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에 담긴 넉넉한 마음 (귀농학교일기2)

엄익복 (평화인권연대 회원, iknow@netian.com)

어린이에게 감기 약을 먹이는 것은 어린이를 살리는 걸까? 죽이는 걸까? 살아가면서 감기에 안 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기에 몇 번 걸리다 보면 면역성이 생겨 점차 어지간한 추위에는 감기에 안 걸리게 된다. 어린이들은 면역성이 없다보니 감기에 잘 걸린다. 그럴 때마다 약을 먹이면 면역성이 생기지 않아 어린이는 허약해지게 된다. 약에 내성이 있는 바이러스라도 생기면 면역성을 갖기는 더욱 어렵다. 심하지 않을 때는 약을 안 먹이는 것이 어린이를 살리는 것이다.

머리가 아플 때 약을 먹는 것은 몸에 좋을까? 나쁠까? 머리의 통증을 씻어주는 독한 약은 머리는 낫게 해줄지 몰라도 몸에는 안 좋다. 따라서 머리가 아플 때마다 약을 먹으면 나중에는 몸을 많이 상하게 된다.

서양의학의 처방은 이런 경우가 많다. 간이 안 좋으면 간을 고치는 약을 투여하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고치는 약을 투여하고, 뼈가 상하면 뼈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그런 방법이다. 하지만 동양의학에서는 ‘기가 허하다’고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위가 아프다는데 손바닥에 침을 놓기도 한다. 이런 처방은 몸에 조화를 회복함으로써 병을 고치는 동양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데도 이런 두 가지 사고가 존재한다. 강물이 오염되었을 때, 오염물질의 유입을 차단하고, 정화시설을 만들면 된다는 처방은 당장에 강물을 깨끗이 하는 효과는 있지만, 다시 강물이 오염될 가능성은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덧붙여 무언가를 만들어서 문제를 막으려 한다는 면에서, 그 동안 환경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강물이 오염되었을 때, 사람들의 생활이 잘못되어 그러니 생산을 줄이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환경문제는 환경개선이 아닌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이란 말도 맞지 않다. 환경이란 말은 인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환경문제에 접근할 때, 인간의 삶을 중심에 두고 자연을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 보게끔 하여,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환경문제는 생태계 전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인간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생명 중에 하나로 두고 보아야 생태계의 유기적인 흐름 속에 인간이 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생태계를 중심으로 사고할 때, 인간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해져야 한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 생태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다. 생태계의 순환원리를 알고 그 안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 이것이 환경문제 해결에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넷째 날

“아저씨 여기 솔지 마을이 어디에요?”

“어디 찾아 오셨수?”

“이철희 선생님 댁을 찾는데요.”

“아하 거기. 이 길 따라 쭉 가서 제일 끝에 집이유.”

집이 별로 많지 않은 산골 마을에 제일 끝에 집이란다. 길옆에 있는 작은 논들은 벼베기를 한 곳도 있고 안한 곳도 있었다.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둘러보니 젊은 사람 두 분이 땅을 다지고 있는데, 우리를 보자 반갑게 맞아 주셨다. 집 지을 땅을 다지고 있다고 하셨다. 제일 끝에 집 옆에 집 하나를 더 지을 모양이다.

“아니 전문가 안 불러요?”

귀농학교 오신 분 중에 건축일을 하시는 분이 어설퍼 보였는지 물어보셨다.

“아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며 짓는 거지요. 뭐.”

“뭘로 짓는데요?”

“흙벽돌로요.”

집 짓는 것도 직접하고 집 짓는 재료도 흙으로 하고, 전문적인 기술은 없지만, 딱 어울리는 집을 머리에 그리고 계신 것 같았다.

“오셨으니 우렁이부터 한 번 보시죠.”

이 곳은 유기농을 하는데, 제초제를 안 뿌리고 우렁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가을에는 우렁이를 건져서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다가 봄에 모를 심고 나면, 다시 논에 풀어놓는다고 하며 우리를 하우스로 안내했다.

바깥은 쌀쌀한데 하우스 안은 훈훈했다. 천막포대로 만든 양식장에 우렁이들이 큰 놈, 작은 놈 섞여서 뽀글뽀글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우렁이들을 논에 풀어놓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모는 안 건드리고 풀만 깨끗하게 먹어치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렁이를 보면서 고급 술안주다, 양식을 하면 부수입도 짭짤하겠다하는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렁이를 풀어놓으면 농사 짓기가 좀 편해질까 하는 생각에 이런 질문을 했다.

“약도 안 뿌리고 피도 안 뽑아도 되니, 이놈들 풀어놓고, 농사는 수확만 하면 되겠네요?”

“그래도 문안 인사는 매일 가야해요. 안 그러면 논둑이 터져 우렁이들이 쓸려 나갈 수도 있거든요. 비가 와도 꼭 나가봐야 하구요.”

논에 나가는 걸 문안 인사 드리러 간다고 한다. 벼에게도 문안 인사 드리고 우렁이에게도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렁이 풀어놓고 편해볼까 하는 생각은 전혀 볼 수 없고, 농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엿보였다.

해질 무렵이 되자, 이철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검은 얼굴, 굵은 주름살과 나무 껍질 같은 손에 선생님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막걸리를 마시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많은 질문들을 하며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질문의 대부분은 농촌생활이 경제성이 있느냐? 올 농사에 재미는 봤느냐? 관행농과 유기농 중에 어느 것이 돈벌이가 되느냐? 그런 것이었다. 50년이 넘게 유기농을 고집해오신 선생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는데도 선생님은 매우 성심껏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덧붙여서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유기농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유기농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경

제성을 묻고 눈앞에 이익을 따지며 귀농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농부로 사는 삶의 가치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계셨다.

다음날 낫을 한 자루씩 들고 벼베기를 하러 나갔다.

산골짜기에 논이 있어 등산이라도 하는 것처럼 산길을 따라 올라 갔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뿐인 곳에 작은 논과 밭들이 제각각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농사일을 처음 해본다는 사람도 있고, 낫질을 처음 해본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논에 들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벼베기를 시작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볏단을 쌓아 가는데 힘들긴 해도 재미가 있었다. 더구나 논에 개구리와 벌레도 많아 유기농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고개를 들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산의 정취는 일의 힘겨움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산의 기운을 받아 곡식도 잘 자라고 사람도 건강해질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막걸리라도 한잔씩 할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농사일을 두고 경제성과 편리를 따지던 마음은 이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에 담긴 것은 이 자연이 주는 것만큼 넉넉하고 평화로운 것 같다.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