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새로운 연극이 공연 중이다. 제임스 그레이엄(James Graham)이 쓴 《생활 수준》(The Standard of Living)이라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그레이엄은 이 ‘천재 경제학자’에게 깊은 매력을 느낀다. 경제학자가 아닌 예술가인 그레이엄은 케인스의 경제 이론보다는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질문에 케인스가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케인스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이나 소비, 성공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랑, 그리고 ‘미적 감상’이라고 믿었다. 케인스는 한 에세이에서 인간이 풀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정의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그레이엄은 케인스의 사상이 돈벌이와 이윤 추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점을 확신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언제나 싸워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내가 자란 탈산업화 시대의 노동계급 공동체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케인스가 오래전에 제시한 주장이 지적으로 타당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케인스는 그림, 연극, 발레, 노래처럼 당장 직접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활동에도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활동의 가치는 엑셀 스프레드시트에서 쉽게 숫자로 환산할 수 없지만, 한 나라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의 삶에 의미와 행복을 더해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돈과 소비, 성공’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실제로 그레이엄의 연극 관람료는 최고 298파운드(약 400달러)에 이른다. 물론 30세 미만 관객은 단돈 25파운드에 볼 수 있는 좌석도 있다. 결국 ‘좋은 삶’을 다룬 연극을 보려면 상당히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물론 이른바 글로벌 노스, 즉 선진국에 사는 많은 사람조차 ‘지혜롭고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제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레이엄은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케인스가 이러한 ‘경제 문제’에 해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케인스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기존의 통념을 버리고, 경제가 어려울 때 저축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대신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돈을 쓰고 투자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를 더 빨리 성장 궤도로 되돌려 장기적으로는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 정부가 마침내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버리고 경제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그레이엄은 금융시장 붕괴나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 등을 단순히 위기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건을 오로지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회로도 바라봐야 한다. 어쩌면 혼란이 가라앉고 재건이 시작될 때야말로 우리가 크고 야심 찬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레이엄은 연극에서 자유시장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를 등장시켜 케인스와 대립하게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대안적이라고 여겨지는 경제 이론을 펼친다. 하이에크는 시장에 경제 운영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케인스는 정부가 경제 회복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춤을 춘다. 케인스가 발레리나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레이엄이 두 경제학자의 논쟁을 춤으로 극화한 것이다. 하이에크는 몸을 뒤로 깊이 젖히며 “저축을 장려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케인스는 무대 위를 빙글빙글 돌며 “우리는 저축을 억제하고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맞선다. 그레이엄은 이 ‘스트릭틀리 컴 댄싱(Strictly Come Dancing)’식 춤 대결에서 누가 승리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케인스는 자신의 사상이 끊임없이 거부당하면서도 더 나은 대안으로 계속 제시했다는 점에서 희망의 등불 같은 존재다. 그의 사상은 도덕적 신념에서 출발한다.” 그레이엄은 이어 이렇게 말한다. “시장 원리를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대사를 쓰는 것도 즐거웠지만, 내 마음은 케인스에게 기울어 있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그저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레이엄은 케인스의 철학과 경제학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회화와 시가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침체와 병폐를 극복하거나 주택 위기를 해결하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되찾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제안하는 것은 보헤미안 사상가가 아니라 냉철한 천재 경제학자가 주장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유대가 끊어지고 사람들이 고립되어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고, 뜻밖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대규모 국가적 사업을 추진한다면, 경제 성장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도 추구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더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훌륭한 목표다. 그러나 케인스는 정말로 인류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해답을 제시했을까?
자유주의 좌파 진영의 경제학자와 노동조합 지도자, 정치인 대부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조합회의(TUC)는 1968년 발간한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은 노동조합원들이 오랫동안 본능적으로 옳다고 믿고 확신해 온 견해에 탄탄한 지적 토대를 제공한다.”(영국 TUC 문서, 1968년, 85쪽)

영국의 자유주의 좌파 신문 <가디언>의 전 경제 담당 편집자 래리 엘리엇(Larry Elliott)의 견해를 살펴보자. 현재 주요 경제 대국들이 경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우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은 또다시 ‘재정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긴축정책과 복지 및 공공서비스 지출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 대신 ‘케인스에게서 해답을 찾아’ 이러한 우파의 경제적 통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경제적 사고가 필요하다. 케인스 같은 인습 타파적 사상가가 필요한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케인스라면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잘못된 경제정책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신용카드 한도를 모두 써버리는 것’과 같이 상식적으로 들리는 표현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경제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행태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오늘날에도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지지자들은 각각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존경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벌어진 일들은 케인스의 통찰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이 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케인스는 정말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해답을 제시했을까? 1946년 케인스가 사망한 이후 전후 각국 정부는 케인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정부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적절히 조합하고 산업과 금융을 적절하게 규제하면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자본주의 부문을 지원하는 체제인 이른바 ‘혼합경제’가 등장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은 이를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신할 이상적인 대안으로 여겼다.

