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고객센터 상담사들에게 민원인을 대신해 전화하는 외부 인공지능(AI) 비서의 일반 문의에도 응대하도록 지침을 전달했다. 노조는 통화를 끝낼 기준도 없이 노동자에게 AI 응대를 맡기고 그 결과까지 평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에 따르면 공단은 최근 AI 업무비서의 상담 요청이 들어오자, 본인 확인이 필요한 대리 상담은 제한하되 개인정보가 필요 없는 기본 상담은 제공하라고 현장에 전달했다. 지부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김기영 지부 사무국장이 전한 사례에서 AI는 민원인의 비서라고 소개하며 기계 음성으로 상담사에게 질문했다. 본인 확인이 되지 않아 상세 상담은 불가능했지만, AI는 상담사가 답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질문을 계속했다.

김 사무국장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반 문의만 계속 상담해야 하다 보니 현장에 혼란이 있다”며 “지금 현장은 사람이 기계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침 발언을 이어가는 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제공.

이런 통화를 언제 끝낼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는 게 지부의 설명이다. AI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가정과 조건을 바꿔 질문을 이어가더라도 상담사가 언제까지 답을 해야 하는지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부는 성명에서 “본인 확인은 불가능하고, 통화 종료 기준은 없으며, 상담의 책임만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AI와의 상담도 평가에 반영된다. 그는 “일반 상담은 다 응대하라고 돼 있기 때문에 평가에 당연히 들어가고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AI를 얼마나 오래, 어디까지 응대해야 하는지 정하지 않은 채 상담사가 얼마나 잘 응대했는지부터 평가하는 셈이다.

지부는 AI가 질문을 잘못 전달하거나 답변을 부정확하게 이해했을 때의 책임도 문제 삼았다. “실제 민원인에게 직접 콜백해 정정할 수 없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무한 질문을 하는 게 고객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며 AI가 민원인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지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또 AI가 민원인의 의사를 잘못 전달했을 때 누가 책임질지, 공단의 자원이 낭비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정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 발언을 이어가는 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제공.

지부는 공단에 AI 상담 거부권과 통화 종료권을 보장하고, “AI 상담 종료를 이유로 상담 회피, 불친절, 실적 저하 등 어떠한 불이익도 부과하지 마라”고 촉구했다. 이어 “우리는 기계와 상담하기 위해 존재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노동조합과 협의해 응대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했다.

한편, 기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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