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동자가 아니란다. 연봉 7천만원에서 1억이 넘는 ‘귀족’들이 무슨 파업이냐고 되묻는다. 집단이기주의에 염치도 없단다.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가 이번에는 지난 10월23일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벌인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비난하는 익명의 글로 시끄럽다.
대한항공 운항승무원노조가 16시간 파업 끝에 △비행보장수당시간 75시간 보장 △비행수당 1만2천원 인상 △편승시간 총 비행시간 산정 등에 합의한지 20일이 지나도록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조중사’ 등의 아이디로 올라온 ‘조종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주장의 근거는 조종사들이 ‘엄청난’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노조에 따르면 “연봉 1억인 경우는 일부 선임기장에 국한된 것이며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노조쪽은 이와 관련해 8년 근속에 A330 부기장인 하효열 부위원장의 연봉이 3천9백만원 선이며 워낙 기종과 비행시간대가 달라 많게는 임금이 두 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이들이 ‘귀족’으로 낙인찍은 조종사들은 성수기 때는 최고 1백20시간까지 비행하는가 하면 편승시간이 산정되지 않아 실제 일한 시간이 훨씬 많은 게 보통이다. 그래서 한국 조종사들은 싱가포르나 대만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외국인 조종사보다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당했다는 것이다. 제주비행훈련원 출신의 경우 부기장이 되기까지 미국에서 3년 동안 교육을 받고 돌아와도 훈련원 신분이며 월 50∼6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들이 연봉 4천만원이상으로 알려진 부기장이 되더라도 미국에서의 교육비 5천만원을 10년에 임금에서 공제해 상환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의 주장은 파업을 전후해 회사쪽이 언론에 배포한 “많게는 연봉 1억3천여만원까지 받는다”는 자료와 내용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어 구구한 억측을 낳고 있다. 당시 상당수 언론은 회사쪽 자료만을 기초로 안전운행과 노동시간단축이란 조종사들의 요구는 철저히 가린 채 ‘결국 임금인상이 목표였다’고 호도한 바 있다.
설령 이들의 주장대로 1억대의 연봉을 받는다 치더라도 그것만으로 조종사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노동자란 ‘직업을 불문하고 임금과 기타 급료로 살아가는 자’로 규정한 근기법의 정의를 굳이 끌어대지 않더라도, 항공회사에 고용된 조종사들은 노동조건 등에서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어떻게든 노동자를 갈라놓으려는 이같은 주장은 사실 그리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노조를 결성하려는 교사들에게 “교직은 성직인데 교사가 어찌 스스로 노동자로 ‘전락’하려 하는가”는 논리가 10년 동안 따라 다녔다. 이는 노동자를 ‘현실의 존재’로 보지 않고, ‘관념’으로 보기 때문에 빚어지는 ‘소동’이라는 분석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한국에는 ‘노동자냐 아니냐’는 논란을 부르는 이들의 노조 결성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모험모집인 심지어 대학교수까지 노조결성을 마치고 노조활동을 하고 있거나 노조창립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논란은 그간 지극히 배타적인 노조관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나 있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공무원, 교수, 프로선수노조를 막고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스웨덴에는 중산층노조도 있다.
정경은 joungke@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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