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창

<안효상/박종철출판사 대표>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사람은…

얼마 전 러시아의 핵 잠수함이 침몰했을 때, 정부의 미온적이고 심지어 반인도적인 대응에 분노한 수병 어머니들의 시위 현장에 이런 싯구가 써졌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사람은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시를 쓴 네크라소프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리 유명한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 구절만큼은 최소한 80년대를 살았던 사람

들에게는 아주 낯익은 것이다. 80년대 중반 정치적 사건으로 기소된한 학생 운동가가 항소 이유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당시 학생 운동의 정당성을 설명해 주는 호소력 있는표 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즉 이 구절은 당시 널리 불렸던 노래 가사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와 중첩되면서 (학생) 운동

가들의 태도와 정신을 표현했던 것이다.

최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법률의 시행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가 작은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것은 정권 교체라는 정치 환경의 변화 및 이 속에서 이루어진 유가족들의 투쟁의 성과이며, 과거 우리의 투쟁이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더 나아가 이것을 계기로 하여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정리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반대자들의 논거는 사실 세련되지 못한 편이며, 심정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논란이 될 수 있는 법구절에 대한 해석을 제외하면 간단하게 말해 우리는 보상을 받기 위해 운동했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법을 둘러싼 여러 태도는 당연하게도 개개인들의 처지, 사회 변화에 대한 전망, 현정부에 대한 평가 등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여 나왔을 것이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대의 것은 그 시대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역사적 허무주의를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역사가 나쁜 의미에서 이용되는 것을 막자는 것인데, 왜냐하면 역사적 ‘사건’의 의미라는 것은 현재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를 ‘독립 유공자’로 비유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러한 비유에 따르면 독립 유공자를 대한 민국 수립에 공이 있는 사람으로 본다면, 민주화 운동 관련자는 현국가 혹은 현정부 좀더 완화시켜 말한다면 현질서 수립에 기여한 사람이 된다. 물론 민주화 운동 관련자 가운데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라는 모호한 말로 한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모두를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덧붙여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법률적 정당성에서 구하려는 것은 자기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까? 아무리 차가운 머리가 혼란에 빠진 시대라 할지라도 뜨거운 가슴마저 버리려는 것은 정말로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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