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지난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국민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이들과 함께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전국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4,700조 원의 투자계획을 밝혔고, 정부는 전력, 용수, 토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총력지원’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빅테크 CEO들을 초청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을 개최했다. 삼성, SK, 현대차 총수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이재명 대통령은 엔비디아, 브로드컴, 앤스로픽, 오픈AI CEO와 함께 ‘우리는 식구다’를 외쳤다. 한국이 미국 AI 자본과 한 배를 타서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250조 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거둔 이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업이익과 투자규모에 한국사회 전체가 압도당하고 있다. 마치 투자브로커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AI와 반도체 산업에 사회의 모든 자원을 ‘올인’하겠다고 한다. ‘AI 혁명’이라며 장밋빛 성장 전망에 모두가 들떠 있다. AI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인데, 한국이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AI 산업에 대한 비이성적인 낙관이 사회를 뒤덮을수록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챗GPT는 2022년 11월 출시되었지만,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선 건 한국어 학습능력이 대폭 향상된 2025년 4월 이후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AI 이용확산을 위한 법제도가 빠르게 구축됐고, 삼전닉스의 대규모 영업이익과 함께 코스피 지수가 폭등했다. 불과 1년여 남짓한 기간 동안 한국사회는 말그대로 ‘AI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메가특구법 철회 촉구 기자회견. 참세상 박도형 기자.

1. ‘AI 혁명’, 우리는 10년 전에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AI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10년 전 이세돌을 꺾었던 구글 ‘알파고’ 신드롬이 있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주창되었는데, 4차 산업혁명의 6대 분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자율주행, 3D 프린팅이 제시된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 제조업 정책인 인더스트리 4.0, 아디다스의 무인공장인 스피드팩토리, 테슬라의 기가팩토리 무인 공장 등이 당시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주장들은 결국 ‘자동화 담론’으로 수렴되는데, IT-디지털 혁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계가 엄청난 생산성 혁명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게 자동화 담론의 공통된 전망들이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가올 대규모 실업이라는 미래에 필요한 대안은 보편적 기본소득뿐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이 세계의 작동원리인 ‘자본주의’를 괄호친 채, 과학기술의 발전이 노동을 대체할 것을 전제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 SF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이전 시대와 구분짓는 큰 특징 중 하나는 ‘기계의 도입’을 통한 ‘생산성 혁명’이다.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화석연료나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증기/내연기관과 모터가 동력원으로서 생산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면서 노동생산성이 대폭 향상되는 것이다. 이때 1인당 노동생산성 향상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량’ 그 자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액이다. 자본주의는 ‘필요’가 아닌 ‘이윤’을 위해 생산하기 때문이다. 비싼 기계를 도입해 상품을 대량생산을 했다면,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충분히 큰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은 기계를 도입할 수 있으며, 기계의 일반화는 다시 기계 도입비용을 낮춘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세계시장과 2차대전 이후 열린 국민경제의 대중소비시장의 형성이 그 역할을 했다. 

다만 이는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특수한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장기불황의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지만, 우리는 제조업 경쟁 격화,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 저하와 그에 따른 고용률 하락에 주목해야 한다. 흔히 과학기술과 기계의 발달에 따른 노동생산성 증가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했던 독일, 일본 모두 1950~1973년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각각 5.7%, 10.1%에 달했으나 이후 50여년 동안에는 2~3%대로 급락한다. 느리게 증가한 노동생산성에 비해 고용률 하락폭은 훨씬 컸는데, 이는 불황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때문이었다. 지난 50년동안 전세계 제조업체들은 성장을 멈춘 세계시장을 두고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벌였다. 

