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대 Section2 : 국제
지역 분쟁과 평화운동
“이 세상에서 이념적 분할이 종식되었다고 해서 바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북부제국’이라는 대제국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 제국은 절대적으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적 지식을 통제한다.”
페르난도 콜로르 드 멜로, 브라질 대통령, 1991년 7월
“우리가 할 일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는 것이다.”
중남미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인디언 원주민들 가운데서 요원을 모집하기 위한 CIA의 선전문구.
20세기를 발칸의 화염과 동티모르의 학살로 마감한 세계는 21세기가 과연 평화의 세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평화로운 희망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하는 민중들의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과 지역 분쟁을 통해 특별한 이해와 이윤을 획득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또 다른 노력은 그 희망을 매우 불투명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미 의회 부결, 많은 반대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 구상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음모 등 마치 새로운 냉전시대를 준비하는 듯 싸늘한 군사적 긴장감이 전세계를 휘감고 있다. 이것은 언제든 지역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토대가 준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괴와 복구로 반복되어지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들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는 전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모든 민중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지만 그 길은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악순환의 뒷배경에서 강대국들의 이해와 요구를, 이윤에 눈이 먼 전쟁상인들의 음흉한 그림자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서 우리는 어떤 ‘필살기’를 구사할 수 있을까?
누군가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냉전의 종식이 군사적 긴장의 완화와 전세계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일부 순진한 학자들의 예언은 사이비들의 말장난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산재한 무기들의 숫자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세계는 곳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벌어지고 있는 무력 분쟁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냉전 시에는 높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였지만, 탈냉전 시에는 낮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도 낮은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역 분쟁들을 누구도 한 마디로 ‘이것이 문제다’라고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인종문제(남아프리카·모잠비크·미국의 흑백갈등·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의 원주민과 화교 사이의 갈등 등), 민족문제(보스니아·르완다의 한 국가 안에서의 이민족간의 갈등, 쿠르드족·아르메니아·키프로스의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려 할 때 발생되는 문제 등), 종교문제(인도와 파키스탄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이란과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교도 사이의 싸움, 레바논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전쟁 등) 등 많은 문제들이 뒤얽혀서 발생되는 것이 지역분쟁의 특징이다.
이렇듯 표면적인(!) 많은 이유들로 인해서 발생되는 지역 분쟁들의 뒤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게 마련이다. 실지로 지난 코소보 사태에서도 서방의 강대국들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를 분할하기 위해 수십 년을 소모했고, 미국과 독일은 코소보에서 위기를 도발하기 위해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있었다. 발칸반도의 나라들을 서로 싸우도록 하기 위해 제국주의 세력은 발칸 각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했던 것이다. 폭력적 제국주의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그것을 통해 적대적 기억들을 재생시켜내면서 분쟁을 도발하고 분쟁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사실 제국주의라는 개념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인종간의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고 인종문제도 거의 없었다. 인종문제의 발생은 제국주의가 등장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하게되는데 백인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인종 차별 및 인종간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지난 해 3월 나토의 50주년 기념식에 초대된 40개의 외부집단이 모두 무기제조업자들이었고 그들이 한결같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를 목소리 높여 외쳤다는 사실에서 지역 분쟁을 둘러싼 초국적 기업들과 제국주의의 음모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은 선진국 안에서의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고 제3세계를 더욱 압박하며 방어 능력이 없는 국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쉬워졌다. 냉전의 해체와 시기를 정확히 같이 하고 있는 파나마와 이라크 침공에서 미
국은 냉전시기 주적이었던 소련의 위협 이외의 다른 이유들을 들먹이며 이들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이것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어떠한 이유에서건 새로운 적국이 필요했다는 상상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분쟁의 조장을 통한 파괴와 그것의 복구에는 어김없이 경제적 이익이 관계되어 있음은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냉전 시기를 미국과 소련의 진영논리에서 조금만 비껴나서 살펴본다면 그 시기 역시도 중심적인 모순의 전선은 북부와 남부간의 갈등이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탈냉전에서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는데 ‘새로운 구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깡패국가’의 출현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이었던 것이고 과도한 ‘깡패국가’로부터의 자유진영에 대한 위협, 그리고 분쟁의 조장과 ‘인도주의적’ 명분에 의한 개입은 미국의 헤게모니 구조를 공고화하고 전쟁상인들의 배를 채워주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인도적 개입의 문제
유엔헌장에는 국가간의 주권평등과 국내문제에 대한 제3자의 불간섭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 이외에도 국자주권과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제3자 개입에 대해서 이를 금기시하는 조약이나 선언들은 많이 있다. 지난 코소보 사태 때 나토군의 개입은 이런 측면에서 분명히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무시한 절차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토와 미국은 “밀로세비치의 독재체제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습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었다. 미디어의 일방적인 나
토와 미국 편들기로 세계적인 여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나토와 미국의 개입을 찬성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공습을 통해 밀로세비치의 입지를 좁혀주기는커녕 세르비아 인들은 오히려 미국과 나토를 더욱 미워하고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비난하였다.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오히려 강화되었고 나토의 공습에 대항하여 더욱 많은 코소보 알바니아 인들이 살해당했다.
