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옐친 이후의 공산당의 미래

「주간녹색좌파」1/17 보리스 카갈리츠키

겐나디 주가노프의 자식인 러시아연방 공산당(KPRF)은 보리스 옐친의 자식

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993년에서 1999년 사이에 이르는 시기 내내 공산당

은 러시아의 정치생활에서 친자본주의적인 옐친 체제의 충성스러운 “반대당”

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각인시켰다.

현명한 옐친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민주주의

라는 외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러시아

에는 민주주의가 있었으며 크레믈린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반대당은

발언권이 있었고 언론은 비판의 자유를 누렸으며 시민들은 투표를 할 수 있었고 –

이 모두가 권력의 문제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것이 훌륭했

다.

체제가 적절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권좌에 오를 능력이 없는 반대당

이 필요했다. 주가노프의 당은 이러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러한 의미에

서 공산당은 항상 체제의 근본적인 정치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공산당은 또한 그

만큼 중요한, 아니 아마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다른 임무도 부여받았다. 정권

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구축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우는 것이 그것이었다. 주

가노프와 그의 동료들은 왼쪽에서 정권을 공격하려 한 모든 세력에 맞서 계속해서

결연히 싸워왔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들을 극단주의자나 “반역자”, 아니 단순히

“진지하지 못한 개인들”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공산주의 운동 자체 내에서도 주가노프

의 당은 애초부터 유일한 조직도, 최대의 조직도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

로 충분하다. 그러나 점차 다른 모든 공산주의 조직들이 정치생활에서 강제로 밀

려났다. 이는 문제의 조직들이 허약해서가 아니라 인정받는 유일한 반대당으로 크

레믈린의 공식적 승인을 받은 것이 공산당이기 때문이었다. 표면상 좌파인 정당들

가운데서 공산당만이 1993년 의사당 폭격 이후 선거에 참여하였다. 다른 조직들은

선거 참여를 거부당하거

나 그들 스스로 선거를 불법이라고 보이코트하였다.

다른 러시아 좌파 조직들은 어쨌든 독자적으로 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허약했

다. 공산당은 자신의 위성조직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반대 그룹과도 협력을 거부하

였다. 어느 누구도 노동계급에 기반하거나 일반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폭넓은

반대 블록을 구축하려 하지 않았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있었다면 크레믈린이 규

정한 규칙들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역설적인 상황

요컨대,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났다. 1995년에서 99년 사이의 시기에 전사회적으

로 반대 분위기는 고양되었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표현양식을 제공할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는 정치적 반대당은 꾸준히 약화되어 간 것이다.

사회는 왼쪽으로 움직여가고 있었지만 공산당은 훨씬 더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

했다. 공산당 관료들은 소비에트 시기와 옐친 집권기에 훈련되었으며 이러한 습성

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해외를 순방하는 공산당 대표들은 좌파인 듯이 발

언하였다. 청중에 따라 그들은 결연한 레닌주의자거나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다. 지방 주민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사로, 인민주의자

로 변신했다. 국회(State Duma)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으며 엄청나게

탈이데올로기화된 실용주의자들, 지역, 부문의 로비스트들이었다. 기업가들과 함

께 할 때면 그들의 동료였다.

한편 자신의 진영 내에서는 공산당 엘리트들은 백색 근위병, 군주제주의자, 검

은 백인단원(Black Hundreds; 차르 경찰이 조직한 군주제주의자 폭력단으로 혁명

가들을 암살하고 진보적 지식인들을 습격했으며 유태인 학살을 자행하였다-옮긴

이)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볼셰비키와 레닌, 트로츠키 등의 “반역자들”에 대한 혐

오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주가노프는 자신의 이론적 저서들을 통해서 이반 푸

리쉬케비치에서 새뮤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이르는 극우 반공 이데올로

그들의 성과를 옹호하였다. 당 엘리트들의 말 속에서 이 모두는 “국가 애국주의”

의 이름으로 통했다.