참세상 자료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비용절감을 위한 최고의 도구들을 제공했는데, 이는 지구적 생산분업과 각국에서의 노동권 공격과 사회보호의 해체였다. 미국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제체제의 인프라로서 각종 국제협약과 기구 그리고 달러패권에 기반한 금융자본시장을 제공했다. 독일, 일본, 한국, 중국 등 제조업 강국들은 경쟁력과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공정로봇화와 함께 노동유연화 그리고 노동집약적 공급 사슬을 함께 구축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자리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이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늘 새로운 산업의 성장가능성을 부풀리는 전망들은 반복되었다. 2000년 미국 닷컴버블로 마무리된 1990년대 ‘신경제’, ‘IT-디지털 혁명’, ‘3차 산업혁명’과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닷컴버블로 끝났지만, 그 이후 디지털 산업의 성장은 분명한 사실이다. 구글, MS, 메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 증시 시가총액의 상위를 차지하며 거대 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급성장과 미국 국민경제의 발전은 괴리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서비스를 포함한 유통망 독점을 통해 이윤(광고 등)을 쌓고 있는데, 이는 성장을 멈춘 시장에서 독점을 통한 지대추구에 가깝다. 실리콘밸리 자본의 혁신은 수많은 골목상권, 숙박업체, 택시, 방송언론사, 영화제작사, 대형마트 등을 무너뜨리고 획득한 ‘지대’였다. 서비스 노동은 플랫폼 노동으로 변모해갔고, 자본은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기계’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은 탐욕스러운 빅테크 기업들의 등장이었을 뿐, 보통 사람들의 삶의 풍요,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빅테크가 만든 극도의 불안정노동을 반복하며, 이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소비를 강제당한다. 

‘4차 산업혁명’, ‘AI 혁명’은 IT 혁명의 최신 버전이다. 주역들은 그대로이며, 여기에 엔비디아와 오픈AI, 엔스로픽, 테슬라가 더해졌다.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AI가 인간의 언어로 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사용자의 요구를 인간의 언어로 생성해내게 되면서, 데이터를 많이 다루는 사무개발직을 대체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같이 물리 공간에서 인간의 작업을 대체할 것 같은 ‘피지컬AI’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할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더욱 많이 필요해졌고, 그만큼 더욱 많은 AI 칩과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지난 1년 사이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기록적인 영업이익(연간 650조 원 예상)이 확인되며 주식시장이 팽창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벌들과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AI-반도체 산업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이 사회를 사로잡고 있다. 이 낙관의 핵심은 AI가 진짜 생산성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AI 혁명’은 10년 전 ‘4차 산업혁명’보다 스케일이 훨씬 커졌지만 그 근거와 기본 논리는 다르지 않다. AI가 기업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고,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경험한 기업들이 모두 AI를 도입하게 되면 상품과 서비스는 더욱 저렴하게 제공되면서도 기업들의 이윤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는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았고, 야심차게 무인공장을 열었던 테슬라는 실패를 인정하고 이제는 여타 완성차 업체에 비해 자동차 생산량 대비 고용률이 더 높은 기업이 되었다. 전미경제연구소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미국, 영국, 호주, 독일의 기업 6,000개 가운데 약 80%는 지난 3년동안 고용이나 생산성에 측정 가능한 영향이 없었다고 한다. AI의 생산성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거시경제 전반의 생산성 지표나 영업이익률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AI 산업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호들갑보다는 앞서 보았듯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기계화/자동화’의 궤적을 돌아보며 우리가 놓여 있는 조건을 확인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먼저 197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장기불황’이라는 세계적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조업 과잉생산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으로 자본투자는 금융시장으로 향했고, 이는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런 조건에서 AI 산업도 90~2000년대 디지털 혁신처럼 장기불황, 저성장 국면에서 디지털(유통) 시장을 둘러싼 독점을 향한 경쟁 즉 지대추구형 경쟁에 가까울 것이다. AI는 노동력 대체보다는 온라인 데이터서비스, 유통 시장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에 가까우며, 피지컬AI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더라도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자동화/기계화’의 한 챕터일 뿐이다. ‘AI 혁명’이라지만 새로운 성장동력과 시장이 열리는 게 아니라, 새롭게 재편되는 기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2025년 9월 기후정의행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2. AI 거품이 금융시장과 만나면 ‘위기’가 시작된다

