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경제블록을 향한 움직임을 시도하는 아세안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11/30 피터 시몬즈
지난 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지역 정상들은 동북아 3국(일
본, 중국, 남한) 정상과 나란히 동아시아 무역블록의 형성을 향한 시험적 조치를
취하였다.
다음 두 가지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13개 아시아 국가 정부관료들의 연구그룹이
마련될 것이다. 첫째는 기존의 비공식적인 아세안+3 회담을 대신하는 동아시아 정
상회담을 공식적으로 마련하자는 것이며 둘째는 지역 자유무역·투자 지구의 창출
이다. 연구그룹은 12개월 후에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다.
아세안 회원국 사이의 수송을 개선하기 위한 싱가포르에서 중국 윈난성의 쿤밍
에 이르는 20억 달러 상당의 철도 개설과 콸라룸푸르, 싱가포르, 방콕, 도쿄, 서
울, 상하이 등의 주요 도시들 사이의 고속 인터넷 연결 계획이 제출되어 있다. 일
본은 e-아세안(e-ASEAN)이라 알려진 인터넷 업그레이드를 위해 150억 달러 상당을
부담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번 회담을 주관한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는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룹
확대로 동북아 국가들의 지배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아
세안이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는 너무 성급하게 그런 식의 그룹 확대로 나아가선
안됩니다. 아세안 자체가 약화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이 확대되던 1967년에 창설된 아세안은 초기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 브루나이, 필리핀으로 구성되어 있었
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아세안은 버마와 인도차이나 3개국(베트남, 라오스, 캄
보디아)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그러나 10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 총액인 5천억 달
러는 남한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며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훨씬 적다.
고촉통 총리는 무역블록을 향한 움직임에 관해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북미인들이 그런 그룹으로 경쟁하기 때문에-그들에게는 나프타가 있습니다- 우리
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워싱턴을 가로막
으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워싱턴 당국에 대한 그의 확언은 새로운 아시아 경제 그룹이 미국의
보복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다. 모든 동아시아 국가
는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블록의 형성은 10년 넘게 의제상에 올라 있었다. 미국과 유럽이라
는 경쟁자가 자유무역 블록을 공고히하는 움직임을 우려한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에 이러한 아이디어에 관한 막후 논의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시아
그룹화를 위한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벌이길 꺼려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미국의 반
응이 두려웠고 2차대전 당시 아시아에서 자행한 일본의 역할에 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동아 공영권”에 관한 지역 정서를 우려하고 있었다.
도쿄 고위급 회담 직후인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봅 호크 총리가 아시아태평
양 “경제협력 포럼”을 최초로 의제로 제안하였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최초의 제안
은 미국을 배제한 것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후에 아태경제공동체(APEC; 이하
아펙)로 전화된 첫 번째 캔버라 회담에 참석할 것을 고집하면서 동아시아에 초점
을 맞춘 원래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
1990년대 초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일본 거대기업계의 지지를 등에 업
고 미국만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까지 배제하는 동아시아 경제회의
(EAEC) 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말미암아 이 계획은 결국 좌절
되었다.
일본과 미국을 모두 포괄하는 아펙의 경우 회원국이 점점 늘어나면서 의례적인
친목모임 이상이 아니었다. 아세안 회담 직전에 브루나이에서 열린 최근의 아펙
회의는 WTO의 테두리 안에서 무역 회담을 재개하는 데 집중했지만 진전은 거의 없
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선임장관은 지난 주 시드니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펙
이 초점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언급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
동아시아의 긴밀한 연계를 향한 최근의 움직임은 1997-98년 아시아 지역 전체적
으로 정치, 경제적 불안정에 불을 지핀 금융 붕괴로 인해 촉발되었다. 지난 주 회
담에 참석한 지도자들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으로 “아시아 호랑이들”이 경제위기에
서 회복했다는 일부 미디어 논평가들의 주장을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모리 수상은 의회의 불신임안을 겨우 모면했으며 경제성장 부양을 목표
로 한 엄청난 금융 자극 패키지로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를 이끌고 있다.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뇌물 수수로 탄핵 재판을 받고 있으며 주가와 페소
화를 떠받히는 유일한 요인은 그가 곧 정권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는 가능성
뿐이다.
