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정상회담 그리고…
– 오끼나와 국제 정상회담 참가기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높은 곳이나 스피드한 것을 무지 싫어하는 나에게 비행기는 정말 최악의 이동수단이다. 그래서 오끼나와로 향하는 2시간의 비행기 여행이 나에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르고 구름 위에 떠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도 이상스레 가슴이 무척이나 설레어 왔다. 오끼나와에 가까이 올 수록 더욱 설레는 마음. 왜일까… 그건 낯선 곳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많은 우리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지난 해 헤이그 평화대회 참석 후 많은 평화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내내 나에게는 활동의 동력이 되었었다. 게다가 같은 여성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야…
비행기에서 바라본 오끼나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바단지 하늘인지 구분조차 안되는 온통 푸른빛의 풍경과 간간히 한 톤 낮은 빛깔의 띠를 두른 산호섬들… 이곳이 온갖 미군들의 비행장과 기지로 오염된 나라라는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끼나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쾌적한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것과는 다르게 무지하게 덥고 습한 날씨다”, “야자수가 가로수이다” 등이었다. 한마디로 일본의 분위기(일본은 가 본 적이 없지만)와는 사뭇 다른 오히려 영화에서 보았던 하와이나 괌 쪽에 가깝다고나 할까. 하지만 숙소로 가는 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미군 기지와 창고들은 이미 몇몇 자료에서 보았던 슬픈 오끼나와의 현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사실 미군 기지와 창고라고는 하지만 서울 용산 기지 등과는 많이 달랐는데 높은 담벼락도 무시무시한 철조망도 없는 그냥 철사로 얽기설기 된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위압적이고 뭔가 숨기고 있을 거라는 인상보다는 무척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도착한 날 짐을 풀고 숙소 주변을 돌아보았다. 맑은 하늘과 바다, 야자수, 그리고 방향이 다르게 움직이는 차들을 제외하곤 별로 한국과 많이 달라 보이지는 않았는데 물가는 참으로 비쌌다. 들어보니 그래도 일본 본토에 비하면 7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란다. 같은 일본 땅이지만 오끼나와는 분위기나 경제적인 발전 정도 등이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끼나와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물론 휴가철이 아니기도 했지만)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승객이 미군이었다. 또 군복을 파는 가게가 많았으며(심지어 아동복마저도) 장난감이나 장식품들도 무기를 응용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여성 비하적인 문구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그 파트너로서의 일본 본토의 계획들이 아름다운 오끼나와를 망치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90여명 정도)이 모였다는데 우선 놀라웠다. 활동가들은 저마다 각 나라별 상황을 알리고 연대할 수 있는 틀거리들을 모색하느라 분주했다. 비록 언어는 잘 통하지 않고 생긴 모습도, 활동 공간도 많이 달랐지만 처음 보는 사이에서도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고 환하게 웃는 모두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첫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후 각 나라별로 Country Report를 발표했다.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섬은 한국의 매향리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규모의 폭격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 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곳이었다. 리포트를 발표했던 분도 반대 시위를 하다가 오끼나와에 오기 얼마 전까지 감방신세를 졌다고 했다. 미국에서 발표한 도로시란 언니는 자신이 미군이었는데 성폭행 당한 이후 피해자들을 위한 단체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 군대 내에서의 폭력적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중에 이 언니와는 한국 참가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좋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필리핀의 상황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미군기지의 철수 후 매매춘은 생계를 위해 더욱더 큰 규모의 섹스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더욱이 기지가 철수한 곳엔 공장들이 생겼는데 이 곳에서의 성적, 경제적 착취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나중에 분과토론에서 들은 얘기지만 그 악명 높은 기업들 중에는 한국 기업도 많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미군 기지 철수 운동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었다. 미군 기지 철수 이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필리핀 리포트를 발표를 했던 언니(언니도 국제아이다)는 필리핀에서 얼마나 국제아들이 차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분과토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국제아동의 인권, 기지로 인한 환경문제, SOFA 등 조약과 관련한 문제, 경제발전과 기지전환 등의 5가지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분과토의의 분위기는 주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이론적이거나 원론적인 논의보다는 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떻게 싸웠는가, 어떤 지점에서 함께 연대할 것인가 등의 구체적인 논의들로 진행되었다. 나라가 서로 다르지만 처해진 상황에 있어 공통점들이 많이 있어 어떤 대안적인 사업들이 진행되었는가를 서로 얘기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마지막 날에 이 모든 분과토의 내용을 총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다음날은 행진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침에 버스에 오른 참가단 일행이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평화기념비와 평화박물관이 있는 공원이었다. 이곳은 2차 대전 말기에 오끼나와 전투 때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묘비와 박물관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이나 다른 이유로 사망한 여성들을 위한 장소는 없다고 하였다. 그 곳엔 한국인들을 위한 추모비도 세워져 있었고 북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도 있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을 위한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은 추모비도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상처를 떠올리며 무척 많이 울었다. 우리는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바쳤다.