AI 산업과 과거 디지털 산업의 가장 큰 차이는 AI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막대한 양의 자원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대량의 AI 칩과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며, 이를 구동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있어야 한다. 유엔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 전세계 데이터센터는 연간 945TWh(현재 프랑스 전력의 2배), 연간 9조 3000억리터(사하라 이남 13억명 연간 생활용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에 사용될 반도체 생산을 위한 전력과 용수는 별개의 문제다. 이렇게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빅테크 4사(MS, 아마존, 구글, 메타)가 데이터센터 설비투자에 쏟아붓는 돈이 2025년 4,000억 달러에서 2026년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AI 산업 전반의 관련 지출은 2조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44% 늘어난 수치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은 바로 이렇게 급증한 AI 산업의 설비투자 때문이다. AI 산업은 자본 투자 규모와 방식에서 기술산업보다는 초거대 인프라 산업에 가깝다. 장기간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 실물생산에 투자되어야 하며, 투자수익의 회수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디지털 독점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빅테크조차 막대한 AI 설비투자에 보유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6개 빅테크 기업이 올해 발행한 회사채는 2,440억 달러인데 이는 이들 회사가 작년에 발행한 회사채의 2배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펜데믹을 경과하며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막대한 국채발행으로 화폐를 찍어내고 제로금리로 이자부담을 낮췄다. 그 결과 금융시장은 더욱 팽창했고,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금융자본이 넘쳐나게 됐다. 사상 최대의 설비투자가 이루어지는 AI 산업에 금융자본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현금압박에 시달리는 빅테크들은 금융시장이 제공하는 신용(부채)을 통해 AI 데이터센터 설비투자 경쟁을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사모대출(private credit)’시장이 급성장하게 됐다. 공개시장에서 평가받고 각종 금융규제를 받는 은행대출과 달리 사모대출은 대출당사자 간의 ‘신용거래’이기 때문에 비공개이며, 초저금리 상황에서 수익성 높은 금융상품을 찾던 기관투자자들이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과 매칭됐다. 2025년 현재, 2조~3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AI 산업에도 상당량이 투자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부터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화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데, 사모대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얼마나 많은 신용이 얽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빌리더라도, AI 산업의 수익성이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 아닌 디지털 지대(제한된 시장)를 둘러싼 빅테크 간 시장점유경쟁으로는 이미 투입된 수 조달러의 자본투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바로 이런 수익성 우려때문에, AI 산업은 엄청난 설비투자규모에도 불구하고 고금리의 회사채와 사모대출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엔비디아가 주축이 된 ‘순환거래’가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순환거래’는 엔비디아가 빅테크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빅테크들은 그 돈으로 엔비디아의 AI 칩을 대량 구매하는 방식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월가의 6개 거대자산운용사와 함께 일종의 ‘칩 담보대출’ 금융을 시작하면서 ‘순환거래’의 규모를 더욱 키웠다. 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주택담보대출에 기반한 금융파생상품처럼, AI 데이터센터(반도체 칩)를 담보로 한 금융파생상품을 팔아서 설비투자액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불확실한 수익 전망과 전례없는 규모의 설비투자라는 조건에서 AI 산업은 회사채, 사모대출에 이어 칩 담보 금융파생상품이라는 ‘신용’을 창출해 설비투자를 더욱 늘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AI 거품이 터진다면 2000년 닷컴버블처럼 주식 투자자 사이의 이익배분과 주가조정에 그치지 않고, 2008년 금융위기처럼 거대한 부채위기로 전화한다. 이것이 AI 산업이 벌이고 있는 거대한 도박판의 현실이다. ‘AI 혁명’이라는 환상을 유포하고 금융자본과 손잡고 투자를 모으는데 성공해 더 큰 판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용을 통해 대규모로 동원된 자본은 엄청난 전력과 물, 자원들을 소모하고 자연을 파헤치는데 사용된다. AI 거품은 한 순간의 미몽에 그치지 않는다. 부채위기와 함께 기후생태위기는 심화된다. 삼전닉스의 수백조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 향후 10년 간 4,7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들은 모두 AI 산업이 금융시장에서 끌어모은 ‘부채’에 기반해 전국을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때 우리는 분명히 목격했다. 경제위기를 막고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본의 손실이 국가를 통해 민중들에게 전가되는 마법 말이다. 이미 국가안보화되고 있는 AI 산업의 국가 유착을 고려한다면, AI 거품은 쉽게 자본의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메가특구법 철회 촉구 기자회견. 참세상 박도형 기자.

