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평화운동, 그리고 노동운동

정종남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발칸 전쟁이 끝난 지 1년만에 또다시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쟁 참상이 수없이 되풀이된 넌더리나는 세기를 막 지나온 우리 앞에 새로운 전쟁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제3차 걸프전이 벌어진다면 당장에 기름 값부터 치솟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전쟁은 또 수많은 군인노동자와 일반인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고아와 난민을 만들어 낼 것이다. 또 후손에게 물려줄 인류 공동재산인 자연환경은 더욱 파괴할 것이다.

왜 전쟁은 벌어지는가?

도대체 무엇대문에 전쟁은 끝도 없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가장 흔한 설명중 하나는 “인간본성이 원래 폭력적이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1994년 6월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돌입 직전까지 갔을 때 당신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본성에 휩싸여 안달하고 있었는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당시 전쟁위기를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1998년 말에서 1999년 초까지 겨울동안 또다시 전쟁위협이 우리나라에 드리워질 때 우리 국민들은 정말 마음속 깊이 숨겨진 폭력적 본성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있었을까? 이 같은 설명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돌변해 사람을 죽이고 날이 밝으면 인간으로 돌아오는 영화속의 늑대인간을 떠오르게 한다.

전쟁의 원인에 관한 또 하나의 일반적인 설명은 주로 미국이 사용하는 단골 메뉴로서 “깡패국가와 독재정부에 맞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설명에

의구심을 느낀적이 없다면 노엄 촘스키가 쓴「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인권을 유린하는 진짜 깡패국가는 오히려 미국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다음 인용문에 전쟁의 원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의 물질적 이해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세계평화와 인류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Ken Boettcher, 미국의 추잡한 무기거래,<평화연대>창간준비 10호에서 재인용)

전쟁이 벌어지는 진정한 원인은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 때문이다. 거대한 기업들이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가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경쟁이 세계시장에서 심

해질수록 기업은 국가에 의존하게 된다. 하나의 집합체로서 자본을 위해 벌어지는 국가간 경쟁은 갈수록 군사력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이는 개별국가들이 그토록 많은 액수의 돈을 무기부문에 지출하는

데서 확인된다. 이제 첨예한 군사적 긴장은 쉽사리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전쟁의 승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질서를 강제로 확립할 수 있었다.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

지난 세기에 벌어졌던 전쟁 중에서 예를 들어보자. 먼저 1차 세계대전은 값싼 연료와 신흥시장을 제공해줄 식민지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독일은 당시에 세계 식민지의 1/3을 차지하고 있던 영국과 그 다음으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프랑스에 도전하고자 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주도의 국제질서를 나머지 국가들에게 받아들이게 했다. 이를 위해서 1천만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세계지도자들은 이 전쟁이 전쟁 자체를 없애는 숭고한 가치가 있다고 퍼트렸었다.

하지만 20년 만에 훨씬 큰 규모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때에도 히틀러의 독재와 나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선전을 들었다. 그러나 히틀러를 반대하는 것이 목적

이었다면 히틀러를 피해 다른 나라로 피신하기를 원했던 유태인들의 입국이 왜 허용되지 않았을까? 그들은 유태인학살보단 다른데 관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를 얻어 석유를

확보하는데 관심이 있었고 미국은 세계 제1의 열강이 되기 위해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또 영국은 중동과 극동지역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 전쟁은 5천

만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승전국 미국은 전후 세계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질서를 주도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어떤가? 우리 국민들은 얼마 전 평생을 한으로 살아온 70살 넘은 노인들이 간직했던 이산의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래야 했을까?

미국은 한국전쟁의 목적이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공주의는 미국에서조차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패권다툼이었을 뿐

이다.

그 후 벌어진 베트남 전쟁, 걸프전쟁, 발칸전쟁 등에도 기본적으로 같은 논리가 작동했고 비슷한 패턴이었다.

