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은 계급투쟁현장…못 가진자 세금 서울대 지원 거부하자”

학벌사회 타파를 위한 제언

최근 수능 문제가 너무 쉽다며 이른바 변별력 문제가 나왔고 `물수능’ `수능 인플레’ 란 새로운 말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뒤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이 학력변조 시비에 시달리다 제발로 물러났다.

이 두 사건의 본질은 같다. 모두 학벌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다.

학벌이란게 뭔가. 벌(閥)이란 게 끼리끼리 모여 독점하는 것이다. 재벌이 돈을 독점하는 것이라면 학벌이란 학연을 바탕으로 패거리를 지어 온갖 이권을 독차지하는 것이다.

먼저 공직자의 윤리성, 인사 편중 시비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 퇴진 사태를 보자. 대체 `목포해양고’와 `목포고’의 차이가 뭘까. 학력 변조야 100번 잘못한 일이지만, 박씨가 자신의 출신고를 `목포해양고’에서 `목포고’라고 바꾼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깨놓고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 자체가 진부하다. 유치원생을 빼면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답을 뻔히 안다. 학벌이 갖는 불가항력, 무소불위의 그 무지막지한 힘을.

언젠가 다음과 같은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국적(國籍)은 바꿀 수 있지만 학적(學籍)은 바꿀 수 없다’

웃기는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국적이야 이민을 가든지 귀화를 하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졸업한 학교를 바꿀 방법은 없다. 어떤 목적때문에 섣불리 학력을 바꾸었다가는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처럼 된서리를 맞는다.

‘일류대생 `이류대생’ `삼류대생’ `고졸’ 등 한번 붙은 이 꼬리표는 우리 시대의 천형(天刑)이다.

올 수능 성적이 발표결과 평균점수가 27점이 오르고 유례없이 만점자가 66명이 나오는 등 쉬운 수능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변별력’ `학력저하’ 등등을 들먹이지만 이 논란의 바탕에는 뿌리깊은 학벌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우리 모두 솔직해져야 한다. 흔히들 이 혼탁한 세상에서 교육현장만은 우리의 미래이며 깨끗하고 희망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결국 교육 문제의 핵심은 계급문제이다.

대부분 노동자의 자식들은 `아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공부해서 출세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란다. 노동자들은 일상의 영역에서 `조합원’이 아닌 `가장’으로서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탈노동자화를 부추기고 열망한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의 자긍심 따윈 자리잡기 힘들다. 또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좋은 학벌이 가지는 현실적 의미를 알기에 자식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생활비의 절반이상을 자녀 교육비에 쏟아붓는다.

이렇듯 대입은 처절한 계급 투쟁의 현장이다. 거칠게 말해 계급이 사회적 부를 소유한 정도에 따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개념이라면, 대학입시는 곧 성인이 될 청소년에게 계급 사회진입의 출발선이다. 대학 특히 서울대는 출세이자 권력이자 부의 축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국사회는 대졸자와 비대졸자로 나눠지는 신분사회이며 대졸자는 출신대학에 따라 `일류’ `이류’ `삼류’ 등 몇 단계 계급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대개 계급 안에서 취업과 결혼, 교우 관계 등 사회생활을 한다.

최근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버지 직업 가운데 전문직과 관리직 비율이 49.8%에 이른다. 반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업자를 빼고 나면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남성가운데 전문직과 관리직 종사자는 10% 안팎이다. 거의 5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서울대를 두고 `부와 계급의 세습구조’란 비판이 일고 있다.

교육이란 미명을 빌어 은폐되는 이 학벌사회를 깨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특히 이 문제의 핵심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서열화된 대학의 줄을 깨고 이른바 일류대 출신이 온갖 특혜와 이득을 독점하는 학벌 패거리 문화를 깨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먼저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서울대에 `가지지 못한 자’의 세금으로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싼 값에 교육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 따져 물어야 한다. 만약 계속 서울대 등 국립대가 세금지원을 받아야 한다면 경제활동 인구 비율에 맞춰 노동자나 농민 도시빈민의 자녀들에게 입학 정원을 할당하라고 요구하자.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주장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못 가진 자의 투정에 불과할까. 아니다. 이미 남들은 하고 있다. 사회주의 나라와 사회민주주의 나라를 들먹일 필요없이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따라배워야 한다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주립대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신입생 전형 방식은 우리의 수능격인 대학적성능력시험(SAT)점수 뿐만 따지지 않는다. 대학 진학률이 낮은 고교출신, 부모의 교육수준이 낮은 학생, 가계 소득이 낮은 학생,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다시 우리 현실로 돌아오자. 서울대같은 국립대가 가진자들의 자녀를 단지 `점수가 높다’는 이유로 선호한다면 노동자들은 더이상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언제까지 노동자가 `부와 계급의 세습구조’에 들러리를 서야 하는가?

(권혁철/한겨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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