이후 글로벌 노스 국가들이 전후에 누렸던 고도성장과 비교적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 즉 경제적 ‘황금기’가 성공적인 케인스주의 정책 덕분이었다는 통념이 퍼졌다. 그러나 이는 신화에 불과했다. 1960년대에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대유행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를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조차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이르자 자본의 전략가들은 케인스를 버리고 그레이엄의 연극에 등장하는 하이에크의 사상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정책을 선택했다. 정부 규모를 축소하고, 민영화를 추진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하고, 금융시장을 포함한 시장 전반을 자유화하는 한편, 강도 높은 통화·재정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물론 이러한 긴축정책을 모든 분야에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국방과 전쟁에는 긴축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케인스주의 정책이 새로운 경제 위기를 막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974~1975년에 전후 최대 규모의 불황을 겪었고, 1980~1982년에는 그보다 더 깊고 파괴적인 불황에 빠졌다. 세계 각국이 케인스주의 경제 관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위기가 다시 발생할 수 있었을까?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해답을 제시했다. 그 이유는 1970년대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생산 부문에서 자본의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만이 이 위기를 설명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의 전략가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본의 수익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케인스주의의 ‘수요 관리’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케인스와 달리 마르크스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는 단순히 금융 부문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결함’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생산 부문 자체에 내재적인 모순을 안고 있으며, 자본 그 자체가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분석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거나 수정하는 것만으로는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없애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다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케인스 자신도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정책을 일시적으로만 사용하고, 이후에는 전통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정부는 시장과 자본주의적 생산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신)고전파의 처방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거기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더 빠르고 고통이 덜한 보조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고전파의 처방도 함께 작동한다면 이러한 임시방편은 더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우리는 이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고전파의 처방을 우리 체제에서 완전히 배제한다면, 우리는 임시방편에서 또 다른 임시방편으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 경제의 건전성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케인스, 1946년)

케인스는 ‘좋은 삶’이라는 이상과는 달리 이윤 추구 동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윤 감소는 온갖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로 전환하지 않는 한, 고용주가 적절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지 않고서는 실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또한 케인스는 “경제적 번영은 일반적인 기업인에게 우호적인 정치적·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말년에 케인스는 그레이엄이 연극에서 묘사한 하이에크의 자유방임적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오히려 칭찬하기까지 했다.

1944년 케인스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저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높이 평가했다. 하이에크는 이 책에서 경제계획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도덕적·철학적으로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 단순히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깊은 감명을 받을 만큼 강하게 동의한다.”(!) 반면 케인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자본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학 교과서다. 내가 아는 한 이 책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는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하고 적용할 가치도 없다.”

케인스는 지식인 계층만이 ‘좋은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엄이 연극에서 묘사하듯, 케인스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블룸즈버리와 서식스의 찰스턴에서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예술가 친구들이 누리던 삶을 의미했다. 케인스는 친구들이 누리던 이러한 생활방식이야말로 ‘좋은 삶’이며, 마르크스주의가 이를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물고기보다 진흙을 더 귀하게 여기고,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 계층보다 교양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더 높이 평가하는 신조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 계층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사람들이며, 인류가 이룩할 모든 성취의 씨앗을 품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케인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아래에서도 희소성과 고된 노동이라는 ‘경제 문제’를 극복하고 ‘좋은 삶’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앞으로 100년 안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미래를 내다볼 때 경제 문제가 인류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세계 인구 대다수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했다. 소득과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도 해소하지 못했다. 전 세계가 휘말린 전쟁을 포함해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도 막지 못했다. 실제로 케인스가 1930년대에 이러한 주장을 내놓은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1945년 이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케인스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출처] Back to Keynes for ‘the good life’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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