3. 자본과 한 몸이 된 국가 

현재 AI 산업의 확장이 과거와 다른 중요한 점은 바로 국가권력과의 관계다. 앞서 보았듯이 AI 산업이 놓여 있는 조건과 구조는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장기불황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세계이다.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지대추구 경쟁과 금융시장의 팽창이 그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미국 패권이 제공하던 신자유주의 제도와 규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산업전략과 자본이 적극 결합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AI 산업이 국가안보화되면서 국가와 자본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한국과 같은 중간 고리 국가에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의 ‘진짜 성장’은 이전 정권들의 ‘친기업-경제성장주의’와 다르다.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정부는 국제질서가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체제로 재편되었다며, 이제 국가가 대자본의 자본 축적 위험을 함께 떠안고, 필요한 시장과 인프라까지 직접 조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AI 산업의 국가안보화 경향은 국제질서의 변동 외에 제한된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AI 독점 경쟁’ 그리고  전력과 물, 자원과 연계된 ‘거대 인프라 산업’, ‘AI 기반 군사력 전환’이라는 AI 산업의 특성때문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이란, 팔레스타인 등에서 수 년째 지속되고 있는 전쟁과 집단학살에서 AI 기반 무인무기체계가 핵심이 되고 있다. 앤스로픽과 미국 국방부의 갈등이 크게 보도되었지만, 앤스로픽은 이미 미군의 무기체계에 사용되고 있었다. 이란이 중동 곳곳의 빅테크 데이터센터를 공격 표적으로 삼았던 것은 AI가 이미 전쟁 인프라임을 반증한다. 이재명 정부도 소버린 AI를 통해 국방 AI 전환(AX)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앞서 확인했듯이, AI 산업은 시장경쟁이 아닌 독점을 통한 지대추구 산업이라는 점,  전력/용수와 같은 인프라는 개별 기업이 마음대로 구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가권력과의 유착은 필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AI판 국부펀드’ 구상을 밝히고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이를 지지하고 나선 이유다. AI 산업의 환경적, 경제적 우려에 대한 ‘사회적 면허’를 획득하는 방편으로 AI 산업 지분의 일부를 국가/사회와 나누겠다는 것이다. 최근 삼전닉스의 초과이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한국사회의 논의들이 ‘AI-반도체 산업’과 한국사회를 일체화하는 경향을 띠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제적 변화에서 가장 먼저 버려진 게 ‘기후위기 대응’이다. 실리콘밸리 자본은 디지털 혁신을 앞세우며 재생에너지 확대를(RE100) 주도하는 듯했지만, AI 산업 확장으로 이를 뒤집었다. 이재명 정부는 메가프로젝트가 날려버린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3대 메가프로젝트가 요구하는 추가 전력은 무려 40GW에 달한다. 현재 한국 전체 사용 전력의 40%에 해당한다.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 정부는 신규핵발전소 건설과 수명연장, 가스발전소 건설, 재생에너지 확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한다. 메가프로젝트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며, ‘속도전-거점전-선도전’도 모자라 ‘전격전’을 외치며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선언했다. 

메가 프로젝트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열광은 마치 전쟁 전야의 열기 같다. AI 산업이 국가안보화되면서 100년 전 제국주의 경쟁처럼 국가와 자본은 한 몸이 되어 파괴적인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메가 프로젝트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만들어온 사회적 규범과 제도들을 무력화하면서 추진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 환경적 규제, 민주적 절차와 공론장, 노동권 등이 ‘AI 예외주의’ 아래 모두 무시되고 있다. 기존 제도를 무시하기 위해 반도체, 송전망, 피지컬AI 등 온갖 특별법과 기본법들이 추진 제정된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에는 기간제, 파견노동, 장시간 노동의 확대 등 어렵사리 만들어온 노동권을 파괴하는 조항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런 식으로 ‘국익-국가안보 정치’가 강화된다면 농업용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농민, 노동권 파괴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온실가스 감축과 탈핵을 요구하는 기후정의운동까지도 모두 ‘국익과 국가안보’를 해치는 세력으로 탄압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AI 산업과 국가가 일체화될수록, AI 산업은 ‘실패하기에는 너무 전략적인 산업’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과장된 생산성과 수익성 전망,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본투자와 부채, 심각한 생태환경적 파괴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가 AI 산업에 저당잡혀 절대 실패해서는 안되는 산업이 되버리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재명 정부의 ‘전격전’ 아래, 불과 1년여 사이에 사회 전체가 도박판의 판돈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서사를 끊어내야 한다. 