“반사회적 예산”이 차례차례 공산당의 표결로 통과되었다. 당 엘리트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한편 부문 로비스트들은 수익을 보장

하는 수정안을 도입하였다. 당연히 공산당 의원들 또한 현찰 꾸러미의 형태로 감

투상을 받았다. 정직한 의원들은 이 돈을 재선 자금으로 썼지만 덜 정직한 의원들

은 바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러한 정치에서 유일한 문제는 당의 실제 목적이 결코 당 지지자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민중적 정권과 맞선 싸움”이라는 약속은 공산

당이 이 체제의 주된 버팀목 가운데 하나이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상황이 계속 안정적인 한 당 지도자들은 그러한 모순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옐친 체제의 위기가 증대하면서 공산당의 곤란 또한 커졌다.

첫 번째 도전은 1998년의 채무불이행 선언이었다. 얼마 동안 크레믈린은 실제로

상황을 통제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의회 정치인들이 이 시점에서 권력을 장악할

수 없었더라도 적어도 정부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은 미칠 수 있었다. 위기의 결

과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와 유리 마슬류코프의 정부의 임명이었다. 프리마코프는

잘 알려진 대로 다름아닌 신자유주의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추천을 받았으며

공산당은 자기 당파 동지인 마슬류코프의 부수상직 입후보를 기꺼이 지지하였다.

그러나 프리마코프 내각의 초기부터 야블린스키의 야블로코당(Yabloko) 블록이 화

해할 수 없는 의회 적대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한편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서약했던 공산당 의원단은 정부를 운명의 변덕에 내

팽개쳤다. 일단 프리마코프가 자신의 일을 하자 옐친은 “무어인이 자기 일을 했

다. 떠나가게 내버려두자”고 결정했다. 무어인들, 프리마코프와 마슬류코프는 충

성스럽게 자신들의 출구를 만들었다. 주가노프와 그의 동지들은 정부의 변화가 아

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기꺼이 선언하였다.

규칙 바꾸기

그러나 상당 부분, 무엇보다도 게임의 규칙이 바뀔 태세였다.

1999년 이래 크레믈린에 입성한 새로운 사람들은 옐친과 달리 이제 더 이상 민

감한 정치 게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의회가 시선

을 사로잡는 정치적 여흥으로, 즉 먹을 빵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공짜 서커스의 일종으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푸틴과 그의 팀은

의회를 투표 계산기로만 보고 있다. 그들은 위장된 반대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대당이 있어야 할 필요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공산당이 이 우아한

소극(笑劇)에서 특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며 명령을 따르기만 하

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공산당이 따르는 이 명령이 전반적으로 보면 “국가 애국

자들”에 대한 정치적 편애와 전혀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찬가(讚歌)의 스토리는 교훈적이다. 스탈린 시대의 작곡가 알렉산드로프의

멜로디가 울려퍼질 때 자유주의 인텔리겐차들은 항의하였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

든 이 음악이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 찬가였다고 받아들였다. 공산당 찬가가 인터

내셔널가였다는 사실을 잊은 듯이 보인다. 1944년까지는 인터내셔널가가 소비에트

연방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에 맞선 전쟁의 와중에 스탈린은 혁명 상징 및 전통과 단절하

는 것을 목표로 한 일련의 결정을 내렸다. 군대에서 견장이 다시 나타났고 인민위

원회는 정부부서로 대체되었으며 동방 정교회와 거래가 이루어졌고 러시아식 성

(姓)이 아닌 사람들은 요직에서 물러나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해체

되었다. 역사가 다시 한번 쓰여졌는데 이번에는 차르들의 “애국적” 위업에 방점이

찍혔다. 스탈린은 스텐카 라친이나 예멜리안 푸가체프 같은 반역자들에 관해서는

서술을 줄여야 한다고 직접 포고하였다.

