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대 Section3 : 문화·미디어
◆ 지난 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편집자의 실수로 지난 호 말미에 ‘이어지는 글’이란 언급이 없었습니다. 마치 쓰다만 글 같은 인상을 준 점 필자와 독자들께 사과 드립니다.
네트의 ‘파워 엘리트’ (2)
이광석 / 텍사스주립대학 신문방송학 석사과정
‘역사의 종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까지의 지배계급의 권력이동을 통해 보자면, 우파 이데올로기인 후쿠야마(F. Hukuyama)가 지리하게 언급한 ‘역사의 종말’과 같은 새로운 자본주의 역사의 시작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있다면 자본주의의 계급적 모순과 불평등의 재생산 지형의 연장과 그 변형만 있을 뿐이다. 물론 네트가 마련한 풍부한 기술적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긴 하다. 혹자는 네트가 미래의 새로운 천년왕국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실지 “대중에게 모든 권력을!”이란 슬로건의 밑바닥에는 상품화 논리가 각인되어 있다. 최저 균등 이용 요금에서 이용당 요금지불 체계로, 정보의 생산에서 소비로, 정보 추구보다는 오락과 쇼핑으로의 전환은 한마디로 인터넷의 상업화를 지칭한다. 인터넷이 더 나은 것, 즉 정보초고속도로로 바뀔 수 있다는 가상계급들의 비전은 구계획 경제의 국가 프로젝트에 비견할만한 바다. 아니 규모면에서 보면 그 이상이다. 세계경제의 종주국인 미국 행정부에서부터 밀어붙이는 사업 내용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의 비전은 네트의 본성을 글로벌 기업의 이윤 동기하에 구획화하려는 음모에 가깝다. 네트의 자생을 가로막는 가상계급의 음습한 기도는 인터넷 모델을 역회전하여 새로운 자본 모델로 바꾸려는데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정치적 근원에서 새로운 계급은 사회적 원칙이 결여된 자유지상주의의 가치관, 정부와 하이테크 기업의 신우익적 행동 방식이 뒤섞여 있다. 새로운 엘리트들이 간간이 드러내는 자유주의적 속성조차 대체로 우파적 경제 논리에 의하여 압도당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기존 보수 우익체제의 정치적 사고에 그 끈을 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민주적 담화에 역행하여 한층 새로워진 권위주의를 구상하고, 테크노토피아에 반하는 모든 반대를 억압하며, 의회정치를 지적 재산권의 전쟁터로 이끈다. 경제적 정의에 역행하여 약탈적 자본
주의의 재부활과, 고용조정에 의한 만성적 실업상태, 사회복지예산 축소 등 신자유주의적이고 기술 합리적인 결합을 시도한다. 이들은 경제적 지형에서 보자면, 철저하게 글로벌 사업의 지배적 세력이자 독점적 세력이다. 이는 자본의 내적 (재)구조화 과정에 따른 구조개편의 경향성과, 신계급 중심으로의 형식적 계급이동에 다름 아니다. 즉 “20세기 하드웨어를 통제하는 자가 21세기 문화의 소프트웨어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고전경제학의 역사와 정치를 초월하고 ‘종말’시키는 자들이 아니라 온존하게 계승하는 부르주아 형님들의
후계자들이다.
신계급의 ‘위상학적 지형 그리기’를 제안하며
이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조건이 현실의 지배적 지형도를 확보하는 것이라 볼 때, 새로운 권력의 출처와 구성, 성격, 방향 등을 분석하는 일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파워 엘리트들의 성격 변화와 그 변화의 진원지, 파워 엘리트를 구성하는 실세들과 그들간, 그들과 구계급간의 관계를 계보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이테크 정보기술이 주는 무한한 가치만큼이나 이들 계급 내부의 지형도 정확히 결정내리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권력의 확장과 지배에 직면하여 새로운 저항의
방식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권력지형에 대한 밑그림이라도 그려야하는 것이 상책이다. 분명히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는데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들의 연합세력 내지 이데올로기들과 잡다한 지적 돌팔이들이 기생 혹은 연합할 것이란 사실이다. 이 모든 전선을 구체적 일상에다 끌어오는 작업은, 현실 권력지형을 추상적으로 그려봄으로써 저항의 지점들을 확보하기에 중요하다. 일종의 가상계급의 ‘위상학적 지형 그리기’ (topological mapping)가 필요한 것이다. 이 작업의 전략·전술적 의의는, 우선 우파적 정보 담론을 상시적으로 구체적 현실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네트를 추상성의 나락으로 빠뜨리지 않으면서, 물리적 현실 속에서 좌표점을 찾을 수 있는 작업이다. 둘째, 새로운 지배계급의 계보 그 자체를 추척함으로써 계급간 모순의 지점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새로운 저항과 연대의 전선 형성과 새로운 저항 방식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각각의 저항 단위들이 “이젠 그만!”의 즉자적 울림들을 합일된 전자적 파장으로 전환함으로써, 여기저기 권력의 ‘속도기계’에 속도 지체의 힘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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