이후 땡볕에서의 평화행진… 그리고 반전 평화집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여 함께 집회를 진행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오끼나와 민중가수(한국식으로 이름 붙이자면)의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일본군위안부로 힘들게 사시다 돌아가신 배봉기 할머니를 기리는 ‘도라지’라는 노래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후텐마 기지 가데나 공군 기지를 거쳐 헤노코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새롭게 미 해병기지가 세워지려고 하는 곳인데 특히 그 지역의 여성들이 활발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헤노코는 특히 맑은 바다(듀공이라는 동물이 살 정도라는데, 듀공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3분마다 한 번씩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만 하며 청정해역이 아니면 살수가 없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듀공이 살 수 있는 바다는 몇 군데 없다고 하고 보호구역으로 지정을 받고 있으나 일본 정부에서는 기지건립을 위해 듀공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조사조차 회피하고 있다)가 유명한 곳인데 이미 캠프 슈왑이라는 기지가 헤노코의 자연을 많이 망쳐놓았다고 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본 바다는 너무도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자연을 지키며 싸워 나가는 헤노코 지역의 여성활동가들은 너무도 예뻤다. 오끼나와에서 미군 기지는 그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세워진 것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간단한 집회를 하고 아쉽게 작별을 해야 했다.
다음날은 회의에 참가한 여성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개워크샵이 개최되었다. 해밀턴 대학 객원교수이자 이 회의 조직자인 구엔 커크(Gwyn Kirk)의 모두언으로 시작된 공개 워크샵에선 필리핀의 아이다 산토스가 세계화와 여성이란 주제로 콜럼비다 대학의 베티 리어든이 여성 안전에 관한 재정의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이후 패널토의와 각 국가별 발표가 이어졌다. 마지막 날엔 주로 각 나라별로 이후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고 exchange party에선 회의 기간 중 못 다한 토론과 아쉬움으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
그리고…
회의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참가단 모두에게도 성과물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회의였던 것 같다. 어떤 국제회의 건 제3세계의 입장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평가는 항상 있어왔다. 이번 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회의 기간 중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은 우리에게 참으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첫 번째, 공개 워크샵 이외에는 남성이 참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참석자, 통역자 모두 남성의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참가자 1인과 통역자 1인이 참석하지 못했거나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에서의 몇 차례 사전 회의가 있었을 때도 그리고 미국 측과 연락(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을 통해서)을 했을 때도 남성의 참가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고 참가단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아마도 한국의 여성운동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남성들이 함께 하는 것이 그리 생뚱맞은 현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또 참가하고자 했던 남성활동가가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동지였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선 혹은 조직자들의 입장에선 한국의 이러한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필요에 따라 여성끼리 회의를 조직하거나 여성의 리더쉽을 기르는 차원에서 여성들만의 참석을 원하는 회의를 본 적도 있고 참석해 본 적도 있다. 한국 참가단이 제기했던 내용은 이러한 원칙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구성원인 한국이 이 원칙에 대해 합의한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네트워크가 조직자 몇 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네트워크 구성원들에 의해 원칙이 논의되고 실행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면 적어도 이런 곤란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두 번째, 원래 진행하기로 했었던 분과회의 내용이 없어지거나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언어적 문제로 미리 참석할 분과를 정하고 발제문을 준비했던 한국의 몇몇 단체들은 도착한 첫날 이 얘기를 듣고 너무나 당황했었다. 영어권 나라들이나 통역자가 빵빵했던 일본과 오끼나와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을지 몰라도 한국 참가자들은 그 내용에 있어서나(이번 회의에 한국참가단이 많이 조직될 수 있었던 이유도 필리핀 여성의 문제나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 다양한 분과가 이전 회의에 비해 새롭게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언어적인 문제에 있어서나 회의 당일 날 순발력으로 승부하기엔 많은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20명 이상의 많은 참가단이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식적인 통역자는 두 사람에 불과했다. 그것은 회의 기간 내내 언어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우리에게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남성이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었던 통역자가 참석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네 번째, 기존 네트워크 국제회의에 계속 참가했던 단체들과 새롭게 이번 회의에 결합한 단체들 간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는 처음 참가했기 때문에 회의 분위기를 익히는 데 전체 기간을 다 소모할 수밖에 없었으며 항상 한국 참가단을 대표하는 쪽은 기존 참가단체들이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배제에서부터 심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까지 회의 시작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참가한 단체들이 마음을 편안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한 모순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에 평가를 하면서 네트워크의 원칙을 다시 국가별로 논의하고 세워나가는 작업과 미국인들로만 구성된 조직자들이 네트워크 전체를 운영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각 국가별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총괄단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로 회의는 기간 내내 삐걱거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 네트워크에 앞으로 계속 참가할 것이라면 나부터 열심히 드러난 문제점들을 고치고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자들과의 대화에서나 참가단 내부의 권력 문제에서 느꼈던 어려움들은 과연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인가 하는 회의를 들게 하였다. 누구도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발생했고 그것으로 인해 배제되는 국가나 단체들이 있었다. 심정적으로 계획하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벌어진 사건 하나하나는 분명히 의도되었거나 의도될 것이 뻔한 것들이었다. 분명히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가는 것이 연대가 아닐까. 힘들고 좋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갈 때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그래도 이번 회의를 준비하면서 함께 연대할 수 있었던 국내 단체들과 오끼나와에서 만났던 좋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굳이 네트워크는 이런 식의 국제회의를 통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회의를 계기로 연대의 틀을 확장하는 것!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메일을 날려야지… 하지만 그 결심은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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