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의 마술은 성공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0/11 파블로 아이켈*
베네수엘라의 이행기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는 지난 2년 동안 잇
따라 선거 승리를 거두면서 낡은 정치계급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정당의
헤게모니를 향한 야심과 그 스스로가 자신의 연합세력과 사회 전체에 야기한
분열로 인해 불신과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국제 사회에
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가는 최고점에 달해 있긴 하지만, 카리스마적
대통령은 이제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한다.
군복이나 양복을 입고 있는 사진, 아내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또는 스포
츠 장비를 갖추고 한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진 등 대통령의 사진이 카라
카스 도심의 볼리바르 광장 주변에서 3천 볼리바르(5달러)에 날개 돋친 듯이 팔리
고 있다. 매점들에는 “사령관과 함께”라는 구호가 적힌 붉은 베레모나 다른 광고
품들과 나란히 그의 사진이 넘쳐난다.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오른 지 거의 2년이 지
난 지금도 우고 차베스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
(1992년 쿠데타 기도 당시 어깨를 나란히 한 동지였던) 프란시스코 아리아스 카
르데나스와 대결한, 실질적인 논쟁이 아닌 언어폭력으로 점철된 선거운동 이후 지
난 7월 30일의 승리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여전히 그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
었다. 차베스는 1998년의 기록을 갱신했으며 그의 당인 제5공화국운동당(MVR)은
14개 주정부와 수많은 시, 그리고 새로운 국회에서 다수를 장악하였다. 신임 주지
사와 국회의원 가운데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이들은 드물다. 한 가지 사실만으로
도 그들이 당선되는 데 충분했다. 그들은 사령관의 축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베스가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 <여보세요, 사
령관!>을 진행하는 스튜디오 앞에 모여든다. 소수의 정선된 청취자들은 국가수반
과 직접 통화를 해서 그가 얼마나 나라를 잘 운영하고 있는지에 관해 축하하고 자
기 지역이나 학교, 병원에 관해 뭔가를 호소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두 시간 동
안 독백이 뒤따른다. “저는 교사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차베스는 말한다. 대통령의 공식 연설은 종종 일요일 방송 내내 진행된다.
“때로는 현재 상황에 낙담하곤 합니다. 하지만 차베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다시
기운이 나지요”. 카라카스 시내에서 일하는 사회 사업가인 아눈시아 페라판의 말
이다. 그의 카리스마로 인해 차베스는 국민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그의 인기도는
사고를 멈추게 만들 지경이다. “그의 인기도가 몇 차례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하
지만 한번도 60%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 대변인의 말이
다. “유례 없는 일이죠. 그는 정치계의 슈퍼스타이자 하나의 현상입니다.”
차베스가 다수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정치, 경제 부문과 대다수 언
론의 신뢰는 느린 편이다. 그들 모두는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이 베네수엘라 역
사상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정치적 단절이라는 사
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제5공화국운동당의 권력 행사 방식에 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중 인격
대통령 스스로가 가장 모순적인 반응을 유발하고 있다. 전직 게릴라 투사로 나
중에 라파엘 칼데라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후 신문사 편집장이 된 테오도로 페
트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중 인격자 같습니다. 이상주의자와 실용주의자
가 항구적으로 긴장을 야기하면서 그의 안에 공존하고 있는 거지요”.
한편으로는 1999년 12월의 볼리바르식 헌법에는 놀랄만한 개방적 사고가 담겨
있는데, 이로 인해 투표함과 시민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 혁신적 조치들 가운데서
도 특히 인권과 사회보장에서 단호한 전위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른 한편 차베
스는 자신의 연합세력 가운데서 끊임없이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1992년 2월의 반
란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지들인 프란시스코 아리아스, 요엘 아코스타,
헤수스 우르다네타 등은 제5공화국운동당의 새로운 정치질서에서 자신들의 입지는
없다고 판단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는 좌익정당인 모두를 위한 조국당(PPT)이
애국전선 동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정치군사 조직의 중심부에서 소규모 충성 집단이 이끌고 있는 현재 진행중인
“볼리바르적 길”과 야당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차베스는 ‘해방자’ 시몬 볼리
바르의 이미지와 자신의 “뿌리 세 개인 나무” 이론을 활용한다. 그의 측근그룹은
사실상 1960년대의 좌파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 공산주의 지도자이자 현 국
가제헌의회 및 과도의회 의장인 루이스 미킬레나와 외무장관 호세 비센테 랑헬,
석유장관 알리 로드리게스 등이 그들이다. 게릴라 투사였던 로드리게스는 더글라
스 브라보(친소련파 공산당에 반대했던 게릴라 지도자-옮긴이)의 오른팔 같은 인
물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1970년대 초반에 유격대를 떠난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내
무장관 루이스 다빌라는 전직 군 인사들에게 맡겨진 네 개의 장관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제5공화국운동당 주지사들과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 사회, 관리
당국의 우두머리 가운데 3분의 2 가량 또한 군 출신이다.
차베스는 모든 결정이 카라카스 중앙정부를 통해 이뤄지는 중앙집중적인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가 “자신의” 주지사와 국회의원들에게 “정부는 야구팀 같은 겁니
다. 내가 감독입니다. 선수들은 지시에 따라야 하며 이에 불복할 경우 투수판에서
쫓겨날 것입니다”라고 설명한 곳은 대통령 집무실인 라 카소나였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여러 차례 전임 대통령들의 근시안적이고 표에 집착하는 방식만큼이나 나
쁜 결과를 낳았다고 차베스 지지자들은 비난하였다.
