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제주의를 향한 힘찬 출발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얼마 전 공부하러 호주로 떠난 친구에게서 안부를 전하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대학 초반에 미국에 이민간 친구에게 편지 보내고 약 일주일 정도 후에 편지 받았다는 전화를 받곤 했었으니까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사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야 뭐 이런 사소한 것에서 말 그대로 지구촌의 시대가 왔구나 느끼지만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투기자본을 옮기는 금융자본가들은 저와 같은 단순한 사고로 신기해하는 지경은 아니겠지요. 97년 말 IMF로 우리는 세계적 금융자본가들과 그들의 카지노 자본주의의 실체를 정말로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들과 그들의 하수인인 한국정부와 재벌들은 나라가 바로 서야 국민들도 잘 살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며 우리의 장롱 속 깊숙이 감춰두었던 금붙이마저 꺼내게 하였습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한국인들의 이런 애국심을 이용하여 결국은 초국적 금융자본가들과 그 하수인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우리 민중들은 갸우뚱할 뿐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초국적 자본과 결탁한 군산복합체의 이해는 자신들의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서 이제 지구본 하나를 앞에 두고 분쟁을 일으킬 지역을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누구도 원치 않았던 발칸의 화염은 유럽 지역의 군사적 패권을 거머쥐려는 미국과 전쟁무기를 팔아먹으려는 전쟁상인들, 민족주의의 유포와 적대적 기억의 재생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지배정권의 이해다툼의 산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자본이 강대국 중심으로 하나가 되고 그들만의 전략으로 세계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는 상황에서 이제 과연 한국 민중들의 문제는 단순히 ‘한국민중 對 한국정부 혹은 재벌’만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을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이런 의구심은 저만이 드는 생각도, 최근에야 고민하게 된 것도 아니죠. 이미 전세계의 민중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운동 상황에서는 국제연대의 문제가 단순히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는 수단으로만 사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전세계 자본은 국경을 초월한 굳건한 연대(아니 강대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질서 구축)가 강화될수록 우리 민중들도 일국적 차원을 뛰어넘어 전세계의 민중과 굳건한 연대(말 그대로)를 구축하는 것은 무척이나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 대목에서 ‘새로운 국제주의 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삐끼스의 활동과 『인터내셔널 뉴스』의 임무는 아주 막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히나 현재적으로 국제연대라는 부분이 거대 조직들(?)에 의해 독점되면서 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한 필요에 의해 ‘국제부’ 정도로 존재하는 것과 다르게 국제연대의 기치를 내걸고 활동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기대를 갖게 합니다.
진심으로 이번 100호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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