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완전자유화 파장을 짚어본다

현정권 국민경제 담보 일대 도박

김대중 정권은 최근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힌데 이어 내년부터 외환시장 완전자유화조치를 강행하고 한일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원조 미국에서도 그 부작용을 우려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현정권은 오히려 한술 더 뜨고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뜻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현정권의 정책 기조를 바꿔내지 않을 경우 국가 경제의 위기 상황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안으로는 현대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빅딜, 부채구조 2백% 달성 등 재벌개혁 정책의 실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 정권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각론적으로 접근해 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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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힘만으로는 안 되니 외국자본의 도움으로 재벌체제를 발전적으로 해체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을 열어제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활용한 재벌 개혁론이다. 아이엠에프의 강요에 의해서 하긴 했지만, 정부여당의 그럴듯한 이데올로그들과 진보학계 안의 상당수 인사들이 드러내 보이지 않는 속내다. 자본·외환 시장 개방의 비용·편익을 따져보면 이런 편익 또한 있다는 것이다. 치러야 할 비용은 보완책을 세우면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운다’는 우려를 자아내면서도, 이런 주장에 지금까지는 봐줄 만한 구석도 있었다고 치자. “외국인투자자가 거래소

시가총액의 28.5%(5월24일 기준)를 소유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현대그룹은 꿈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이 어느 정도 말발이 먹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굳이 외국자본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재벌체제를 발전적으로 해체시킬 수 있는 수단은 수두룩했다. 주식 한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주요 계열사의 실질적 대주주로 군림하며 경영을 좌우한 재벌총수의 업무상 배임을 묻거나, 불법적 탈세 및 변칙적인 증여과정에서의 상속세 포탈 등에 대한 사법 처리, 우리사주조합 등을 통한 구조조정 재원 마련,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벌체제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이런 방안들을 외면했고, 디제이와 재벌총수들과의 ‘밀실합의’를 통해 철저히 외면했다.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신 정부는 ‘시장친화적’이란 이름으로 외국자본과 동맹을 맺었다. 문제는 그 동맹의 약발이 떨어졌음에도(외국자본이 빠져나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바로 그 단적인 모습이다), 정부가 이른바 ‘신뢰 게임’ 차원에서 국민경제를 담보로 일대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도박의 구체적 형태는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예정대로 내년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밀어부치는 ‘2단계 외환자유화’이다.

지난해 4월1일 단행된 1단계 외환자유화의 주요 내용은 선물환 거래에 대한 실수요 원칙 폐지(=실제 거래가 없어도 환위험 회피나 이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인 투기적 수요 등을 위한 거래 허용), 재무건전기업의 1년 이하 단기외화 차입 허용 등 외국자본 유입 촉진책이었다. 이에 비해 2단계 외화자유화는 각종 외환규제를 철폐해 ‘돈의 규모에 관계없이 내·외국인 누구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온갖 자본거래을 할 수 있게 허용’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해외여행경비(1만달러), 증여성 송금(건당 5만달러), 해외이주비(4인가족기준 연간 1백만달러) 등의 상한선이 철폐된다. 재외동포의

부동산매각대금 반출 제한(가구당 연간 1백만달러)도 사라지고, 지금까지는 2만달러 안에서 외화를 보유할 수 있었으나, 정부는 이런 제한도 없앨 계획이다. 현물환에서도 실수요 원칙을 폐기하는 것이다. 또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외환거래가 전면 자유화하고, 현재 개인은 5만달러, 법인은 5백만달러로 돼 있는 내국인의 해외예금 한도도 없어진다.

물론 정부는 ‘더운 날 창문은 열어도 모기장은 쳐야 한다’며 현재 1억원으로 묶여있는 외국인의 원화 차입 한도를 유지하고 외국인의 1년 미만의 단기 원화증권 발행 및 내국인이 이를 취득하는 것을 제한하기는 했다. 또 대외채권회수 의무제도 유지된다. 이 제도는 국내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5만달러를 넘으면 6개월 안에 국내로 들여와야 하고,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5만달러 이상의 대외채권은 만기일 이후 6개월 안에 국내로 가져오게 한 것이다. 만약 회수기간을 연장하거나 회수하지 않으려면 한국은행의 허가를 얻게 돼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부 말마따나 ‘더운 날 창문은 열어도 모기장은 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국인주식투자자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난해 자본 유·출입 규모는 8백10억달러(유출입 비율 87%)를 넘었다. 1백원이 들어와 87원이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올해는 1천억달러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부담인데, 2단계 외환자유화는 여기에 내국인이 가세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악화할 조짐을 보이면, 그래서 환율이 오를 것 같으면 내국인까지도 마음껏 달러를 사재기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또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내국인들이 돈을 빼다가 미국 금융자산을 사들이는 양상이 대규모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지금도 가뜩이나 많아 환율 하락 압력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외환보유고를 지금의 두배 이상 쌓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 스스로가 해외투자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서는 판에 뮤추얼펀드·증권회사 등의 자산운용이 섣부르게 해외로 쏠릴 수 있다는 것도 2단계 외환자유화의 맹점이다. 이것은 결국 전면적인 외환·자본시장 개방이 결국 환율정 안정과 통화정책의 독자성 상실로 이어진다. 지금도 이미 외환시장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설자리를 잃었다. 주도권이 완전히 외국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목표가 경제성장은 뒷전으로 밀리고 물가안정에만 전적으로 놓여지는 구조와 추세는 더욱 공고화한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대외금융정보시스템(FIU)을 설치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외화를 사들일 경우 이를 보고하게 하는 것을 거의 유일한 대책으로 내세운다. 아이엠에프가 강조하는 이른바 알량한 모니터링 강화다. 국제금융체제 개편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은 1997년 아이엠에프 위기 이전과 바뀐 게 하나도 없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는 잔잔해질 때까지는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더욱이 선원들이 몹쓸 질병에 걸려있고 배의 상태가 안 좋다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대고 2단계 외환자유화를 연기하면 국가신인도가 떨어지고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더뎌진다는 강행론자들의 말은 일종의 협박이다. 한번 건너가면 좀처럼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그게 2단계 외환자유화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때문에 최선은 그 다리를 못건너게 하는 것, 최소한 연기시키는 것이다.

(정민경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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