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자 그대 이름은 이씨 종친회?

정도영 (평화인권연대 대안문화·미디어모임‘R.exe’활동가, fara96@hanmail.net)

문화의 세기, 문화의 해, 문화의 달 등 새 천년을 맞이해 우리 나라는 문화대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누군가가 의심이라도 할까봐 모든 행사, 모든 고유명사 앞에 ‘문화’라는 말을 갖다 쓰기 바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2000년 한해는 문화대국으로의 발돋움은커녕 오히려 구시대로 퇴보한 한 해였다.

올 한 해 우리 나라 문화예술계에는 영화 <거짓말>을 시작으로 이현세 만화 『천국의 신화』문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사건, 최근의 장정일씨의 유죄판결 등 반문화적인 행태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특히,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무산 사태는 다른 어떤 것들과도 같은 수위에 놓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9월 29일, 정정엽 씨를 비롯한 제미란, 윤희수, 김명진, 곽은숙, 하인선, 류준화, 우신희 등 8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미술그룹 ‘입김’은 종묘시민공원에서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미술축제를 열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 유교문화 속에서 대를 잇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여성의 몸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고 가부장적 왕실문화의 터전인 종묘를 여성미술축제의 장으로 바꾸기 위한 의도로 마련된 것으로, 새로운 예술의 해 추진위원회 미술부문위원회가 주최한, 한마디로 아주 합법적이고, 타당한(어떤 예술 행위에 합법성과 타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좀 우스운 일이지만) 예술행위였다. 그러나 이날 미술축제는 성균관 유림과 전주 이씨 종친회, 정통 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회원들의 폭력적 저지로(이들은 ‘588에서 온 X들’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비하, 성 차별적 욕설들 마구 쏟아내면서 작품들을 탈취하는 등 폭력적 언행을 마구 일삼았다) 완전히 무산된 것이다. 10월 29일 ‘입김’과 여성단체연합, 문화연대 등 17개 사회, 여성단체들이 모여 ‘아방궁 종묘 여성문화축제’를 다시 개최했지만, 유림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애초에 추진하려던 도전적인 많은 작품들을 일부 수정, 진행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성적 표현을 음란하게 만 바라보는 일부 보수세력 그리고 분단 반세기를 통해 만들어진 특정이익단체들과 문화예술인들과의 대립들보다 더 높은 수위에서 바라 보아야한다. 특정 이해집단이 특정 예술가들에게 행한 폭력행위를 넘어서 이 땅에서 반만년 동안 자리잡고 있던 여성 차별적 문화에 기초한 남성 우월적 편견과 독단의 결과로 봐야한다.

주부 예술가 8명을 여 전사로 바꿔놓으면서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그들의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번 폭력사태의 주축인 전주 이씨 종친회의 논리는 이렇다. 먼저 “위패가 모셔져 있는 신성한 곳에서 이 같은 불경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말살하는 몰지각한 행위이며 신성한 종묘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떠들어 됐다. 아니 조선 역대(조선 왕조는 가부장적 질서와 유교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여성을 철저히 규제와 통제의 틀 속에 가둬 버린 왕조가 아닌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시는 일은 신성한 일이고, 여성 해방을 외치는 미술축제를 여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누가 규정한 것인가? 또 그들은 “이것이 예술이라면 예술전용무대로 옮겨 공연하라”는 당치도 않은 소리도 아끼지(?)않고 내뱉었다. 사실 ‘입김’이 미술축제를 개최하려고 하던 장소는 엄밀히 말하자면 종묘가 아니라 종묘 시민공원이다. 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종묘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 시민공원이 뭔가? 시민공원은 공공장소임이 분명하다.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유지 아닌가? 시민공원을 그들의 사유지로 생각하는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저히 상식으로 용납하기 힘들다.

예술적 실천을 사회적 관습으로 일방적으로 통제하려는 오만한 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그대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종묘’가 흰 개미떼들에게 좀 먹고 있다는데, 그대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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