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로 본 세상

너무나 어려운… 싸움…

최정민 /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1달 여를 끌었던 지리하고 어려웠던 싸움이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책위 활동을 1달 동안 진행하면서, 남은 거라곤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지친 몸과 마음뿐이다. “다시는 이런 문제 관여 안 한다.”, “난 앞으로 내가 피해자가 되어도 절대 공개 안 한다. 그냥 가해자 찾아가서 밟아버릴 거다.” 이런 말들을 1달 내내 달고 다녔다. 대책위에서 개설한 게시판에 올라온 우리를 비방하는 말들이나 오다가다 사람들에게 들은 말들을 들으면서 “학생운동, 평화인권연대 10년의 운동 역사 속에서 함께 했던 모든 동지들이 다 동지들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여성 운동하는 한 친구는 “이런 일이 터지고 나면 주위에 아군보다 적군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고독이라는 거, 혼자라는 거… 정말 이렇게 슬플 수가 있나… 한편으로 “피해자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정말 어렵게 공개를 결심하고 전면에 나섰는데…” 생각이 들자 정말로 우울해졌다. 공개할 것을 설득한 내가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심정이 들었다. 미안하다. 정말… 우리의 이 어렵고 지리한 싸움도 기존 다른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보아왔던 상처와 멍 투성이의 결과만을 남긴 채 이제 좀 더 발 전된 어떤 형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의 구체적인 사건 자체에 대한 처리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어떻게 조직 내에서 성폭력 사건들을 근절시킬 수 있을까’하는 문제제기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평화인권연대에서 벌써 3명의 활동가가 이러한 성폭력 사건으로 징계 처리 중이 고 그 이전부터 이러한 사건들은 계속되어 왔었다. 물론 드러나지 않은 사건도 많고 드러났으나 어떤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도 있고 공개되어 처리된 사건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건만 꼽아도 10손가락 가지고 부족할 지경이니 좀 잠잠하다 싶으면 바로 들려오는 사건이 바로 이런 성폭력 사건이랄 수 있다. 지구가 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고 하는데 완전히 그 꼴이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표피적으로는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몇 마디 얘기를 던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한다.”, “무슨무슨 대책을 세워 어떻게 해보자.” 등등의. 하지만 정작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통한 성찰적 분위기는 전무했고 “빨리빨리 사건을 처리하자.”, “저런 짓을 하다니. 다시는 가해자를 보지 않겠다.” 등등의 반응들을 보임으로써 가해자 처벌을 넘어선 성폭력 사건 근절을 위한 어떠한 계획도 부재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고 지금도 어딘 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종합적인 대책의 수립이 시급하다. “그 사건에서 여자 쪽의 잘못은 없었던 것인가?” “왕따시키려면 그렇다고 쉽게 얘기하지 뭐하러 어렵게 그 러냐. 솔직히 반성하고 운동 계속 하겠다는 사람에게 이런 처벌은 심한 것 아니냐?”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고 남성은 무조건 가해자라는 생각 은 또 다른 소수의 (남성)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예전에 보고 들었던 여러 사건에서 얼마나 가해 남성들이 심각하게 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아왔다. 가해자 대부분이 ‘한운동 한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것들(?)을 몰라서 그랬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실지로 이론상으로가 아니라 얼마나 몸으로 느끼고 내면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위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가해자들의 자세는 한결같이 “여성 커리를 정해줬으면 좋겠다. 읽고 발제를 하면서 공부하면서 고쳐나갔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하였다. 정말 이론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의심스럽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가해 남성들은 여성이 저항하다 지쳐 가만히 있으면 그것이 “해도 좋다. 괜찮다.”는 의사표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한 가해자가 술 취해 모르고 잠이 든 피해자를 보고 “왜 가만히 있었냐. 가만히 있었던 행위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괜찮냐.” 등의 얘기를 하였고, 또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가해자)은 공식적인 자리(대책위와 만나는 자리)에서는 사건 전부를 인정하는 것처럼 얘기했으면서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나는 억울하다. 내가 완력으로 억지로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여자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수 차례 얘기하기도 하였다. 한 피해여성은 “성추행 가해자는 밤에 나의 몸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해놓고 다음날 버젓이 인사도 받고 얘기도 주고받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너무나 가슴이 뛰어 어제 밤의 일을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어렵게 얘기를 꺼내자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너도 어젯밤에 좋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했다.”고 얘기했 다.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동의 없이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악영향들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벌어진 민주노총 각종 사업장과 연맹에서의 성폭력 사건에서 “어떻게 여자가 술 취해서 남자들을 따라 2차, 3차를 갈 수 있느냐. 나 같으면 안 그런다.” 혹은 “이번 사건은 피해자, 가해자가 모두 공동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다.”