다른 결정들은 볼리바르적 길에 충성하는 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차베스는 노동조합들을 볼리바르식으로 조직화하기 위해 -관료적이고 부패한- 낡
은 베네수엘라 노동총동맹을 분쇄할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리고나서
정부는 해외로부터 어떠한 자금도 받지 않는 비정부기구들만을 시민사회를 대표하
는 조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9월 20일 차베스는
이 나라를 사로잡고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 권한을 의회에 요청할 것이
라고 발표하였다. 권위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 지지자
들은 운동의 군사적 수사(修辭)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너무 멀리 나아가고
있다. 한 교사는 외국인혐오증과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용어를 구사해가면서 중등
학교용 “군입대 예비” 교과서를 쓰기도 했다. 결국 항의가 빗발쳐 정부는 이 책을
학교에서 수거하고 판매를 중단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차베스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아직은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렵사리 설득할 수 있었다. 최빈
층 가운데서는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먼 미
래의 일인 것처럼 보였었다. 정부는 경제불황이 최고조에 달한 작년 5월에 20%의
임금인상을 법령으로 포고함으로써 기업주들의 분노를 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 하
더라도 차베스는 자신의 사회 프로그램에 착수하기 전에 안정과 분명한 정치적 다
수가 확보되기를 기다렸다.
미국과의 거리두기
국제 무대에서 대통령은 자유의지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한 성
공을 거두고 있다. 그는 다극 체제를 선호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바 있으며 두
전선에서 연대하는 나라들을 지원하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 강화를 위해 자신의 “석유” 파트너들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로 구성된 안데스국가공동체(CAN)와 남미공
동시장(Mercosur) 사이의 연계를 증진하기 위해 지역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미국에 가까운 나라는 당연히 워싱턴의 궤도에 완전히 밀려들어가는 것
을 두려워합니다”. 한 유럽 외교관의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차베스는
자기 나라에 모종의 공간을 주게 될 무엇에라도 특히 민감합니다. 때때로 그가 미
국에 용감하게 대항한 나라들에 대해 낭만적인 선호감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 아래 베네수엘라의 정치나 경제, 또는 문화 체제를 리비아나
이라크, 쿠바식 모델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차베스가 발표한 경
제 계획-전자통신 시장을 올해 말 개방하여 수억 달러를 유치하게 될 예정이며 연
금 기금을 설립할 것이다 등등-으로 판단컨대 이는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닌 듯하
다.
8월 10일 차베스는 사담 후세인을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워싱턴 당국의 이
를 갈게 만들었다. 유가가 배럴당 25달러 이상으로 급등하고 유럽의 에너지 위기
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생산이 증대되면서 카라카스 당국으로서는 경제를 재건하
고 공공지출을 삭감하며 볼리바르화를 안정시키고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데 필요
한 재원을 찾기가 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정부의 경제 고문들은 이제 수도꼭지를 틀 시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과 인적 자본에 중심 투자가 이루어지는… 인도주의적이고 자주관리적이며
경쟁에 기반한”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차베스 또한 학교, 병원, 주택, 기술, 사
회보장 등의 사회 프로젝트에 21억 달러의 지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돈은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에서 충당될 것이다. 그는 12월 25일 경이면 자
신의 사회 계획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여기에는 작년 12월 바르가스의 홍수 피해에 책정된 특별 예산과 경제 부문에의
군의 참여 확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주요한 문제가 이 모든 변화의 뿌리를 갉아먹을 위협이 되고 있
다. 실업과 범죄가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매 주말마다 80명 이상이 살해되
며 그 가운데 50건은 카라카스에서 벌어진다. 정부는 또한 실업률이 15%에 가깝다
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의 54.3%는 “비공식” 경제부문에서 시달리
고 있다. 이 계층은 부패를 근절하고 범죄를 줄이며 경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를 개선시킬 수 있는 대통령의 능력에 대해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다.
1> 단원제인 국회에서 제5공화국운동당은 165석 가운데 85석을 차지하였다.
당은 다수를 차지했고 연합세력인 사회주의운동당(Mas)에 기댈 수 있지만
절대다수를 장악하진 못했다. 대통령의 아버지 우고 데 로스 레이예스 차
베스를 비롯, 아홉 명의 주지사가 제5공화국운동당이며 다른 다섯 명은 연
합세력이다.
2> 스페인으로부터의 남미 독립을 위한 투쟁을 지도한 인물이며 조국인 베네
수엘라만이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그의 이름을 딴
국명이다) 등지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1783-1830)의 이름을 딴 것이다.
3>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베네수엘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르몽
드 디플로마티크] 영어판, 2000년 8월호 [국역: 인터내셔널뉴스 107호])를
보라.
4> 검사, 재정감독관, 그리고 인권 보호를 책임지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인
공선 변호인 등이 그것이다.
5> “뿌리 세 개인 나무”: “신볼리바르주의”의 근본적 사고는 시몬 볼리바르
와 ‘해방자’의 교사인 시몬 로드리게스,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연방주의
지도자인 에세키엘 사모라 등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이 세 명의 이름은
1979년 이래 혁명운동의 역사 내내 계속 되풀이된다. 알베르토 가리도의
{볼리바르 혁명의 감춰진 역사}(Alberto Garrido, Lahistoria secreta de
la Revoluci n Bolivariana, Editorial Venezolana, Caracas, 2000)를 보
라.
6> 마르호리에 바스케스의 책 {“군입대 예비” 교본}(Marjorie V squez,
Instrucci n “Pre-militar”, Editorial Biosfera, Caracas)은 “바람직한
외국인”(유럽인)과 “불쾌한 외국인”(남미인)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후
자는 “베네수엘라의 일자리와 병원 침대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최고 입찰자에게 내놓아 아이를 가져서 신분증을 얻으려고 한
다”는 것이다.
* 카라카스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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