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스타킹은 No! 살색 스타킹은 Yes!

최인선 (평화인권연대 회원, banddung@dreamwiz.com)

요즘 내가 사무실에서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점점 얼굴이 둥그래지는 것 같아.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

물론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당장 무엇인가를 날렸을 것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일뿐 아니라 심각한 성희롱에 해당되니까. 사실 같은 여자들이 하는 말이긴 해도 기분이 무지하게 나빠지긴 했다. 살이 쪘다는 것 때문도 있지만 그것과 일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며, 얼굴이 둥그래지는 것하고 시집은 또 모슨 상관이 있냔 말인가. 사무실에서 농담으로 주고받는 그런 말을 하나하나 따지려 든다면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도 같지만, 얼마 전에 모처럼 쉬는 날이 있어 놀러간 여성민우회 사무실에서 아주 기막힌 자료집을 하나 보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입직과정의 성차별-성별제한, 나이제한, 용모제한 등등-에 대한 여러 대응활동과 토론회가 있었는데, 토론회에 제출된 자료집이었다. 작년에 신규여성실업자 모임을 하고 있을 때도 몇 번 조사하기는 했었지만 신문이나 인터넷의 기업 채용광고를 보면 업무와 상관없이 연령과 용모, 성별을 제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시선을 확 잡아끌었던 내용인즉슨, 여직원을 채용시 대부분의 기업에서 면접평가기준으로 나열된 항목들이었다. 질문내용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면접관들이 체크하는 것들은 조목조목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머리-모양과 길이는 단정한가? 청결한가? 색깔과 스타일이 너무 튀지는 않는가?’ 등, 옷-불쾌감을 주는지 아니면 조화로운지? 비듬이 떨어져 있지 않은가? 스커트의 길이는 적당한가? 스타킹의 색은 적당한가(살색 또는 커피색)? 여분의 스타킹은 가지고 있는가? 악세사리는 너무 화려하지 않은가? 구두의 굽과 색깔은 적당한가? 옷이나 구두에 달린 장식이 너무 크진 않은가? 등등… 무슨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 심사표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살색스타킹을 신어야만 잘 할 수 있는 업무라도 있는가보다. 아니면 머리를 염색하면 머리가 나빠져 일을 못한다던지… 그렇다면 남자를 채용할 때 면접심사의 기준은 뭘까? 그 남자가 삼각팬티를 입었는지 사각팬티를 입었는지라도 검사하려나? 웃기는 일이다. 또, 어떤 기업에서는 면접관의 심사표에 너무나 간결하게 3등급의 표시 칸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기막히다. ‘예쁨/고치면 예쁘겠음/못생겼음’. 도대체 사원을 채용하는 건지 영화배우를 뽑는건지… 차라리 채용광고에 미스코리아 환영이라고 쓰지…

엄밀히 말하자면 입직과정에서 용모나 성에 대한 차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특정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조항들을 우리는 쓰고 있었던 것이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라도 이력서를 써본 사람이라면 주민등록번호며, 호주 및 호주와의 관계 등을 적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기업에서 이력서와 별개로 제출 받는 입사원서에는 집안의 재산정도, 키, 몸무게, 좌우 시력, 가족사항 등 더욱 여러 가지 개인적인 내용을 사소한 것까지 적게 한다. 특히나 미혼여성일 경우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애인의 유무와 결혼계획에 대해서이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어디가 일과 관계가 있는지는 미스테리다. 어찌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적인 정보를 취직하기 위해 기업에게 주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채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되돌려 받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이에 평등한 입사원서 만들기 공모전도 더불어 있었는데, 대부분 입사원서와 이력서에 기재 불필요한 것들을 삭제한 형태였다. 우선 이름과 연락처를 쓰고(이름 또한 실명이 아닌 ID등이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성별이나 주민등록번호같은 것은 절대 적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 최종학력과 전공을 기재하며, 가장 주요하게 써야할 것은 하고자 하는 직무와 그 일에 대한 능력과 포부 등이다. 또한 경력이나 자격증 소지 여부는 업무와 관계되는 선에서 자유롭게 쓰고(꼭 정식 교육기관을 거쳐 과정을 수료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외국어 능력도 마찬가지다. 민우회에서는 토론회와 공모전을 거쳐 제안된 평등한 입사원서를 실용화할 계획으로 우선은 자기단체 간사채용을 비롯한 제 사회단체에 전달하여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고, 나아가 대기업까지 홍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램은 제발 그렇게 되면 좋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니까, 나도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 입사원서에 키, 몸무게, 가족관계 등을 적었고, 면접시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쯤 할 건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굉장히 기분이 불쾌했지만 아무 반격 없이 결혼계획 없는데요..했던 것 같다. 하긴 그것 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모자 달린 조끼를 입고 갔다가 정장이 아니란 이유로 지적을 받았었다. 만약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회사의 사무직이었다면 내 남루한 복장과 외모에서부터 짤렸을 것이다. 그후로는 종종 그런 질문이나 복장 등에 대한 지적을 받을 때 발끈하여 큰소리 친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쓸데없는데 민감한 이상한 애쯤으로 여겨진 듯했다. 그러나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불편한 정장이나 구두를 살 돈도 없거니와, 여전히 나는 ‘어디 등산이라도 가나보지?’하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육중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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