라는 시선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여성에게 항상 여성들은 어떤 만일의 사태에 대해 대비해야 하고 항상 저항의식을 투철하게 지니고 있어야 하며 술 취해선 절대 안되고 설사 술을 마신다 하더라도 필름이 끊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입시키고 그것을 강제한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 스스로가 이러한 굴레에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드러내기를 꺼려하거나 좀 더 완강하게 저항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사고들이 너무나도 넓게 퍼져 있어서 어차피 드러내 봤자 손해보고 욕먹는 것은 나니까 ‘그냥 한 번 똥 밟은 셈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번 사건 역시(다른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조직 내 여성의 주변적 위치와 남성의 권력, 후배에 대한 선배의 권력관계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건이었다. 95년에서 98년에 걸쳐 수년 동안 이런 성폭력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선배’ 남성 운동권들에 의해서 ‘후배’ 여성운동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고 어떤 형태로든 그 사건이 알려졌을 땐 드러내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 선에서 조용히 처리되기를 종용 당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한 여성은 성폭 력 사건이 직접적으로 운동에 염증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놓았으며 더욱 큰 상처가 되었던 것은 자신에게 ‘가해자를 직접 만나서 조용히 처리할 것을 요구했던(운동의 대의, 순수함 등을 운운하며) 당시 분위기, 여성의 문제를 사사롭고 개인적인 문제제기로 만드는 투쟁 중심의 운동권 문화, 집회 사수대 분위기의 운동판의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등’이었다고 얘기하였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러한 성폭력 사건들이 종종 로맨틱한 수사(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정말 나도 모르게… 등등)로 포장되어져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너무 좋아했다는 데야 뭐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성폭력 행위 자체를 정당화시켜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서 피해자 개인의 인권은 온데 간데 없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논리들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피해자는 보통 가해자가 자신을 진짜 좋 아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또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 보통이어서 이 사건이 드러나고 처리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여성 피해자를 만들었고 직접 피해를 당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수원대 학생운동의 특수한 상황(산골에 처박힌 학교 위치 때문에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함께 사는 점)은 분명 성폭력을 조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나고 많은 빈도수의 성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던 분위기는 분명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뒷받침되어서(?) 가능했던 것이기는 하나 또한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인식하고 말 문제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어디 이러한 사건이 그 빈도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이랴. 여성을 남성에게 부속된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누구의 말처럼 ‘낮에는 동지로, 밤에는 여자로’ 남성의 성적 욕망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시켜 바라보고 있는 왜곡된 시선을 고치는 것은 진정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일진데… 어떤 친구가 우리 대책위 게시판에 ‘해결사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며 대책위 구성원들에 대한 염려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한 여성 운동을 하는 친구는 주로 상담자의 역할을 잘 하는 여성들이 실지로 자신에게 이러한 성폭력 문제가 닥쳐오면 드러내고 해결하기를 꺼려한다고 하면서 아마도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너무 뻔히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 말을 최근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그냥 고개만 푹 숙이고 아무 말 안 하면서 징계방침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가해자도 있고 다 싫고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지는 가해자도 있다. 물론 발뺌하는 가해자도 많이 있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다들 불구경 하듯이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충분히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보면서 성찰적 자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가해자를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느끼는 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지하게 외롭다는 것이다. 그냥 대책위에서 징계방침을 내리고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가끔 들여다 봐주면 되는 것이 아닌데 그냥 쳐다보는 것 이외에 누구도 우리를 호위해주지 못하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아쉽다. 상처를 받고 정작 힘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것은 직접적인 성폭력 피해자들과 우리 간접피해자들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가야한다는 것이 진짜진짜 억울하다.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문제로 단순화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권력관계, 왜곡된 여성관 등을 철폐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보다 낳은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기존 여타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처벌과 처리의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혹시 다음에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해서 피해자를 어떻게 또 볼 수 있을지… 수원대 출신이란 이유로 나는 진정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구나… 너무나도 어려운 싸움을 그들은 벌여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특히 피해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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