타이의 추안 릭파이 총리는 내년 1월 예정인 총선 여론조사에서 뒤쳐져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통령 또한 스캔들과 탄핵 위협에 휩쓸리고 있다… 여기서
목록이 끝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률은 1998년의 재앙에 가까운 마이너스 수준에서 회복되긴 했지만 올해
만 해도 많은 아시아 나라에서 주가와 통화가치가 급락하였다. 보다 근본적으로,
엄청난 수준의 악성 채무와 금융부문의 허약성과 결부된 근원적인 문제가 전혀 극
복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경제회복은 대부분 정부지출과 미국을 주대상으
로 하는 높은 수준의 수출의 결합에 기인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세안 회원국은 고유가와 주요 수출품목인 전자제품의 가격 하락으로
신음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 전체의 외국인투자는 1997년의 215억 달러에서 1998
년에는 196억 달러, 작년에는 131억 달러로 축소되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의 소위 개도국에 대한 투자 가운데 60%가 중국으로 유입되었으며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 이 수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아세안은 자신의 존립기반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의식하면서 “비공식적인” 아
세안+3 회담을 통해 일본, 중국, 남한과의 긴밀한 연계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노
력은 부분적으로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의 미국과 IMF의 공세적인 개입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것이었다. 워싱턴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인도네시아나 남한 같은
나라가 자국 시장과 투자기회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당시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제안에 반대하였다.
이번 아세안 회담에서 긴밀한 협력의 가능성이 논의되긴 했지만 회원국들의 상
이한 성격과 세계경제와의 관련성을 반영하듯이 분명한 갈등이 존재한다.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FTA)에서 9,000여개의 제조품 및 농산품에 대한 관세를
실질적으로 인하한다는 계획을 둘러싸고 차이가 불거졌다. 6개 아세안 창립국가
(타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2002년까지 시한
이 설정된 반면 다른 나라들은 유예기간이 더 길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는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에 대해 3년의 유예기간을 요구하면서 지역 최대의 자동
차 생산국인 타이와 긴장을 유발하였다.
지난주 회담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아세안 외부에서 개별적인 양자간 무
역협정을 추진한다는 싱가포르의 결정을 둘러싸고 싸움을 시작하였다. 싱가포르는
이미 뉴질랜드와 협정에 조인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미국 등과 논의 중이며
메히코 및 캐나다와의 연계를 검토하고 있다. 고촉통 총리는 콸라룸푸르 당국 또
한 일본과 유사한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말레이시
아 장관의 비난을 맞받아쳤다. 마하티르 총리는 즉시 이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잠재적인 긴장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징표는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
통령이 싱가포르에 대해 내뱉은 유별난 감정폭발이었다. 리콴유 선임장관이 동티
모르와 파푸아뉴기니를 아세안에 가입시키자는 인도네시아의 요청을 무시한 후 와
히드는 독자적으로 “서태평양포럼”을 창설하겠다고 위협하고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서 열린 한 회담에서 싱가포르에 대해 긴 탄핵연설을 늘어놓았다.
와히드는 싱가포르가 “이웃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이윤을 거둬들이려고만 하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와의 방위협정에 관해 인도네시아에 공개하지 않
았으며 소수 말레이족에 대해 인종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마
하티르가 “싱가포르를 비판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마하티르가 새 친
구를 갖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섬나라인 싱가포
르에 대한 물 공급을 끊어서 “이 나라에 교훈을 주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인도
네시아의 반중국인 정서에 영합한 와히드의 신랄한 공격은 자국 내에서의 그의 정
치적 허약함과 더불어 -긴밀한 지역 경제 협력을 확립하고자 하는- 아세안의 근원
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긴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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