강대국들은 항상 뻔한 합리화의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인도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특정국가에 개입했다. 코소보에서의 미국의 개입은 겉으론 ‘인도주의적’ 개입의 명목을 내세웠지만 기실 그 속내는 발칸에서의 나토의 입지 강화를 통한 서유럽에서 미국의 군사적 주도권을 틀어쥐고자 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구유고 지역에서 분쟁의 핵심지역인 보스니아는 회피한 채 안전이 보장되는 마케도니아 국경에 예방전개군의 일원으로만 참여했으며 또한 미국은 후투족과 투
치족간의 대량학살이 벌어졌던 르완다를 외면했고 아프리카 최대 내전 격전지인 앙골라를 외면했다. 그러나 미국은 르완다나 앙골라의 경우와는 반대로 아이티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91년 9월 아리스티드(Aristide) 민선 대통령이 군부쿠데타에 의해 축출되자, 미국은 즉각 이를 비난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한다는 명분 하에 아이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다국적군은 아이티에 무혈 입성했으며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권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개입에는 결국 미국으로 유입되는 아이티의 난민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으며 든든한 아군을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지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방안들
다자간 안보체제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은 안보를 군사력에 의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정치, 경제,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바라보는 총체적 안보, 즉 ‘인간안보’ 개념을 확립하는 일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안보위협의 감소를 투명성·개방성·신뢰구축을 통해 이루려는 협력안보를 위한 다자간 안보체제의 구축은 절실한 것이다. 필리핀 대학 월든 벨로 교수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아시아 지역의 성숙과 자주적인 협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아시아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미국의 일방주의와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의해 좌절된 AFR(Asia Regional Forum)를 언급하면서 ‘ARF 강화를 중심으로 하는 범 아시아 차원의 다자간 안보체제 수립’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다자간 안보체제가 얼마나 그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창설자의 수중에 놓여있으며 창설자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이용되는 국가의 종속물’일 수밖에 없는 데다가 다자간 안보체제의 대표적인 기구인 유럽의 OSCE가 정작 코소보 문제와 같은 유럽의 분쟁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고 미국과 나토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비핵지대 건설
일본과 미국의 일-미 신가이드라인 법제화와 TMD 구축이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고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 문제와 미국의 핵우산 정책 하에서 비핵지대 건설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인 히로 우메바야시는 이러한 비핵 지대 건설은 세계적인 비핵지대 건설의 효과를 고려하고 있지만 지역적인 인간 중심의 안보시스템의 증진을 위한 방안이라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아직까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남·북·일 3국의 연대를 통한 핵억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헤이그 평화회의에서도 남·북·일 3국이 모여 비핵지대 건설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아시아·태평양 기술·무역 블록
이것은 대안적 안보구조에서 미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다자간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과 다르게 지역 내 국가들의 진정한 총체적 발전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반드시 강대국들을 배제한 대안적 경제계획의 수립을 말한다. 블록 내 회원국들을 결합시켜주는 무역, 투자, 기술제휴상의 우대조치는 이 지역이 수입, 수출, 자본, 기술에서 현재와 같이 고도로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비정부조직의 지역회의
아·태 지역은 매우 많고 다양한 비정부조직과 대중조직을 자랑하고 있다. 대안적 지역질서의 창출은 사실상 특정 분야나 민족적 차원에 한정된 그들의 관심을 승화시켜 공통의 계획을 마련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지역회의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는 지역 차원의 비정부조직의 힘을 인권보호, 민주적 정부의 확산, 자원·농업·어업 개혁, 환경보호, 여성의 권리 신장, 토착원주민과 소수민족의 보호와 같은 목표를 촉진하도록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지역회의의 또 다른 핵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 지역 정부들과 강대국 사이의 관계를 중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50주년은 맞는 소중하고 뜻깊은 해이다. 기념일이나 몇 주년, 뭐 이런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 반문해 보기도 하지만 ‘잊지 말자! 6·25’라는 구호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50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말고 다시 한 번 각성하고 준비하자’는 6월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우리의 구호처럼 말이다. ▣
■ 글 :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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