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극단적인 만큼, 방향을 잡기 위해 역사를 돌아보려는 욕구는 이해할 만하다. 패권 교체, 파시즘, 핵무기 경쟁, 냉전 2.0, 중진국 함정, 1990년대 일본 등이 흔히 소환된다.

각각의 경우 동기는 이해할 수 있고 논의도 종종 생산적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런 역사적 비유는 사람을 안심시키며, 바로 그만큼 상황을 오도하기도 한다.

· 파시즘은 결국 패배한 정치세력이었다.

· 지금이 과도기라면 언젠가는 새로운 질서가 도래할 것이다.

· 핵무기 경쟁은 관리됐고, ‘서방은 냉전에서 승리했다’.

· 중진국 함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중국의 성장은 결국 끝날 것이고, 세계 위계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다시 자리 잡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비유들은 모두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출발해 역사에 기대고, 결국 하나의 서사에 도달한다. 그 결론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안도감을 주는 결론이다. 오히려 그 결론을 암묵적으로 남겨두기 때문에 위안 효과가 더 커진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우리가 골라 쓰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악몽 같은 결말로 이어졌다면, 과연 지금처럼 가볍게 소환할 수 있었을까?

이 현기증 나는 전환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미묘하게 초점을 바꾼다. 새로운 파시즘의 위협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홀로코스트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그만큼 말하지 않는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덜 말한다.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Oppenheimer)》에서도 이 두 도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나쁜 가능성은 더더욱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사람들을 결집하기 위한 외침으로 위안을 주는 이야기가 무슨 문제인가? 실제로 이길 수도 있는 싸움에 동맹을 불러 모으는 것이 왜 잘못인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명백한 위험도 있다. 우리는 위험을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새로움, 즉 역사적으로 새로운 성격을 과소평가한다.

우리가 놓치는 것은 이것이 과거의 재연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프랜차이즈의 최신작이 아닐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각본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혼합물 속에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은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니발 렉터가 걸어 들어오는 식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영화 속에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내가 최근 내놓은 주장은 지난 금요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글이다. 나는 현재의 AI 경쟁이 흔히들 말하듯 맨해튼 프로젝트의 재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 아닌가? 정치경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를 맨해튼 프로젝트와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도 갈라놓는 것은 정치경제다. …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신의 영혼과 씨름하는 금욕적인 핵무기 개발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지금의 세계는 그보다 더 어둡고 동시에 더 세속적이다. 오늘날 세계를 위협하는 기술은 조 단위 자산가들의 탐욕, 정크본드, 임시방편으로 짜 맞춘 금융공학이 떠받치고 있다.

최근 한 동료가 트위터에서 지적했듯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대폭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처: Esteban Actis

내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글은 오래 이어온 일련의 논의에서 가장 최근 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출발점은 ‘복합위기(polycrisis)’와 ‘신자유주의 질서 붕괴 증후군’이었고, 이후 다음과 같은 논의로 이어졌다.

폭력과 ‘초과행위능력(hyper-agency)’.

‘마러라고 스톡홀름 증후군(Mar-a-Lago Stockholm syndrome)’.

마가(MAGA)와 AI가 겹쳐 나타난 ‘악성의 동시 발생(malign coincidence)’.

‘트럼프식 미래주의(Trumpite futurism)’, 혹은 머스크의 우주사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Alien v. Predator)’.

지금 우리는 어떤 영화 속에 있는가?

영화에 비유하자면, 적어도 AI에 관한 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고든 “탐욕은 선이다” 게코(Gordon “Greed-is-Good” Gekko)를 섞고, 거기에 《빅 쇼트》를 조금 얹은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만약 이렇게 세계가 끝난다면, 폭발과 함께 끝나는 것도 아니고 신음 소리와 함께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기술 전문용어와 캘리포니아식 라이프스타일, 금융공학이 뒤엉킨 소용돌이 속에서 끝날 것이다.

[출처] Chartbook 477 Against historic normalization: Why AI is not the Manhattan project and why we must challenge ourselves to think the radically new.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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