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발간에 부쳐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

돌이켜보면 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1998년 3월, 독일 실업자 시위 소식을 머릿기사로 하여 창간호를 발행할 당시만 하더래도, 국제연대 운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겠다 싶은 단순한 사고로 감히 달려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편집방향, 적절한 기사 선정, 올곧은 번역, 그리고 기본적인 독자관리 시스템까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편집팀의 우왕좌앙하는 면모를 너그럽게 양해하며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는 과제로 들어서면 혹자의 단순 명쾌한 결론이 오히려 거북스러울 만큼 다양한 저항 양식에 대한 이해와 이를 기초로 한 너른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한 때 그 이름마저 낯설었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이 초국적 자본의 극단적인 이윤추구의 산물로서 일국 단위에서는 그 ‘계약관계’의 갑과 을이 채 알려지기도 전에 민중의 삶을 어떻게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지를 알게되었고, 또한 이것이 세계 진보진영의 연대투쟁을 통해 폐기되는 가운데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사파티스타가 노동권 수호와 정의를 요구하는 마낄라도라 노동자들과, 그리고 수업료 인상에 맞서 싸우는 우남(메히코국립자치대학) 학생들과 연대하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치아파스 라캉도나 정글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지구적 민중행동(PGA)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그 의미와 과정들에 가슴 설레기도 했습니다.

경찰관 살해라는 누명을 쓰고 20여 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무미아 아부자말의 구명 운동에 대해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이 사안이 국제 사회의 중요한 쟁점이어서라기보다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속에 우리 안의 인종주의와 타자화에 대해 무심함은 없는 지에 자성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인터내셔널뉴스가 창간하고 세 번의 노동절 특집호를 냈지만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가장 감동적 글은 노동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회고하며 잔잔하게 써내려간 한 활동가의 부고였습니다. 미국 노동운동의 황금기, 누구보다 열심히 노조운동에 참여한 아버지는 왜 어느 미국인보다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는지, 왜 노조는 제국주의적 파시즘에 대항하는 싸움이 더 많은 민주적 성과를 낳는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는지를 비판하며 노동자들의 일상의 영역에서 정교화되어야 할 정치적 세계관의 확장을 공감하도록 하였습니다.

지역분쟁을 다룰 때는 인종간, 종교간 맥락이 얼키고 설켜서 판단 자체를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잦습니다. 언제나 ‘선별적인 인도주의’를 통해 패권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강대국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이 서지만 체첸의 분리주의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제안하지 못하고,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파병에 대해서 당위적 선언 이상의 내용을 채우지 못한 것은, 그리고 때로 이런 문제들에 관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병렬로 기사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이 가지고 있는 시야와 역량의 한계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운동 가운데서도 주변화되거나 소수화되었다고 여겨지는 부문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각시키고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월호를 뒤적이며 살펴보니 노동운동 관련한 소식이 전체 기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 앞에서 다시 한번 자세를 곧추세웁니다. 인터넷 검열과 마이크로소프트사 독점반대 운동 등에 관한 몇 번의 기사화로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관심을 면피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계여성의 날 특집호로 다양한 여성이슈와 흐름에 대한 주목을 땜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몬산토의 2세대 종자제거기술에 반대하는 카르나타카주농민연합의 시위 소식정도로 세계화로 인한 농민의 피폐한 삶에 대해 모두 다루었다고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WTO 반대 시애틀 시위와 IMF/세계은행 반대 워싱턴 시위를 전후로 하여 이들 세계 금융/무역기구들에 대해 일반인들조차 관심이 많이 증대하였지만 인터내셔널뉴스는 그 어떤 매체보다 꾸준하게 이에 대한 세계 민중들의 투쟁 소식을 전하고, 세계 진보진영의 다양한 입장과 견해들을 살피며 대안 논의로까지 확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로는 온전하게도 KoPA를 비롯하여 이 운동을 국내, 국제적인 실천으로 가져갔던 집단들의 국제연대 운동에 대한 노력에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이렇듯 인터내셔널뉴스의 지난 100호를 되돌아보니 창간호를 기획할 당시에 가졌던 우려가 여전히 불식되지는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계 곳곳 민중들의 움직임이라면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은 앞서지만 협소한 연대틀과 몇몇 언어권에 한정된 정보수집 역량으로 인하여 기사 내용이 편중되고, 객관적인 진실성이 과장되거나 폄하되지는 않았을까하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제도화된, 자본 타협적 개혁론 보다는 다소 돌출적일 수 있지만, 비제도화된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비타협적 운동에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으로 앞으로 인터내셔널뉴스의 발전에 대한 각오를 대신하겠습니다.

다소 불량해진 발행주기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며 주위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주신 독자여러분들과,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나 오역을 바로잡아주신 몇몇 활동가여러분, 부족한 우리를 대신해 애써주신 ’20세기를 뒤흔든 세계 노동자파업’과 ‘세계로 클릭’의 필진 여러분들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일주일 단위로 끊어먹는 주간지에 얽매여 반복되는 밤샘작업을 감수하며 달려온 편집팀 여러분에게 자축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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