참세상 자료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4. 메가프로젝트는 고쳐 쓸 수 없다

AI 산업에 대한 환상과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고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천문학적 이윤을 거두고 이재명 정부가 국운을 걸고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자 사회운동에는 메가프로젝트를 중단시키거나, 맞선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현실적’ 의구심도 존재한다.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될 메가프로젝트에 적절히 개입해서 핵심적인 독소조항들을 중심으로 맞서는 ‘현실주의적’ 운동전략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이 40GW나 되는데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공급계획을 짜야 한다는 주장, 일자리 확대는 필요하니 기간제, 장시간 노동 확대 등 노동법 독소조항을 삭제하는데 집중하자는 주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수도권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설하는게 ‘에너지 정의’와 ‘지역균형발전’에 부합한다는 주장까지, ‘현실적’이라며 오히려 ‘메가프로젝트’라는 정세를 전혀 보지 못하는 주장들이 등장한다.  

메가프로젝트는 단지 이재명 정부와 재벌들이 기획한 거대 개발사업이 아니다. 국제질서의 변동과 맞물리며, 지구적으로 시도되는 새로운 자본 축적 기획의 일부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번영과 풍요를 약속하면서, 불황 속에서 오직 자신들만의 이윤축적을 이어갈 방법을 찾아왔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IT혁신에 이어 ‘AI 혁명’이라는 환상을 통해 엄청난 자원을 동원하며 새로운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AI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혁신이 아니라,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와 속도로 지구적 자원을 동원하며 팽창하는 능력이다. 이런 AI 산업 앞에서 에너지 ‘전환’은 어불성설이며, 자원이 고갈된 영남권이 아닌 재생에너지와 물이 풍부한 호남권은 새로운 수탈지대가 된다. 24시간 자원을 소모하며 돌아가는 AI 산업에 기계부품처럼 배치되는 노동자에게 권리와 존엄은 독소조항제거로 획득할 수 있는게 아니다. 

오랜 장기불황과 암울한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 ‘AI 혁명’이라는 화려한 도박장이 갑자기 열렸다. 메가 프로젝트는 이 도박장에 반도체 칩을 대는 장사를 시작하겠다는 또 다른 도박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규모의 자본투자가 계속해서 발표된다. AI 산업의 거품여부와 별개로 이정도 규모의 자원이 동원되고 실제 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은 기후생태 위기를 앞당기는 불구덩이를 온 힘을 다해서 파겠다는 것이다. 설령 AI 산업이 금융위기까지 동반하지 않고 연착륙에 성공해 안정적인 이윤축적에 성공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삶의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50여년의 역사를 통해 확인해왔다. 

자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 힘은 우리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힘이기도 하다. 정부와 자본가들이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이윤축적을 위해 사회적 자산을 거대한 도박장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생산한 저 힘이 삶을 지탱하기는커녕 지구를 불태우며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저 힘에 고삐를 조이고, 우리가 생산한 힘을 우리가 통제하기 위한 사회화에 나서야 한다. 메가프로젝트가 고된 삶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과 풍요를 약속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거짓 약속을 폭로하고 대안사회를 그리는 투쟁을 지금부터 조직해야 한다. 


*참고자료

아론 베나나브, 2022,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책세상

마이클 로버츠, 2017, 《장기불황》, 연암서가

로버트 고든, 2017,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생각의힘

오민규, 2026, 〈피지컬AI 도입 그리고 노동통제〉, 강의자료

Servaas Storm, 2026, Russell’s Teapot: Dispatches From the Final Stage of the AI Bubble

Servaas Storm, 2026, The U.S. Is Betting the Economy on ‘Scaling’ AI : Where Is the Intelligence When One Needs It?

Duncan K. Foley, 2013, Rethinking Financial Capitalism and the “Information” Economy,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Winston Yau, Matt Haugen, Jesse Goldstein, Dustin Mulvaney, Hannah Story Brown, Kenny Stancil, and Sarah Knuth, 2026, AI First How the Federal Government is Prioritizing AI Over People and Planet, Climate&Community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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