 알려진 일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명확하게 처리하라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가해하는 것이란 독단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이 여성운동을 아느냐?” 이런 식의 말은 위의 모든 민주노총 관계자들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말처럼 “당신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는 노동운동 조직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많이

접할 기회는 없지만 예전 어떤 뒷풀이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21세기나 진보라는 말이 들어간 단체는 믿지 못한다. 운동을 하려면 저 기층의 노조 조직에서 뼈빠지게 활동하면서 노조를 강화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평화를 얘기한다면서 왜 노동운동에는 신경쓰지 않느냐?” 민주노총의 한 간부로부터 들은 말이다. 내가 곡해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단지 노동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영역의 운동을 폄하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우기가 힘들다. “당신들이 여성운동을 아느냐?”, “너희들이 노동운동 조직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등의 말은 노동운동 혹은 노조운동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며 기준이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보와 운동이라는 길에서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이 운동을 그만둘 때 내세우는 이유에 덧붙여 위와 같은 여성 억압적인 상황에 몰려 운동을 그만두기도 한다. 이 때 가해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당시 잠깐 은둔생활을 하다가 다시 ‘짠!’하고 나타나 열심히 활동한다. 그리고 다시 운동사회에서 활동 잘 하는 사람, 헌신적인 사람, 멋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받는다. 이 과정 속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 번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에게 폭력을 가한 장본인이지만 진보 운동 속에서는 헌신

적 활동가로 평가받는 모습을 볼 때 피해자는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가해자가 운동(과연 그 운동을 진보 운동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망설여진다) 열심히 하는 운동가이기에 전체 대의를 위해서 과연 계속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운동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가해자를 보며 열 받고, 어쩌다 얼굴만 마주쳐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은 가해자의 몫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번 집회를 겪으면서 내가 느낀 건 이런거다. “우리 운동판이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여성임을 여성 스스로가 자각하고 다시 바라보는 것이 무지 중요하겠구나”, “그런데 그것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시시한 폭력(?) 내지는 폭력으로 규정받지도 못한 것(?)들을 더욱 발본화하여 문제화할 것인가”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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