전쟁은 부와 권력을 누리는 소수를 위해 평범한 다수를 죽음으로 내몰고, 많은 사람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야만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 모든 참상의 밑바닥엔 이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미덕’이라고 체계적으로 교육되는 ‘이윤을 위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경쟁은 일상적인 시기에도 평화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윤을 위한 자본가들의 경쟁논리는 전쟁으로 표현되지 않는 일상적인 시기에도 절대로 평화적이지 않다. 경쟁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노동자는 그 논리에

희생당하는 처지에 있다.

예를 들어 보자. IMF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시한 정리해고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 쫓았다.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빼앗긴 실업자들은 깊은 좌절에 빠져야 했다. 보험금을 타서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식의 손가락을 잘랐던 한 아버지가 정신병자처럼 취급되던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경쟁논리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

또 다른 예로 ‘국가경쟁력 강화’를 틈만 나면 강조하던 YS정부 시절인 1995년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이제 막 노조를 민주화하고 임금 8만원을 인상하라는 싸움에 나섰다. 이들은 처음 해보는 싸움이라서 구

호나 팔 동작이 어색했지만 모두들 환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YS는 이 평범한 노동자들을 뜬금없이 ‘국가전복세력’ 이라고 몰아붙여 탄압했다.

요새는 어떤가. 기업, 금융,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모두 경쟁력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구조조정이 강요하는 것에 반대해서 싸운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지하철, 롯데호텔, 사회보험노조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노동자들이 번번이 경찰에 의해 공격을 당했었다. 경찰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임신부조차 두들겨 팼다.

나는 전쟁의 원인이 ‘이윤을 위한 자본가들의 경쟁’에 있고 이 논리는 평화적인 시기조차 대다수 일반인들에게 폭력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쟁과 일상의 삶에서 가장 큰 희생을 겪어야 하는 사람은 노동자

를 포함한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라고 말한 셈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를 해 보겠다.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애틀 시위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위에 참가한 한 트럭노동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에 반대하기 위해 노동자와 거북이가 손잡았다.” 여기서 거북이는 환경운동단체를 뜻한다.

자본의 세계화가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한편,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므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하나의 적에 맞서 연대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군수무역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은 동일한 대상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는 뒷전인 채 소수의 이윤을 위한 논리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이 한가지 원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앞서 인용한 Ken Boettcher 는 이렇게 말했다.

“…무기의 생산과 판매에 드는 비용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과중한 군비부담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나라 노동자들은 살상산업으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는 그들의 지배계급에 도전해야 한다.”(<평화연대>창간준비 10호. 미국의 추잡한 무기거래)

실제로 노동자들이 전쟁에 반대해서 정부에 도전한 예는 많다. 발칸전쟁 때 노동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반전 시위에 참가했다. 모든 사람이 전쟁을 지지한다는 환상을 퍼트리고자 서방의 언론들처럼 우리나

라언론도 항의시위 소식을 거의 전하지 않았지만 그 시위들은 유럽을 뒤흔들었다. 나토의 폭격이 한창 진행되던 1999년 4월 20일 그리스에서는 국민 압도다수가 전쟁에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 노조가 대규모 항의 시위를 아테네에서 개최했다. 4월 11일에는 구축함이 출항하는 것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철도 노동자들이 무기수송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호위선이 시위대에 막혀 한동안 저지되기도 했다. 이런 반전 시위는 영국과 독일에서도 벌어졌고 미국에서도 4월 넷째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1천 5백 명이 참가한 폭격반대 시위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노동자들의 전쟁반대 시위가 절대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이 발발한 1914년 8월 직전에 독일에서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던 사민당이 조직한 거대한 반전집회가 있었다. 영국에도 같은 해 8월 2일 금속노동자들이 참여했던 대규모 전쟁반대 시위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7월에 시위가 벌어졌다. 또 잘 알려진 예로 베트남전 때 미국을 뒤덮은 반전운동을 들수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평화를 위한 싸움에서 중요한 세력이다. 평화운동을 하는 우리는 전쟁을 막고, 벌어진 전쟁을 빨리 끝내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할 힘

은 이윤을 통제하는 소수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다수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므로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은 서로 만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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