소비에트 찬가는,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군주제 체제 스타일을 부활시키

기 위해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차르 폐하 만세”의 “당” 버전에 다름아니다. 소

비에트 찬가와 머리 두 개의 독수리를 통일시킴으로써 푸틴은 스탈린이 착수한 일

을 완성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으며 주가노프는 자신의 이론작업

을 통해 바로 이러한 종합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진적” 대중들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들은 소련의 기억에 집착하고 있다. 반체제 인사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거대한 군

대가 존재했어서가 아니다. 아프리카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거나 세계 최강의 정

치경찰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세계 최고였던 무상교육 체계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료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며 노동자의 자녀들이 혼자 힘으

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국가 애국자들”

에게는 낯설다. 국가 애국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강한 체제”와 “단호한 당국”,

규율이다.

소비에트 역사에서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차르 시대와 구별되는 게

아니라 그와 연관된 것들이며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각

국 공산당이 파시즘에 맞서 성공적인 싸움을 할 수 있었던 요소들이 아니라 히틀

러식 변종과 연관된 것들이다. 주가노프와 푸틴 사이의 블록은 스탈린-히틀러 협

약이 착수한 일의 정점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가장 충성스러운, 지금까지

무비판적이었던 당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공산당 엘리트들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모순을 보이며 혼란에 빠져들어 그 결과 영향

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당 지도자들에게는 거

의 관심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권위가 특별히 높았던 적도 없었으며 노동자

들은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표를 던질 수 있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다. 문제는 당 지도부가 지부 조직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이미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12월에 열린 공산당 당대회에서 전에는 매우 신중하고 충성스러웠던 모스크바

조직 지도자 알렉산드르 쿠바에프가 지도부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좌파”

이데올로그인 알렉산드르 크라베츠가 말하는 것과 의원단 지도자들의 선언문들 사

이에 명백한 모순이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좌파”들은 “반대당”은 정권에 반대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특별히

독창적인 생각도 아니었지만 당대회에서는 마치 시대적 발견처럼 들렸다. 한편 겐

나디 셀레즈네프는 “자만하지 말고” 크레믈린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라고 당에 공개

적으로 호소하였다. 어떤 조건도 없었고 아무 것도 요청하지 않았다. 공산당이 격

려를 받을만 하다면 크레믈린 지도자들은 이를 알 것이고 마땅한 격려를 해줄 것

이라는 식이었다. 빅토르 일류킨은 “급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으로 자유주의적인

NTV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세르게이 아다모비치 코발레프처럼 말을 시작해서 시민권과 반체제적 사

고,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지도자로 스스로를 변모시켰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이러

한 민주적 가치들을 크레믈린과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공산당으로부터도 지켜

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암시하였다. 이 또한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전반적

으로 보면 맞는 말이었다. “민주주의자들”이 체첸의 대량학살을 승인하고 “공산주

의자들”이 반노동자 정부를 기꺼이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시의적절하게 들

렸다. 최근까지 공산당 내에는 일종의 분업이 존재하였다. “좌파” 인사들은 급진

적인 선언을 통해 크레믈린과 절친한 사이인 “실용주의자들”을 덮어주었다. 그러

나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급진주의와 충성은 양립불가능해지고 있다.

이것이 공산당의 임박한 붕괴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여러차례 당의 붕괴가 예상된 바 있지만 이러한 예측에서 나온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여기저기서 굴욕을 겪으면서도 당지도부는

굳건히 자리를 유지해왔다. 스탈린이 발견한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구를

통제하는 이들은 지도적 간주들 또한 선택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의

말처럼 간부들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주가노프는 어쨌든 비판에 대처하고 반란을 진

압해나갈 것이다. 반란자들이 아무튼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항의세력들 가

운데 어느 누구도 지도부가 범죄적 정책-특히 자기 당의 당원들에 관해-을 추구하

고 있다고 숨김없이 말할 용기를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주가노프의 노고가 새로

운 정권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면 그런 당이 왜 필요

할까?

주가노프와 그의 팀은 새로운 크레믈린 통치자들에게 남겨진 옐친의 유산의 일

부에 불과하다. 푸틴과 그의 동료들은 이 모든 유산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전혀 모른다. 물론 의회의 공산당원들은 정권에 아무런 해도 되지 않지만 별 소용

도 없다. 그 결과 크레믈린에서 공산당의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 이는 주가노프에

서 있어 자기 동지들의 항의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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