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노동자여, 장벽을 넘어서라!

「Z넷(ZNet)」 2/24 패트릭 본드

각개격파는 압력에 처한 지배 엘리트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활용하는 제일의 수단이다. 그리하여 시애틀 시위대와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 동일한 정신 아래 싸우던 국제적 운동은 작년 11월 30일 세계 무대에 등장한 이래 자신들이 현실적인 분열과 조작된 분열 모두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든 주류 논평자들은 현재 이른바 보호주의적 입장의 프랑스 농민이나 나약한 미국 노동조합원을 한편으로 하고, 수출 곡물 생산에서 가로막힌 극빈층 농민이나 노동조합 결성 금지, 안전 및 보건 법률의 부재, 아동노동과의 경쟁, 독성 환경 등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노동자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부분적으로는 현실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신화적인 분열에 관해 떠들어대고 있다. 간악한 의도를 지닌 이러한 희화화된 대립은 시애틀 이후의 세계질서 재구축에 관한 대중적 논쟁을 혼란스러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가장 교란적인 효과를 낳은 것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통해 워싱턴D.C.의 소비자와 환경운동가 노동지도자들을 혼란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반격이 없었다면 이들은 작년 11월에 국제주의를 향한 의미심장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을 것이다. 억압받는 나라에 대해 억압하는 나라의 힘을 강화시킬 경우(특히 이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동의와 요청 없이) 국제적 연대가 침

해된다는 점을 제1의 원칙으로 받아들인다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이나 버마(이들에게 있어 대중적 민주주의 운동이 요구한 제재는 억압자들에 대한 전략적 공격으로 번역된다)에 대한 보이코트를 지지하기는 쉽지만 도덕을 설교하는 빌 클린턴과 그와 연합한 노동귀족들(이들의 교역 이해는 제국주의적이거나 기껏해야 보호주의적인 것이다)을 참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류의 “장벽 이슈”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초월하는 것은 또한 진실의 열매를 간파하고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급진론자들은 NGO, 노동조합, 환경그룹 등의 유순한 운동 관료들에게 “회의석상의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다국적기업과 언론, 학계, WTO와 이에 동조하는 국가 및 기관들의 자유무역 이데올로그와 관료들에 맞서기 위해 이에 걸맞는 유력한 전략을 채택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충돌은 작년 말 남아공에서도 똑같이 등장하였다. 시애틀의 노동자 행진을 컨벤션센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노력하면서 WTO를 “해체”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계속적으로 언급한 스위니-호파와 끔찍하게도 동일한 모습을 보이면서 남아공노조회의(COSATU; 이하 코사투)의 일부 지도자들 또한 거대 세계 정부와 초국적기업, 소수 노조 지도부 사이의 사회적 협약이라는 유토피아를 지지하는 “코포라티즘”으로 가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인데, 남아공의 최근 역사가 작업장 차원의 활기찬 시위를 보여주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들의 이해가 최하층에 있는 이들의 (성평등과 환경보호를 비롯한)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합의된 프로그램에 있는 듯이 보여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남아공은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나라이며 코사투는 방글라데시, 중국 등의 값싼 노동력 소재지로 일자리

가 도피하는 것에 관한 우려를 계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코사투의 목표는 AFL-CIO와 마찬가지로 마킬라

도라(수출촉진지역)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투쟁을 지지함으로써 공장이전과 외주의 속도를 저하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회, 노동, 관리, 환경 조항(“사회적 조항”이라 약칭되

는) 등을 무역협정에 포함시키기 위한 운동은 90년대 내내 극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프

리카의 수많은 진보적 사회운동, NGO, 교회, 여성그룹, 개발기구, 기술 두뇌집단 및 지식인들은 WTO와 세

계은행, IMF 같은 국제기관과 북반구 정부들이 남반구와의 무역, 투자, 금융 관계가 이미 너무 불평등하다

고 주장하면서 부과한 조건들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남부아프리카노동조합협의회(SATUCC, 특히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도 참석하였다) 핵심간

부들과 이 지역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참여한 1999년 요하네스버그 워크샵(영국 옥스팜(Oxfam; 옥스퍼드 빈

민구제위원회)의 진보적 간부들이 주최하였다) 이후 보다 분명해졌다. 이 워크샵에서 발표한 “시애틀 각료

회의에 관한 성명”은 “사회적 조항의 삽입을 통해 WTO의 이슈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 활

동가들이 볼 때, WTO의 정통성과 권한을 확대함으로써 권력관계에 가해질 수 있는 손상이 사회적 조항의

잠재적 가치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사투 사무총장인 즈벨린지마 바비(그는 여기 참석하지 않았다)는 즉시 (자신이 주재하는) 남부

아프리카노조협의회 명의를 워크샵 성명에서 빼버렸다. 오히려 며칠 후 시애틀에서 바비는 남아공 정부와

거대기업측에 가담했으며, 국제 무역 규정의 보호주의적 틀을 완화할 것과 사회적 조항을 삽입시킬 것을

북반구에 요구하였다. 남아공의 이 공동 대표단은 컨벤션센터 논의에 참여했지만 샬린 바솁스키와 마찬가

지로 빈손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조항 전략은 신뢰를 잃어버렸다. 장벽 이

슈와 관련된 이 전략의 성격뿐만 아니라 AFL-CIO가 주도하는 국제자유노련(ICFTU)의 온건 무역전략이 실

질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었다(클린턴이 중재한 노동조합과 기업 사이의 섬유부문 협정이 매번 위반되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나이키나 캐시 리 기포즈 사(社)가 자사의 생산 관행을 조금이라

도 변경하는 유일한 길은 국제적 연대와 전투적 직접행동, 그외 여러 형태의 대중적 의식화를 통해서만이

다).

사회적 조항이라는 딜레마를 우회하거나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보다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운동

전략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 대 노동자 같은 식의 정서가 아니라 국제적 무역 자유화의 기저에 놓인 광

범위한 기업 권력 관계에 기반한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오직 (남아공계 초국적기업을 비롯한) 특정한

기업이나 지구국가(global-state) 타겟이 체제의 통일적 상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이

관철될 경우, 우리 앞에 놓인 유일한 논리적 길은 WTO 뉴라운드에 맞선, 그리고 기업의 이해에 일차적으

로 복무하는 WTO의 존재 자체에 맞선 노동자 통일전선뿐이다(남아공의 많은 진보적 사회운동/시민운동은

이러한 “폐지론” 입장을 취해왔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IMF와 세계은행을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조항을 통한) 지난 20년간의 난해한 노력이 없이도 4월 16일 워싱턴 시위를 준비하

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논증할 것이다). 사회적 조항은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전세계 노동자 및 생태-사회 운동의 이해는 분명 자본의 이

해에만 복무하는 지구 국가의 건설 과정 자체를 중단시키고 역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패트릭 본드는 요하네스버그의 위츠대학 교수이며 남아공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사회운동, 노동운동, 환

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안정보발전센터(AIDC, http://aidc.org.z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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